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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Jan 04. 2019

Tino Stefanoni, 티노 스테파노니

아트나우 ARTIST & PEOPLE 

2014년 6월 노블레스 아트나우에 실린 티노의 인터뷰 기사 마지막 draft이다.

오래 된 기사여서인지 이제 구글 검색으로도 잘 잡히지 않아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긴다.

분량 문제로 탈락된 부분들을 다시 살린 버전이라 잡지에 실린 원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티노 스테파노니의 작품은 사실적이고 명확하다. 그 명확성 때문에 마치 그림이 언어의 대체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명확함이 지나칠 때에는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닌듯한 의구심이 머리를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면의 무언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스테파노니의 예술은 행간에 있고 생략에 있다. 그의 작품은 중의적이고 그 중 어떤 것이 진짜인가는 항상 물음표로 남는다. 이것은 보여주기보다는 감추기다. 표면의 분명함 뒤에 있는 그 무엇. 그로서 생기는 수수께끼. 지나친 분명함 때문에 찾아오는 의문. 그의 이러한 작품 경향은 지난 11월-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던 전시회 이름이기도 했다. “명확함의 미스터리”
지난해 밀라노의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티노 스테파노니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산, 거짓말처럼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수, 비 오는 날 특유의 청회색이 주는 신비로움. 밀라노에서 기차로 겨우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레코는 이 급격한 풍광의 변화 때문에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드는 작은 도시다. 내일모레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노작가 티노 스테파노니(Tino Stefanoni)가 직접 소형차를 끌고 마중을 나왔다. 도착한 곳은 너른 잔디와 정원이 있는 18세기 말엽의 빌라. 한때 문지기가 살던 건물을 지나 티노가 거주하고 작업하는 건물에 도착했다. 재미있게도 옛날엔 이곳이 가족이 마실 우유를 제공하던 외양간이었다고 한다. 거실 벽에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교류하는 작가들끼리 교환해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고 했다. 낯익은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시작하겠다 한 인터뷰는 티노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한 일품 파스타와 함께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1964년에 루치오 폰타나와 함께 찍은 사진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아침식사를 하고, 스튜디오로 ‘출근’합니다(스튜디오는 그의 빌라 안에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작업하고, 일정한 시간에 ‘퇴근’해요. 아티스트는 ‘이단아’적 삶을 살 것이라는 게 고정관념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야말로 ‘아티스트계의 이단아’인 것 같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티스트의 이미지는 이미 식상하잖아요.(웃음) 

당신의 작품을 보면 긍정적 기운이 느껴져요. 갤러리의 조명을 꺼도 작품 자체가 빛을 발산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재미있군요. 사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로마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그가 ‘몇 년 전’이라고 칭한 시점은 무려 1986년이었다). 전시장은 자연광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갤러리에는 약간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하나 있었죠. 그런데 전시 중에 한 컬렉터가 무심코 벽에 기대었다가 실수로 조명 스위치를 꺼버렸어요. 황급히 다시 켜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잠깐만요! 멈춰봐요! 그림 좀 봐요. 그림에서 빛이 나요!” 창으로 들어오는 약한 빛을 받아 신기하게도 그림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죠. 아마 그러데이션을 많이 쓰는 제 명암법 때문인 것 같아요. 밝은 단색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더 밝게 보이죠.


I paesaggi bianchi 38E, Tecnica mista su tela, 80×95cm, 1968-76

색감이나 소재, 빛 처리가 그림의 중심일것도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뒤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글을 읽은적 있어요. 

제 진짜 의도는 '극대화'입니다. 색, 조명, 명암, 형태 등 회화의 구성 요소 모두를 극한으로 강조하는 거죠. 제 작품의 출발점은 르네상스로 올라갑니다. 그 고전회화의 규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극한까지 강조했습니다. 시선의 중심을 이 회화적 요소들 자체로 옮긴 실험의 결과물은 오히려 그 시작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전혀 새롭고 현대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이렇게 방법을 차용하긴 했지만 제가 표현하려 한 것은 고전 회화 자체가 아닙니다. ‘그림’이라는 개념, 즉 ‘대표그림'을 추구했죠. 


대표그림의 의미가 뭔가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셔츠’라는 단어 위에 그려진 그림, ‘자동차’라는 단어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그 종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의 그림을 말합니다. 저는 ‘그림을 대표하는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습니다. 이 그림들은 거르고 걸러 순수한 형태만을 남깁니다. 제가 입고 있는 셔츠와 옆집 남자의 셔츠, 근처 옷 가게에 걸린 셔츠가 다 다르겠지만 그것들으 셔츠로 인식하게 하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게 셔츠의 핵심이자 정수죠. 개별특성을 다 탈락시키고 그 정수만을 나타내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셔츠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보자마자 한치의 의심 없이 그게 무엇인지가 직관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작가의 해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요.


인상주의파가 추구하던 것과 정 반대의 개념인 것도 같습니다. 

그들이 그린 풀을 보면 마치 땅에서 흙냄새가 올라올것 같습니다. 잎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 있지요. 실제로도 풀잎은 보라색, 붉은색 등 여러 색상들을 가지고 있고요. 반면 초록색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풀잎의 관념적인 색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장 관념적이고 대표적인 초록색 한 가지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립니다. 하늘은 하늘색. 풀은 초록색. 이 색들은 각각의 대상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색상이죠. 이렇게 가차없이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림은 하나의 ‘사물’이 됩니다. 이것은 마음을 위해 필요한 ‘물건’입니다. 마치 소파나 테이블이 몸을 위한 물건이듯이요. 극도의 분명함과 간결함에서 나오는 모호함을 통해 시적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 개념은 당신의 초기 작품에서 좀더 분명히 나타나는 것 같아요. 펜, 셔츠 등을 일반화된 아이콘처럼 그렸죠. 

네 맞아요. 그 후로 도로표지판 비슷한 작품을 했던 시기도 있었죠. 표면적으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림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줄기는 같습니다. 제 작품들은 시대와 형식을 떠나 모두 형이상학적인 경향이 있어요. 형이상은 요란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정적이고 고요하며 명상을 불러일으키죠. 이것이 그림을 통해 나오는 저의 내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테크닉이 바뀌고 이 느낌을 전하는 방법이 바뀌어도 저의 초기 작품부터 일관적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Segnale 19, Segnali stradali regolamentari-ferro verniciato a forno, 90×90×90cm, 1970


당신의 그림이 르네상스에 출발점을 두었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태리의 유서 깊은 예술사에는 르네상스 이외에도 여러 예술사조들이 존재하는데요. 르네상스가 근대예술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혹시 다른 애착이 있나요? 

옛날에 누군가 저한테 달력을 선물로 준 적이 있습니다. 달력에 1300년대에 활동했던 화가 베아토 안젤리코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자마자 이걸 당장 그리겠노라 했죠. 저는 이 그림을 모방했습니다. 모방을 통해 훔칠 수 있는 것은 다 훔쳤어요. ‘도벽’이라는 말이 있죠? 제가 좋아하는 단어인데요, 도벽이 있는 자들은 필요에 의해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훔치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훔칩니다. 훔치는 방법도 재미있어야 하구요. 조토에게서도 훔쳤고, 마사치오에게서도 훔쳤습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들을 본 순간 제 그림이 그 안에 있는 게 보였거든요.


‘훔쳤다’고 표현하셨지만 이미 옛날부터 고전 그림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그린 명작들이 많잖아요. 

사실 그래요. 제가 훔친 르네상스 화가들 중 베아토 안젤리코와 마사치오의 경우가 그렇죠. 마사치오의 '테오필로 아들의 부활(la resurrezione del figlio di teofilo)'은 베아토 안젤리코의 ‘수태고지(annunciazione)’에서 훔쳤어요. 동일한 구도와 배경이에요. 물론 마사치오가 더 후대의 화가였으니 좀더 화면이 풍부하고 발전된 모습이죠. 조르주 데 키리코의 ‘이탈리아 광장(Piazza d'Italia)’ 역시 베아토 안젤리코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그 역시 베아토 안젤리코의 그림 앞에서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죠.


시기마다 화풍의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시기별로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할까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시작은 클래식 회화에서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클래식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데 키리코, 카라, 모란디 등 1900년대 초반의 화가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죠. 그들과 제 그림 모두 베아토 안젤리코의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공통점은 그 이후에 발견했고요. 하지만 비슷한 시작에도 결과는 그들과는 또 다른 맥락 안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저만의 독창적인 화풍이 탄생하지요. 초기에는 비눗방울 모양의 볼록한 입체 안에, 풍경화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대상물을 그렸습니다. 비눗방울에 상이 반사되는 것처럼 20개의 비눗방울이 있으면 그 안에 같은 20개의 풍경이 반복되죠. 지나치리만큼 간결한 형태의 나무, 집 등은 실제의 나무와 집을 묘사한 것이 아니에요. 보는 이의 머릿 속에 이미 존재하는 ‘개념적’인 나무와 집이죠.

이후에 비눗방울 안의 사물들을 캔버스에 옮겼습니다. 연필, 물주머니, 셔츠 등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이 그 종을 대표하는 개념적인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하니 아이콘과 같은 형태가 나옵니다. 이후 순백의 캔버스에 이 아이콘들을 먹지를 통해 찍어냈습니다. 사물이 하나의 관념이자 기억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시도였죠. 현상이 마음에 각인되는 과정처럼 대상을 캔버스에 찍는 방법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기억처럼, 캔버스 위에 선명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났죠.

이후 하나의 소설을 ‘언어’ 대신 ‘이미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논리성을 배제하고 극한의 정확성을 추구하며 215페이지에 달하는 극세화를 그렸습니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를 엄격함에서 해방시키면서 좀더 자유로운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무제 시리즈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일관된 철학이 있습니다. 존재의 근본을 찾고자 하는 형이상학이죠.

Sinopia Z274A, Acrilici su tela, 100×120cm, 2013
Sinopia Z298A, Acrilici su tela, 150×200cm, 2013

무제 시리즈 이후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시노피아(Sinopia)라고 부르시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미완성작이나 표면이 벗겨진 옛 프레스코화에서 보이는 붉은 밑그림이 아닌가요? 

무제 시리즈엔 검은 실루엣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더욱 정제된 그림을 위해 여기서 무엇을 뺄까 고민하다 색깔을 빼고 검은 실루엣만 남긴 것이 ‘시노피아’ 시리즈입니다. 시노피아는, 말씀하신대로 프레스코화의 밑그림 또는 그 안료 자체를 말하기도 하지요.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과정을 아세요? 우선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마음에 들면 그 종이를 벽에 이리 저리 대보고 구도 등이 마음에 들면 이제 그림을 벽에 옮겨야 합니다. 이때 종이를 벽에 댄 채 실루엣을 따라 미리 못으로 낸 구멍들에 흑연가루를 찍어댑니다. 그럼 벽 위에 그 점들이 연결된 실루엣이 만들어지지요. 흑연가루를 찍어서 만든 만큼 또렷하지 않고 라인에 자연스레 번짐이 생깁니다. 제 시노피아에서 선이 뚜렷하지 않고 부드럽게 번지게 한 것의 기원은 여기서 찾을 수 있지요.


클래식 회화와의 연관성이 여기에서도 보이다니 재미있습니다. 특히 프레스코의 시노피아에 관심을 두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시노피아가 마치 어떤 그림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라파엘로가 프레스코를 그릴 때 시노피아를 먼저 그렸지요. 프레스코 채색을 하고 그림이 완성되고 나면 덮여 사라집니다. 하지만 라파엘로가 그리려고 했던 아이디어의 정수는 완성작이 아닌, 시노피아에 있죠. 저는 시노피아가 마법처럼 신비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정수이지만 아무도 볼 수 없거든요. 미스테리같죠.


캔버스의 크기를 작가의 열정의 크기에 비교하는 작가들도 있던데, 당신의 작품을 보면 사이즈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입니다. ‘시노피아’의 경우 작은 사이즈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그림이 100x120cm죠. 반면 무제 시리즈의 경우 제가 좋아하는 크기는 32x46cm로 꽤 작습니다. 자그마하기 때문에 마치 작게 빛나는 보석 같죠. 그 사이즈가 아니라면 오히려 200cm정도로 크게 그립니다. 중간 사이즈는 그리지 않아요. 그림마다 가장 어울리는 크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까지 있었던 밀라노 전시가 궁금해요. 주로 어떤 점에 포커스를 맞춘 전시였나요?  

스텔리나 전시회 말이군요. 옛날에 여아 고아들을 스텔리나(작은 별이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전시회장이 한때 이 스텔리나들이 밥을 먹던 곳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고아원 식당이 지금은 전시회장이 되었네요. 40여 년에 거친 작품활동을 형식에 따라 9개의 시기로 나누어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작품들을 돌아보는 전시회였습니다. 각 시기의 특성을 제 작품세계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죠.

Senza titolo Z311, Acrilici su tela, 36×36cm, 2014

197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셨습니다. 당시 비엔날레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1970년에 최초로 ‘실험관’이라는 게 생겼는데 당시 예술계의 큰 화두였던 ‘멕-아트(mec art 메커닉 아트)실험장이었지요. 저는 그 안에 기계를 설치하고 관객이 보는 앞에서 작품을 찍어내는 시연을 통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최근엔 베니스 비엔날레의 규모가 커지고 초대 작가도 수백 명에 이르지만 당시엔 나라마다 단 몇 명의 아티스트들만이 초대되었죠. 이태리가 개최국이라 초대 작가가 제일 많았지만 그래 봐야 5~6 명이었습니다. 공원 잔디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집들이 곧 갤러리였고 국가관이었는데, 지금은 그 옛날에 비해서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어요. 현 이탈리아 문화부장관이 비엔날레의 성장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죠.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뉴욕이나 런던 같은 분주한 도시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당신은 지금껏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을 해왔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누보레알리즘의 대가 아르망은 이미 화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였음에도 굳이 미국으로 귀화했습니다. '미국적'이지 않은 화가에게 배타적인 뉴욕 예술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제 작품은 개인적인 사색과 명상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뉴욕이나 런던보다는 이곳 레코가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은 뭔가요? 보통 작품 제작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저한테는 작품의 과정이 보다 포괄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어떤 계시와 같은 특정한 영감을 받아서 그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 작품들의 일관적인 철학과 그를 표현하기 위한 여정의 일부로서 개별 작품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요즘 저기 스튜디오 뒤쪽에 놓여있는 캔버스에 시노피아 작품을 그리고 있어요. 이 그림 앞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좀더 그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일종의 훈련과도 같은 일이죠. 저는 예술을 책을 쓰듯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지의 시작은 평범하고 자연스럽지만 매일 써 나가면서 크던 작던 작가의 세계가 투영됩니다. 그 모든 페이지들이 모여 책이 되고 전하려는 메시지가 생기죠. 기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 그림은 여러 번 덧칠을 해야 하는 그림인데다, 캔버스를 짜는 일을 제외하면 혼자 모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품마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다가온 전시회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봄에 스톡홀름에서 전시가 잡혀있었는데 완성한 작품의 개수가 모자라 가을로 미루었습니다. 스위스 누샤텔과 로마, 밀라노, 루카 등에서도 전시 일정이 잡혀 있어요. 전시 요청이 많은 건 좋지만 제가 작품활동을 하는 속도는 변함이 없어서 그들의 요청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당신의 작품을 관람하고 난 관객들이 당신을 어떠한 작가로 기억했으면 하나요? 우연히 갤러리에서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한 관객을 상상한다면요?

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이미지로 읽는 사람과 그 이미지 이면에 있는 의미를 읽는 사람입니다. 후자는 아방가르드적인 성격을 가진 갤러리스트의 경우가 많죠. 우연히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접했다면 전자에 속하겠군요. 관객이 제 그림을 보는 순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눈 앞의 이미지에서 전쟁보다는 평화, 폭력보다는 고요한 명상을 떠올려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림이,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원 기사 링크

http://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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