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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Feb 29. 2020

코로나바이러스로 드러나는 국민성

이탈리아

불이 이쪽으로 번졌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이탈리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초반 중국에서 온 관광객 부부와 우한에서 탈출시킨 자국인 중 한 명을 포함한 총 세 명의 확진자를 제외하고는 한 달간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야말로 남의 동네 얘기였다. 감염 폭증이 일어나기 전 똑같이 한 달이란 시간을 벌었어도 그래서 한국과 달리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


평소와 같이 퇴근하고 주말을 맞이한 금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사이에 이탈리아 감염자는 순식간에 150명을 넘어섰다. 월요일은 온통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나누는 대화뿐이었다. 연락이 뜸하던 온갖 친구들한테서 안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가 폭주했다. 동작이 빠른 한 친구는 3대에 이르는 가족과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싣고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코딱지만 한 나라 남쪽까지 이 바이러스가 퍼지는 데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슈퍼마켓에도 일시적으로 난리가 났었나 보다. 한국 뉴스에서 일주일째 반복해 등장하는 에세룽가(이태리 이마트) 텅 빈 진열대 사진은 이 날 찍힌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는 살균소독제마저 명품(?) 브랜드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아무키나(Amuchina),

잔뜩 겁을 먹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 킬로의 파스타와 아무키나를 끌어안고 칩거했다.


파레토의 법칙

파레토의 법칙을 패러디해, 한 나라에서 20%의 엘리트들이 나머지를 먹여 살린다는 농담이 있다. 빌프레도 파레토 씨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으나, 이탈리아에서 이 비율은 0.0000002%의 엘리트와 99.9999998%의 나머지로 수렴하겠다. 문화 예술뿐 아니라 경제 과학 기술 등 너른 분야에서 이탈리아 천재들의 활약은 엄청나다. 극소수의 극도로 뛰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의 나머지를 먹여 살리는 듯한 느낌인데 한술 더 떠 이탈리아 99.9999998%의 덜떨어짐의 정도는 상상을 추월한다. 나도 물론이었거니와 처음 이탈리아에 와 살기 시작하는 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정도 멍청함이면 일반적인 다른 문화권에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수준.


그래서 이탈리아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스탠스가

"나는 그들과 달라."

주변을 채우는 대다수의 멍충인들과 공존해야 하는 이탈리아 엘리트의 고충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들과 어울려 살며 멍충멘트와 멍충액션들을 인내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같은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의 문제에까지.. 그래서 이들의 가슴속 깊이 구분 짓기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스탠스를 그들만 취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다. 남들처럼 멍충 안한 본인을 구분 짓기 하려는 시도는 대다수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을 넘어, 보편적 문화의 일부이기도 한 것 같다. 이탈리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 중의 하나가 타인의 멍충한 행동에 대한 조롱.


감기 취급하는 허세 이면엔

그리고 화요일,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친구 부부와 아들딸, 사촌까지 오는 모임이었다. 이미 이 난리가 나기 전 약속된 모임이었으니 당일 취소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다들 제 시각에 도착했다. 밀라노 대형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부인만 갑작스러운 회의로 늦게 도착했다. 이 날은 내 주요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쓸 수 없었던 상황, 평소에도 질색을 하는 밀라노 지하철을 더군다나 이 시국에 타고 싶지는 않아 나는 친구 집까지 걸어온 참이었다. 마주치는 50명 중 1명 꼴로 마스크를 착용했고 두오모 광장 앞은 여전히 비둘기 밥 주는 사람들, 거리에 나온 테이블엔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화요일, 두오모 광장

종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재난 상황을 간접 체험하고 있던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꼴찌로 도착한 친구 부인은 망설임 없이 망설이는 나에게 볼키스로 인사를 했다. 병원이 하루 종일 텅 비었고 할 일도 없었다는 말로 수다가 시작됐다. 언제 비상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수술들을 다 뒤로 미루라는 지령에 불만이 많아 보였다. 다만 하나 좋은 점도 있다고: 시간이 많고 슈퍼마켓 외에 외출 건수가 없는 심심한 노인들이 여기저기 아픈 것도 같다며 병원에 오곤 하는데 바이러스 공포와 함께 싹 사라졌다고 한다. 전파력이 강력할 뿐이지 겨울 독감보다도 증세가 가벼운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있다며 이마를 짚었다.

"È una finzione!" (뻥이야 뻥이야 뻥이라구)

어제는 친구에게 스위스에 스키 타러 가자는 문자가 왔다.

학교와 박물관이 닫고 나라 전체가 멈춘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영상의 스가르비처럼 의회에서 흥분해 소리 지를 필요까지는 없었더라도. 하지만 이 스위스 국경을 넘어서 스키를 타러 가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코로나 시국에 집에 있는 편이 낫겠다고 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장문의 문자,


"바이러스 사람 간 전파는 비말감염인데 증세가 없는 상태의 감염 가능성은 0.001 이하야. 이 중에 아예 감염 불가의 케이스도 포함돼 있는데 비행기 탑승 감염 등이지. 이 불가능의 케이스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삶이 지속되는 게 불가능한 거야. 의료 통계에서는 0.001 이상이어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보고 사실이라고 인정해."


이 친구는 흉부외과 의사이다. 당연히 바이러스 전문가도 권위자도 아니다. 허나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그의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명성에 기대 여러 가지 조언을 구했을 것이 눈에 보였다. 의료 통계의 소수점 이하 세 자리 기준점까지 언급하며 전문가인 척하고 싶었겠지. 이틀 전 통화했던 한국 친구는 십 년쯤 전까지 바이러스 연구를 했지만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도 "이건 그때까지 지식을 바탕으로 했을 때"라는 조건을 꼭 붙였다. 예전 생명과학 학부 4년간 배우던 내용을 지금은 1학년에 끝낸다고 한다. 그만큼 발전이 빠른 분야에 전공자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조심스러워하는데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아는 척을 하다니 다시 한번 나의 인내 면역체계가 풀가동하며 열이 올랐다. 이거슨 코로나 바이러스인가 이탈리아 바이러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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