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SAILING Dec 20. 2018

파리에서 만난 장푸르베

Jean Prouvé


마지막으로 '장 푸르베'란 이름을 들은 것은 아마 얼마 전까지 함께 일하던이태리 사장으로부터 였을거다. 

"테이블은 장 푸르베로 한번 골라 봤어. 이 스타일 어때?"

그러나 특유의 뚱뚱한 다리가 투박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장 푸르베 스타일 나는 개인적으로 별론데"

'스타일'과 '유명세'로 프로젝트에 들어갈 가구를 선별하는 사장이나 
외형적인 '장 푸르베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 나나
둘다 이 엄청난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를 피상적으로만 알았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한달간 자체 어학연수를 하러 파리에서 지내던 지난 7월,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직행해 더위야 내 배를 째라 침대에 널부러져 어느새 찾아오는 저녁을 맞곤 하던 

지극히 일상적인 어느 날 문득, 


"아니 이러다가 정말 파리에서 어학원만 다니다 끝나겠네"

학원 끝나고 들러 
간단히 볼수 있는 박물관/갤러리를 찾다 Galerie Patrick Seguin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Jean Prouvé, Pierre Jeanneret, Jean Royère, Le Corbusier 이 네 디자이너의 작품들만을 전시하는 작은 갤러리란다. 




Galerie Patrick Seguin


'열린건가..?' 

밖에선 굳게 닫힌 문을, 궂이 초인종을 울리고 사람이 내려와 열어 줘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갤러리엔 장 푸르베의 가구와 건축 부품(?), 그리고 관련 자료 아카이브 등이 전시돼 있었다. 당연히 관람객은 나 혼자.


"우린 윗층에 있으니까 궁금한거 있음 언제든 불러!"

이렇게 해서 그 조용하고 작은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장푸르베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장 푸르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 의자들 아닐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스탠다드 체어나 데몽타블 체어 외에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다른 의자들도 함께 전시돼 있었다. 

나는 저 등받이와 연결된 뚱뚱한 스트럭처가, 장 푸르베가 본인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로서 스타일링 한 뒤 가구마다 궂이 반복해 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이는 디자이너들이 자주 하는 짓이기도 하다. 마치 본인 디자인에 '서명'을 하듯, 자기만의 디테일 혹은 색상 등을 반복 사용해 누가 봐도 '저거 뫄뫄뫄가 디자인했구나'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러나 곧 이 형태가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닌 공학적 심사숙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의 부품으로 조립, 분해가 가능하고 의자의 내구성을 최대로 하기 위함이었던 것. 비슷한 의자의 여러 프로토타입과 스케치들로 이 '엔지니어링'의 고민과 발전의 궤적을 좇을 수 있었다. 


장푸르베는 본인 스스로를 '엔지니어'라고 했다고 한다. 가구 하나하나마다 엔지니어적인 문제해결들이 보인다. 모두다 제작하기 쉽고 조립이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아마 장푸르베의 시작이 '제작자'였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한다. 표면적인 '보기좋음'을 넘어서 물건이 만들어지고 작동하고 살아가는 방식과 디자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구 하나하나 그 단순함과 실용성이 빛난다. 그러나 동시대의 바우하우스 가구와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르다. 장푸르베는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즐겨 쓰던 철제 파이프보다 가공한 판금(sheet metal)이 기능적, 미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Galerie Patrick Seguin의 한 구석(왼쪽)과 아카이브의 책 중 한 페이지(오른쪽). 빈티지 미학의 극을 달리는 듯.
Galerie Patrick Seguin

마치 자연물이, 철저하게 그 기능에 따르는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것 처럼, 훌륭한 디자인 역시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로서의 형태가 아름답다. 


장푸르베는 요즘 '빈티지 디자인'으로 가장 핫한 이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가 가구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때는 무려 아르누보가 난무하던 20세기 초. 물론 대량 생산을 위한 실용적인 가구들이라 디자인의 목적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당시에 '아름답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우리의 눈이 그에 익숙해진 것과, 장푸르베의 가구들의 기본적인 비율이 조화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 눈에 뒷다리가 뚱뚱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Demountable House


Galerie Patrick Seguin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바로 Demountable House이다. 

넓지 않은 공간의 벽 상당 부분을 이 프로젝트의 도면과 스케치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호환되는 다양한 유닛들로, 마치 레고 조립하듯 다양한 구성의 집을 만들고 해체(demount)하기 쉽도록 한 모듈러 시스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시대에도 prefab house가 있었던거야?"

도면과 스케치 외에 축소모형과 모듈러 유닛들도 일부 전시가 되어 있었다. 갤러리 들어올 때부터 궁금하던 이 물건들의 용도가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완성된 demountable house와 각종 모듈러 유닛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은, 장 푸르베가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철제 가구를 수주해 만드는 제작자였던 1930년대. '가구나 건물이나 스트럭처는 다를 바가 없다' 며 건축스트럭처를 연구하던 중에 이 아이디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극도로 단순한 스트럭처는 쉽게 운송이 가능하고 단 두 명의 인부에 의해 하루 안에 설치가 가능하도록 디자인 되었다. 실내에 침범하는 구조물이라고는 이 두 개의 중앙 스트럭처 뿐이라 방을 나누는 것도 극도로 자유롭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적은 인력으로 짧은 시간에 세워질수 있다는 것 외에도, 쉽게 해체가 가능하고 각 유닛들을 재활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푸르베는 이 스트럭처 시스템을 'axial portal frame'이라고 이름짓고 특허를 신청했다.


첫번째 demountable house가 지어진 것은 1947년,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폭격당하고 저비용으로 빠르게 지을수 있는 집의 수요가 폭증했을 때였다. 장 푸르베는 난민의 거처, 프랑스 식민지 아프리카 국가들에 공급할 목적으로 정부로부터 대량 수주를 받았다. 그러나 절반 정도 생산되었을 때 정부 정책이 바뀌는 등 이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지만 전기도, 배관도, 단열재도 전혀 없는 집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이후에 계승되어 발전되지도 못하고 당대에서 사라진 프로젝트가 되고 만다. 
그런데, 서아프리카에서 철수했던 Tropical Maison 중 하나가 2007년 한 경매에서 5백만달러에 낙찰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체되어 방치되던 모듈들은 이제 필립스나 소더비 등 유명 경매에서 '오브제'로 고가에 거래되고 디자인 마이애미 등 유명 전시의 스탠드로 쓰이기도 한다.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위해 가장 경제적인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졌던 집이 지금은 럭셔리의 상징이 된 것이 참 역설적이다. 그리고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내가 찾아간 Galerie Patrick Seguin의 창립자 Patrick Seguin씨
라고 한다.






퐁피두 센터의 UAM 전시


몇주 후 UAM(Union des Artistes Modernes) 전시를 보러 퐁피두 센터에 갔다.
20세기 초 모던아트와 건축을 재미있게 구경하던 중 아래와 같은 전시품이 눈 앞에 등장한다.



아니 이런!


사진으로만 보던 demountable house 실물이었다!

아니 세상에 퐁피두 센터 전시장 안에 집 한 채를 통째로 재현해 놨다. 그래도 나름 건물인데 다른 가구들과 함께 실내에 전시되어 있다니 조립식 집의 진수다. 전시장 안에서 조립하고 전시 끝나면 해체하고.. 
혼자 깜놀해서 나도 모르게 다가가 만지다가 직원한테 혼났다.

"Madame! S'il vous plaît!(거기 뭐하셈!)"




포스팅을 하려고 장 푸르베 검색을 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됐다.
장 푸르베가 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etiers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엔지니어링 그랑제꼴인 국립고등'기술'공예학교. 
파리장식학교보다 역시 장 푸르베에게 어울리는 학교다.


작가의 이전글 티노 만나러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