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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Feb 17. 2019

우연히 마주친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

Giacometti Institute

올해도 시즌이 돌아왔다.

나폴리에서 아홉 시간 운전을 해 밀라노에 밤 늦게 도착했다는 마리오에게서 다음날 아침 벌써 전화가 온다.


"피곤해서 하루이틀 쉬려고 했는데 내일만 날씨가 좋대!"


겨울에만 사람이 사는 마리오의 밀라노 집은 매번 아홉달 만에, 예외없이 하나씩의 써프라이즈를 준비한 채 주인을 맞는다. 올해는 온수 수도꼭지가 망가져 있어 쉬지도 못하고 종일 고군분투를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내린 눈과 해가 뜬 맑은 날은 포기할 수 없는 마리오는 칠십대의 열혈 스키어.


스위스의 Engadin 가는 길은 길눈 토탈 다크니스인 나에게도 어느덧 익숙하다.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수다를 멈추고 집중을 해야 하는 고속도로 분기점을 지나면 내내 경치좋은 호수나 작은 마을들을 관통하는 루트이다. 끼아벤나를 지나며 특산물 브레사올라로 점심을 먹는 것도 통과의례. 신분증을 깜빡하고 놓와 긴장 속에 스위스 국경을 지나는 것은 이젠 그만했음 싶지만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이 익숙한 루트에서 오늘 새로운 표지판 하나를 본다.


STAMPA


이미 수없이 봤을 것이 틀림없다. 이 마을이 갑자기 개명을 했을 리도 없다. 불세출의 아티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태어난 스탐파라는 '어떤 스위스 마을'이 내가 Engadin 갈 때마다 통과하던 마을 중 하나였다니..



"어... 여기가 스탐파? 여기 자코모 알베르티 태어난 데 아니야? (아마도 알베르토 자코메티)"





주요 현대미술 갤러리에에 꼭 작품 몇 개씩은 전시가 되어 있으므로 '나 이 아티스트 알어'라고 생각하기 쉬운 케이스. 지인이 한국에서 자코메티 전시를 후원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바로 내가 하던 착각이었다. 이런 근거없는 친근감을 느끼던 자코메티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전시 소식을 들은 한 디자이너가, 

"자코메티가 태어난 스탐파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아요." 

라고 하자 '신문 이름도 아니고 동네 이름이 별나군'이라고 생각하며 스탐파라는 지명이 뇌리에 남았다. Stampa는 이태리어로 print 혹은 press 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7월 초, 나는 파리에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한시간 넘게 헤매고 있었다. 지하철 대신 자전거로 다니기에 파리는 예상보다 대도시였고 나의 방향감각은 예상보다 더 어긋났지만 고집을 부리며  잃고 돌아가기를 무한반복 하던 중이었다.

미처 구글맵 체크를 못한 채 감을 믿고 꽤 멀리까지 왔는데 역시나 또 길을 잘못 들었다. 파리의 끝없는 연옥에 빠진 듯한 좌절감과 누적된 피로에 일단 자전거를 주차하고 어디든 들어가 좀 쉬기로 했다. 근처 까페라도 찾으러 구글맵을 다시 켜니 바로 앞에 Giacometti Institute가 있다고 나온다.

뭐 하는 덴가 입구에 다가가니 웬 정장 떡대가 '전시 중이고 사전 예약을 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며 입장을 불허한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한 눈에도 녹초였을 나는 '지금 자전거 타고 와서 힘드니까 로비에라도 잠깐 앉아 쉬다 갈께요.'라며 허락을 구했다. 리셉션 건너편으로 유리벽 너머 누추한 공간 하나가 재현돼 있었다. 웬 재떨이에 담배꽁초까지..


'이게 뭘까 자코메티가 설치미술도 했나'


그 앞 계단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자니 누군가 들어온다. 얘기가 길어지더만 마지막에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몇 마디가 나온다. 나는 매표소 직원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 이리 오세요. 닫기 한시간 전이고 예약하고 안 온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우연히 길을 잃어 들어가게 된 Giacometti Institute,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때가 개관한지 고작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사.





유리관 안의 공간은 설치미술이 아니라 자코메티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었다.

거의 풍화작용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 보이는 낡은 나무의자와 지저분한 벽, 길거리 걸인들 아지트에서 흔히 보이는 스타일의 매트리스.. 방을 가득 채운 석고상들이 없었다면 이 공간은 그야말로 노숙자 움막이었다. '재현'이라고 한다면 저 누런 벽은 프레스코 벽화 옮기듯 실물을 떼어내 붙인 것인가 궂이 새로 그려낸 것인가. 아르누보 스타일 건물의 큰 유리문으로 들어온 한여름 파리의 밝은 햇빛에,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찌든때들이 당황하는 듯한 느낌이다. 깔끔한 로비에 어울리지 않는 지저분한 공간. 유리 진열장 안에 마치 전시품처럼 노출되어 있는 아티스트의 아틀리에라니..


한 구석엔 자코메티가 설명하며 작업을 하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이 곱슬머리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다. 작품으로 짐작했을 땐 다소 조용하고 우울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말이 많고 모션이 강했다. 역시 스위스 사람이어도 이태리계인지라 어쩔수 없는 발랄함이 있달까.

이 영상은 자코메티 아틀리에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전시된 아틀리에가 마치 돈까쓰집 입구의 플라스틱 돈까쓰 메뉴 같은 데에 반해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에 있던 오리지날 아틀리에는 고독한 저승세계 같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Robert Doisneau, Alberto Giacometti dans Son Atelier, rue Hippolyte-Maindron à Paris, 1957.


개관을 맞아 선보이는 첫 전시의 주제는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vu par Jean Genet, 쟝 쥬네가 본 자코메티 아틀리에였다. 이는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쟝 주네의 동명의 책이기도 하다.

사르트르의 소개로 자코메티를 알게 된 주네는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며 친해졌다고 한다. 긴 시간 불편한 스툴에 앉아 나눴던 대화와 당시 스튜디오에 있던 작품들에 대한 묘사와 분석으로 쓴 책이다. 이는 그가 동경하던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그 세계를 잉태한 아틀리에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다.

 

그는 아틀리에에 들어서자마자 일을 시작한다. 호기심에 가득차서. 그는 만들어질 조각상 -따라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과 현재에 동시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조각을 멈추지 않는다. 손가락은 위아래로 춤을 추고 그 순간 아틀리에 전체가 살아 진동한다.


자코메티 파운데이션에서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품들 다수가 포함된 이번 전시는, 그 책의 구성처럼 아틀리에, 여성의 묘사, 죽음의 세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책에서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자전거 타다 길 잃어 우연히 발견한 곳이지만 여러 유명한 아티스트중 하나에 불과했던 자코메티에 특별한 점을 찍어 준 것 같다. 몇주 뒤 방문한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다시 자코메티의 작품들과 만났을 땐 마치 지인의 작품을 발견한 듯 반가웠다.


이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처럼 여러 거장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가 되어 있는 경우 작품 앞에서 길어야 몇 분 응시하다 지나치는 경험을, 그 유명세에 비례한 횟수만큼 반복하게 된다. 이것 만으로도 작가에 대한 친근감이 증가하지만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 세계를 구현해 놓은 자코메티 인스티튜트에 방문한 이후엔 이 곱슬머리 아저씨가 왠지 아는 사람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걷는 사람도 있고 멈춰있는 사람도 있다. 표정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명백히 정지되어 있음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는듯 한 느낌은 왜일까.

 

멈춰 있는 것은 없다. 아마 자코메티가 엄지손가락으로 클레이를 밀어 세운 각도, 곡선, 덩어리, 출렁거리는 혹은 찢어진 부분들 각각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일 수도. 그 하나하나가 만들어질 당시의 감성을 여전히 내뿜고 있다. 공간을 만들어 내는 어떤 점도 어떤 능선도 죽어 있는 것이 없다.

장 주네가 책에서 쓴 내용이다.


인터넷에 자코메티 인스티튜트를 보다 자세히 그린 글이 있어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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