다시 학원 등록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학원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한 달이나 파리에 체류할 수 있는 것도 흔한 기회가 아닌데 가장 비싸고 좋은 학원에 다닐까- 집값도 굳었는데.' 하고.
그러나 반면 수강할 수업이 초급이라는 것과,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고려할 때 학원의 수준차가 그렇게 결정적일까 하는 의심 또한 있었다. 카페 등을 검색해 본 뒤 후보는 다음 세 학교로 추려졌다. 2018년 기준의 정보이다.
ILCF, 파리 가톨릭 대학교
4주 80시간 수업 698유로
수업이 빡세고 교수진이 좋다고 함.
알리앙스 프랑세즈
20시간 기준 주당 253유로
가장 잘 알려진 어학원, 이탈리아 친구들도 여기 많이 가는 듯
CEBP
4주 80시간 380유로
가격이 싸고 카페 댓글에 호평이 많음.
이 셋 사이를 고민하다 실제로 3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생뚱맞게도 '등록의 간편함과 유연함'이었다. 메일에 답이 빨랐고, 수강하는 반 배정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 것에 편안함을 느꼈다. 나머지 두 학원은 온라인으로 등록 등 뭔가 절차가 복잡하고 딱딱했다. 개강일에 임박해서 급하게 등록하는 상황이었고, 어차피 한 달 다니는 건데 등록 절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수업은 각각 두 시간의 문법과 아틀리에 수업으로 월화수목금 매일 4시간씩 있었다.
문법은 A1, A2, B1, B2, C1, C2의 각 단계가 A1.1, A1.2, A1.3, A1.4 이런 식으로 네 반으로 다시 나누어졌다. 즉, 한 단계를 마스터하려면 넉 달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셈.
반면 아틀리에는 A1, A2, B1 이런 식으로 퉁쳐서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CEBP는 13구에 위치해 있어 각종 동남아 음식점이 많고 점심시간에 근처의 베트남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학원이 큰 길가에 있고 놀랍게도 에어컨이 없어 여름에 수강하는 것은 비추. 소음 때문에 창문은 닫고 에어컨은 없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이 두 시간 동안 갇혀 있다 보면 강의실은 그야말로 사우나가 된다. 이 때문에 매일매일 더위 먹고 간신히 집에 도착한 후 몇 시간 동안 기절해 있곤 했다.
수업이 두 시간 단위라 집중도가 떨어지는 점도 단점이다. 수업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두 시간을 빠릿빠릿하게 보내기는 어렵다. 선생님들도 두 시간 수업 중 적어도 20분 정도는 문제를 풀게 하며 시간을 때우고 휴식을 취하곤 한다.
선생님은 총 다섯 분의 수업을 들어 봤다.(반도 계속 바꿨을뿐더러 남의 수업에도 한번 들어가 봄) 선생님마다 편차가 컸다. 학생들에게 적절히 말을 시키고 참여를 유도하는 선생님, 필기를 똑 부러지게 하며 문법을 명확하게 짚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설명을 기계적으로 하고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하거나 아직 수업 자체가 긴장되는 듯해 보이는 초보 선생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이 친절하고 수강하는 학생들 분위기가 좋았다. 짧은 리서치로 결정한 학원이었는데 더운 강의실만 빼고는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다시 학원 등록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우선 학원에 에어컨이 있는지 체크할 것이다. (에어컨이 없으면 소음이라도 없는 위치에.) 그리고 한 단계에 넉 달이나 걸리는 문법 수업은 진도가 너무 느리다. 내가 비슷한 이탈리아어 베이스가 있기에 수업의 흡수가 빨랐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 역시 한국에서 기본 문법 수업은 받고 올 가능성이 크다. 진도가 느린 만큼 수업의 긴장도 떨어지게 마련. 단계별 문법을 좀 더 빠른 시간에 주파하는 코스를 들은 뒤 '연습'하는 포션을 늘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 경우 사실 아틀리에 수업만 듣는 게 나을 뻔했다. 아무래도 한 단계 수업을 한 달에 소화하는 아틀리에 수업이 속도감이 있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학원을 선택했을 것 같다.
밀라노의 아담한 규모에 익숙해져 있어 파리가 대도시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한 건 실수였다. 때문에 매일 통학을 위해 한 시간 반을 트람에서 썩혀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내 프랑스어가 놀라울 만치 빨리 늘었다.
그동안 문법책으로 방구석에서 혼자 공부했기에 프랑스어가 '이론'이자 '지식'이었다면
파리에 가서야 실제로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아 봤다. 프랑스어가 아니면 의사소통의 대안이 없는 상황들을 맞았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다만 조금 더 프랑스어를 잘해서 B1 정도의 레벨이었다면 현지 어학연수의 효율이 엄청나게 늘었을 것 같다. '배우는' 것 보다 '써먹고 연습하는' 데에 어학연수가 더 유용하니까.
그리고 말미에 프랑스 시골에 가서 느낀 바가 있다.
내가 파리가 아니라 다른 도시에 있었다면 현지 사람들이랑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좀 더 작고 친밀한 곳을 선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