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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Mar 13. 2020

이탈리아, 마스크 아직도 안 써?

코로나바이러스 업데이트

"그런데 내일 우리 만나는 게 맞는 걸까?"

내일 약속이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 전에는 휠체어에 탄 아버지를 태우고 공유자동차로 씩씩하게 사무실에 온 그녀다. 


"불금인데 뭐해?"


그냥 집에 갈 거라는 내 대답에 피식 웃고는 자신 있게 볼 키스를 하고 헤어졌던 친구. 


"그래.. 아무래도 당분간 우리 미팅은 미루는 게 좋겠다" 




이탈리아인은 그래도 마스크를 안 써

기상 알람 대신 쓰는 인공지능 스피커 뉴스 브리핑, 

슈퍼와 약국 제외 모든 상점이 닫는다는 소식을 꿈속에서 들은 줄 알았다. 몇 시간 뒤 인터넷 뉴스로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집 근처 슈퍼에 갈 때조차 외출 신고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지참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는 믿기 어려운 정보도 얻었다. 

한국의 친구는 걱정됐는지, 이탈리아 아마존에서 파는 치과용 마스크 링크를 보내준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훨씬 전부터 기존의 마스크는 이미 품절이었고, 아마존 개인 판매자들이 열 배가 넘는 가격에 올리는 물건들은 죄다 외국에서 오는지 도착 예정시간이 한 달여 뒤였다. 구매자들의 평점은 죄다 별 하나, 


"그래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너 잘 먹고 잘 살아라"

"창피한 줄 알아라. 그렇게 돈 벌고 싶냐?"

"이거 꼭 신고할 거니까 두고 봐라"


등의 분노에 찬 댓글들도 이어져 있다. 구매한 사람들만 작성할 수 있다.

그래도 일단 주문이라도 해 놔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한인 게시판에서는 아마존 마스크 사기당했다는 글을 발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역했다. 3주나 기다려 도착한 마스크가 포장은커녕, 사용한 마스크를 수거한 것인지 검댕과 털 등이 묻어 있고 심지어는 핏자국이 있는 마스크도 있었다. 

한국 포털 뉴스 댓글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직도 코로나를 만만하게 보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는 비난이 폭주하지만 일단 나부터가 마스크가 없다. 그리고 어디에서 구매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일부 무지한 유럽인들이 아시아인에게 인종 차별을 가한 데에 거품 물던 사람들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거만하고 체면치레 하느라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며 섣불리 판단하고 비난하는지 역시 알 수 없다.


비상식량을 구하러 집을 나서다

새삼 나의 미니멀리스트 부엌의 식량을 점검해 보니 쌀 조금과 계란 두 개, 넉넉한 건 오로지 쓸데없는 각종 소스. 마스크도 없고 감염자 수 밀도가 확증하는 상황에 음식을 쟁여놓고 당분간 외출을 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이탈리아 내무부 홈페이지에서 외출 신고서 양식을 내려받았다. 그런데 집에 프린터가 없는 사람은 이 문서를 어떻게 구하지?

외출 날짜도 적어야 하나보다. 외출할 때마다 다시 프린트해 작성하는 대신 지워지는 프릭션 볼펜으로. 날짜만 계속 지웠다 다시 써야지.. 굿 아이디어에 흐뭇해하며 써 내려가는데 

음? 그런데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신고합니다 '밀라노'에서 출발, '밀라노'에 가는 길에 '밀라노'를 경유합니다. 

... 이상 나는 '슈퍼마켓에 가는 것을' 신고합니....??


이건 밀라노가 봉쇄됐을 때 도시 간 이동을 위해 쓰던 사유서 아닌가. 공문서조차 준비가 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내려진 조치인 것이다. 순간 좀 무서운 느낌이었다.


단 닷새 전후로 바뀐 분위기

내가 사는 곳은 밀라노 최대의 쇼핑거리 중 하나이다. 새해 첫날이 되었든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든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곳. 닷새 전 일요일 산책을 나왔을 때만 해도 아래 사진처럼 사람들이 복작였다.

예상은 하고 집을 나섰지만 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낯설었다.

슈퍼 입구엔 경비원이 하나 서 있고 마치 명품 로드샵처럼 가게 안 인원수 유지를 하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서 기다리다 손님이 몇 나간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슈퍼에 빈 진열대는 없었다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이탈리아를 지켜줄 성(聖) 아무키나(Santo Amuchina)도 매대를 따로 마련해 가득 쌓아두고 판매 중이었다.

작은 슈퍼 앞에는 배달원들 자전거들이... 이제 음식이 아니라 장 보는 것도 배달원 일이 되었나 보다. 이 사람들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이젠 바이러스 인간 방패막이된 건가

한국의 다이소처럼 심란하면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다 쓸데없는 잡다구리를 사며 기분을 풀고 하던 플라잉 타이거도 문을 닫았다. 도자기 부처상부터 조잡한 조화, 젓가락 꽂이 구멍이 있는 니뽕 스타일 국수 그릇까지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쓸데없는 것만 모아놨을까. 양손 가득 생존 식량을 든 나는 불 꺼진 진열대 앞을 지나가며 저런 물건들에 환호하던 때가 오만 년 전 전은 된 듯 멀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병원의 상태는 꽤 심각하다고 한다. 의료 시스템의 한계치를 넘어버린 상황이라 마치 전시처럼 살릴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망한 여동생의 시신을 이송해 주지 않아 24시간 함께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나폴리 배우의 동영상도 충격을 줬다. 이제 '코로나는 감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좀 틀어져서 평소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다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이 초현실적인 시간이 꿈같이 멀리 느껴진다고 말할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앗 그런데...

치약을 안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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