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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Dec 19. 2018

티노 만나러 가는 길

티노 스테파노니

수년 전 한 아트잡지 인터뷰를 하러 처음 티노를 찾아가던 날도 이렇게 흐렸다. 첫 만남에 바로 친구가 되어버린 이후 종종 찾아가 티노와 그의 가족을 만나곤 했다.
밀라노와 스위스 사이, 알프스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코모 호수는 마치 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다리처럼 두 갈래로 나뉜다. 코모는 앞선 다리의 끝에, 레코는 뒤쪽 다리 끝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의 한쪽 끝에 호수가 위치한 코모와 달리 레코는 호수를 한가운데 끌어안고 있다. 그 위로는 웅장한 절벽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여느 도시와는 다른 레코만의 풍광이 있다. 티노의 집은 여기 레코 시내에 있다. 티노를 만나러 갈 땐 늘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하면 티노에게 도착 시간을 문자로 보내고, 창밖을 보며 멍때리다 호수와 절벽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 도착할 때였다. 레코 역 앞 신문 가판대에 이르면 여든에 가까운 이 노신사가 직접 끌고 나온 소형 르노가 기다리고 있곤 했다.


지난 겨울엔 티노를 만나러 700여 킬로미터 남쪽으로 내려갔다. 나폴리에서도 30여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그 곳은 이태리의 베르사유 궁전이라 불리는 카세르타 궁전이었다.


"...esistono tre mondi:
il mondo animale, il mondo vegetale e il mondo delle cose. I primi due non sono di pertinenza dell'uomo, ma il mondo delle cose sì..."
Sono andato a fare due chiacchiere con chi si occupa dei primi due.
"세 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 그리고 사물의 세계. 첫번째와 두번째는 인간과 관련이 없는 세계이지요. 하지만 사물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입니다."
(오늘) 나는 이 첫번째와 두번째 세계를 관장하는 이와 수다를 떨러 갔습니다.


70년대에 그린 표지판 시리즈부터 최근의 시노피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들이 아름다운 16세기 바로크 궁을 채우고 있었다. 티노가 전시를 코앞에 두고 작고한 며칠 뒤였다.
장례식 대신 그의 전시에서 사후의 티노와 첫 만남을 가지겠다는 건 좋은 생각이었다. 티노는 그의 그림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궁전은 수많은 티노들로, 그를 사랑하고 추억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너무나 티노다운 부고를 페이스북에서 접하고 딱 한번 눈물을 쏟은 이후로 나는 이 소중한 친구의 죽음을 비교적 원만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것 같다.


티노의 일주기 기념 미사의 초대장엔 바람자루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가리키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티노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처럼. 그림을 보고 있자니 부드러운 바람이 조용히 분다. 그리고 나는 오늘 간만에 티노를 만나러 기차를 타는 중이다. 설레임을 안고. 티노와 기억의 일부를 공유한 사람들을 만나러. 그래서 티노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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