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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Mar 03. 2019

목표설정의 딜레마

인터넷에서 들은 얘기다. 수능을 죽쒀서 목표하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교대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제대 후 재수를 할 계획으로 군대에 갔는데 그 사이 교사가 최고의 직업으로 등극하고 교대 커트라인이 엄청나게 올랐다. 그는 그냥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 갈 무렵 가장 점수가 높은 과는 치대도 의대도 아닌 한의대였다. 의사이되 고된 레지던트 인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고 적은 모집 정원에 진입 장벽도 높아 당시의 한의사들은 초고소득자였다.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선배들은 한의대에 지원했다. 1학년부터 한의사가 꿈이었던 친구는 수능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재수를 선택했다. 다음해에도 한의대 커트라인에 미치지 못해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결국은 자퇴하고 공부를 계속하더니만 여섯 번째 수능을 치르고야 한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 사이 한의대 열풍은 사그라들고 더이상 옛날의 한의사 포스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이유 이상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그 목표를 고집했길 기원하지만 그가 2019년에 고등학생이었다면 다른 꿈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거의 이십년 만에 만난 대학 선배. 서로 굵직한 인생뉴스 업데이트를 해주던 중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노후 준비로 조마조마해 하며 사느니 인생 맘껏 즐기고 60살 되면 딱 자살할거야"

그 계획의 독창성과 참신함에 감탄하기 이전에 60살이라는 나이가 나를 놀라게 했다. 일부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커리어 전성기이고 고용된 직장인들은 곧 시작할 은혜로운 연금생활에 막 설레고 그런 나이 아닌가! 

일흔은 돼야 '노년기에 접어드나?'라는 자각을 비로소 시작하는 이태리에 오래 산 사람의 생각이다. 환갑에 잔치를하고 기념수건을 돌리는 한국에서라면 무의식 중에 부모 혹은 조부모의 수명을 인생의 길이로 생각할 수 있다. 40대 초반의 그가 십년쯤 지나서 바라볼 60세는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다. 60을 끝점으로 짜여진 인생 계획도 시간이 지나며 의심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이를 외면하고 지난 날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기를 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십년 이십년이라는 긴 기간은 그 변화가 천지개벽이겠지만, 사실 그 세월과 변화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목표와 계획이라는 것이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계획이라는 것은 과거에 만들어져 미래를 구속한다. 계획을 세울 당시 예측했던 미래는 그러나, 자꾸 움직인다. 겪어본 적 없는 의외의 사건들은 계속해서 터진다.

계획이란 지금보다 어리고 어리석었을 내가 더 편협한 전망과 미숙한 판단으로 내린 결정들이다.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여정 중에 나는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난 그 때보다 지금의 나는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고 나날이 지혜도 안목도 늘어가고 있다. 목적지 뿐 아니라 여행하는 나 자신도 그 사이에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목표한 바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높은 의지력의 승리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내 경로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몰비용에 초연해 지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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