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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Feb 02. 2021

삼천포 코너-해안선에 저게 뭐꼬

범장의 종류

한 번은 친구들과 장거리 레가타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가는 경로였지만 거리로는 편도로 일주일 정도 걸리는, 나름(무늬만?) 오프쇼어 레가타였죠.

바람이 없어 무료하게 늘어져 있던 크루들 중 하나가 저 멀리 해안선에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망원경으로 보니 연기였습니다. 육지의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배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는 상황. VHF를 가지고 올라와 볼륨을 높이니 아니나 다를까 구조 요청이 있었고 근처 배들이 접근 중이었습니다. 우리 배에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뱃머리를 돌릴 준비를 하고 대기했습니다.

 

엔진실에서 불이 난 모터요트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승선 인원들은 다친데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바람 없고 파도도 없는 날, 사고 선박은 우리 배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지만 노련한 뱃사람들 눈에는 그게 보이나 보더군요. 하긴, 통신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해안선에서 매의 눈으로 각종 정보들을 찾아냈어야 했겠죠. 저 멀리 해적선이라든가...




이런 비상상황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크루들이 해안선을 바라보며 주로 하는 짓은 '배 맞추기'입니다.

이탈리아 대륙의 리구리아(Liguria) 주에서 남쪽으로 꼬박 한나절 세일링을 하면 프랑스령 코르시카(Corsica)에 도착합니다. 코르시카에서 돌아오는 배들은 비슷한 경로로 위로 올라오기에 서로 멀리서부터 접근하다 바다 한가운데서 스쳐 지나치곤 하죠.

저 멀리 해안선에 범상치 않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싶으면 배 맞추기 게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합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렴풋하던 형태는 점점 명확해지고 퀴즈의 승자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의 요트 비너스처럼 비율 자체가 특이한 배는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아싸, 맞췄다!

주로 재미있는 대상은 세일링 요트죠. 높은 돛이 멀리서도 잘 보이거든요.

전형적인 삼각돛이 아닌 범장이 보이면 다들 기대에 부풀어 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아래처럼 멋진 클래식 요트와 마주치는 행운을 맞이하기도 해요.


또 하나의 재미있는 광경은, 저 범장이 케치(ketch)다 욜(yawl)이다 등의 격렬한 선상 토론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삼각돛 슬룹(sloop)과 마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돛대가 둘 이상이거나 간혹 사각 세일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각각 범장의 이름이 있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손쉬운 스웩의 기회가 되어 주곤 하죠. 이 포스팅에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슬룹(Sloop)


가장 현대적인 범장의 형태로, 한 개의 돛대 앞뒤로 돛이 있는 요트를 슬룹이라고 부릅니다.

메인 세일이 삼각형인 슬룹을 버뮤다 슬룹(Bermuda Sloop)이라고도 하는데 17세기 버뮤다섬에서 처음 탄생한 세일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요. 1900년대 초반 아메리카스 컵의 J클래스 요트가 버뮤다 리그를 선보인 이후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일 조작이 간단하고 효율이 좋아 현대적인 요트 대부분이 이 범장을 하고 있습니다.

J 클래스


메인 세일이 좀 다르게 생긴 슬룹도 있어요. 사각형 세일 윗변에 나무 지지대가 붙어 있는 형태죠.

NY30

옛날엔 나무로 돛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높이에 한계가 있었고, 낮은 마스트에서 최대한 높고 넓은 메인 세일을 확보하기 위해 나온 형태입니다. 이런 걸 가프 리그(Gaff Rig)라고 합니다. 옛날 나무배에서만 볼 수 있는 범장이죠.




커터(Cutter)


요트에서 윈치가 사용되기 전에는 인력으로 줄을 당기고 늘이며 세일 트리밍을 했습니다. 세일이 너무 크면 조종이 어렵고 위험하기도 했죠. 그래서 이를 조작 가능한 범위의 크기로 나눌 필요가 있었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이 헤드 세일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돛대가 하나인데 헤드 세일이 두 개 이상인 요트를 커터라고 부릅니다.

아름답죠? 무려 모나코 국왕 알베르 2세의 요트이자 모나코 요트클럽의 플래그쉽인 튀가(Tuiga)라는 요트입니다. 전형적인 커터 범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일이 나누어져 있으니 각자의 세일을 트리밍 하는 것이 덜 힘들었겠네요.

현대적인 요트도 헤드 세일이 두 개 이상인 경우가 많지만 굳이 커터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커터는 주로 옛날 배를 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죠.




케치(Ketch)


요즈음에는 전장 100미터가 넘는 슬룹도 개발 중이라지만 초대형 세일링 요트에는 케치 범장이 좀 더 많습니다. 케치는 돛대가 두 개인 범장을 말합니다. 높은 주 돛대가 앞쪽, 이보다 낮은 보조 돛대가 뒤에 위치해 있습니다.

돛대가 너무 높으면 높이 제한이 있는 파나마 운하도 통과할 수가 없는 데다가 이를 지지할 배의 구조도 거대해지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세일 면적을 두 돛대에 나누되 앞쪽이 메인이 되는 케치 범장이 유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꼭 대형 요트가 아니더라도 케치가 종종 보이는데요, 역시 구조를 가볍게 하고 세일 트리밍에 필요한 힘을 경제적으로 나누기 위해 채택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돛대가 두 개인만큼 조종이 더 복잡합니다. 덱 기어가 발달한 요즈음은 웬만한 대형 요트도 슬룹으로 만드는 데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중소형 요트에 케치 범장이 있다면 옛날에 건조된 배일 확률이 높아요.




욜(Yawl)


케치와 헷갈리기 쉬운 욜 범장, 마주치는 빈도는 크지 않습니다.

돛대가 둘이고 앞쪽이 주 돛대인 것은 같으나 뒤쪽 돛의 위치와 역할이 다릅니다. 케치의 뒤쪽 돛대에 달린 세일들이 어쨌든 메인 동력의 한 부분이라면 욜의 뒤쪽 돛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칩니다. 작은 크기 때문에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만만한 세일이기도 하죠.

뒤쪽 마스트가 타(rudder)보다 뒤에 위치해 있어 외형적으로 케치와 구분이 되기도 합니다.




스쿠너(Schooner)


코르시카 가는 길에 운 좋게 마주친 멋진 클래식 요트는 돛이 두 개이고 뒤쪽 돛대가 더 높은 스쿠너였습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 유럽과 미주 모두에서 흥했던 범장이라 현역 클래식 요트들 중에서 심심찮게 보입니다. 돛대가 두 개인 경우가 많지만 세 개, 네 개인 스쿠너들도 있습니다.

아마 가장 유명한 스쿠너는 1851년 아메리카스 컵에서 승리한 아메리카(America) 대서양 횡단 최단 기록을 세운 아틀란틱(Atlantic)인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America)
아틀란틱(Atlantic)의 레플리카

둘 다 정말 아름답죠... 아틀란틱은 1982년 노후해 침몰하며 사라졌지만 2010년 누군가 레플리카를 건조했습니다. 지중해에서 주로 항해한다고 하는군요.


아틀란틱이 세운 기록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고 있다가 2005년에야 마리샤 4(Mari-Cha IV)에 의해 단축됐습니다. 마리샤 역시 돛대 두 개짜리 스쿠너인데 옛 스쿠너의 타이틀을 현대식 스쿠너가 이어받은 셈이었네요.

Mari-Cha IV



https://www.americascup.com/en/history 

https://www.d3tuiga.com/en/

https://medium.com/schoonermayan/mayans-history-the-missing-bits-d3a2f2e2d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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