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도착..;;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다

by EASYSAILING

대략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집 교환이 확정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은 당연히 비행기표 구매. 출발일로부터 고작 2주 남았으니 저렴한 저가항공은 꼭두새벽이나 오밤중에 뜨는 비행기들만 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운 좋게도 오후 다섯 시에 출발하는, 꽤나 인간적인 시간대의 비행기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출발 나흘 전, 경고 이메일이 하나 왔다.

마르세유의 공항 트래픽 컨트롤러들이 6월 30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리스크가 상당히 높다고.

“난 파린데 뭐”

하고 무시했는데 핸드폰으로도 문자가 오는 게 좀 이상하다. 혹시나 하고 문의하니, 마르세유에서 프랑스 전체 공항 트래픽을 관리하기에 내 비행기도 캔슬 위험이 크단다. 그제서야 비행기를 바꾸려니 파업 시작 바로 전날 저녁 9시 출발 편이 그나마 베스트.


출발일,

공항에 가니 보딩 시간이 지나도록 ‘게이트 정보 대기 중’이라는 메시지만 스크린에 뜬다. 그렇잖아도 도착 시간이 늦어 부담인데 연착까지 되나? 설마 아예 안 뜨는 건 아니겠지? 내일부터 최소 이틀 파업이라는데 나의 머피의 법칙은 또 이렇게 발현되려나? (참고로 내 밀라노 집 열쇠를 집 바꾼 파리지앵에게 주고 오는 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크린 앞에 서성이다 드디어 게이트 정보가 떠서 가 보니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늘 그렇듯 줄은 한 줄로 시작하되 두세 가지로 갈라져 끝나고 있었다. 둘 중에 짧은 줄의 끝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서 있다. 새치기를 할 셈으로 “어디가 줄인 거죠?” 물어보며 슬쩍 그 뒤에 섰다. 예외 없이 맥락에서 벗어나 이 질문을 하는 것은 동양인들의 종특: “근데 너 한국인? 일본인?”


알고 보니 파리에서 7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집도 내 목적지에서 매우 가깝다. 밤늦게 도착하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운이 좋네-를 프랑스어로 어떻게 해?”

“C’est une bonne chance!”

공항에서 시내까지 같이 들어가기로 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기내에서도 한참을 대기하더니 결국 1시간 반이나 늦게 출발했다.


파리 공항 도착 시간 자정. 중국 친구 Q가 타려 했던 2유로짜리 버스는 이미 운행 종료했단다.

공유 택시를 셰어 하기로 하고 Q가 스마트폰으로 차를 예약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공항 입구 택시 승강장에 진입이 어려운 건지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다. 우리는 공항 건물 앞 버스 승강장에서, 기사는 공항 건물 지붕 옥상(?)에 있는듯한 주차장에서, 서로 위아래로 마주 보며 손짓 발짓과 함께 통화를 하다가 Q,

“아무래도 주차장으로 올라가야 하나 봐”

우리는 짐을 들고 다시 공항 안으로 진입했으나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모든 에스컬레이터들이 멈춘 상태였다. 다시 밖으로 나온 Q, 중국인답게 당차다.

“에스컬레이터 멈춰서 갈 수 없어. 우리는 12번 버스 승강장 앞에 있을게. 네가 일루 와”

12번 버스 승강장 앞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기사는 황당하다는 손짓과 함께 얼른 위로 올라오라는 제스처. 그런데 그때,


“당신이 Q인가요?”

읭? 갑자기 버스 승강장에서 누군가 Q를 부른다. 본인이 그녀가 예약한 기사란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옥상 위의 기사와 서로 Q가 본인의 손님이라며 원거리 수화로 실랑이를 하다 결국 우리를 얼른 본인 차에 타워 출발했다. 아니 저 옥상 위의 기사는 Q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온 것이며 어떻게 그녀의 전화번호까지 알았단 말인가!

“C’est très bizarre! Très très bizarre 이상한 일이군 정말 이상한 일이야”


기사가 이탈리아어를 하는 모로코인이었던 덕에 미스터리는 차 안에서 풀렸다. 사실 이 ‘밑의 기사’는 Q의 전화를 받고 지시대로 주차장에서 12번 승강장으로 왔던 것. 그리고 처음부터 줄곧 Q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옥상 위에 있던 기사는 제삼자인 본인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시작한 직후 아래 버스 승강장에서 전화기 들고 통화를 하던 Q와 눈이 마주쳤다. 엉뚱하게 그녀가 통화 중인 본인 손님이라고 착각하고 어디로 오라는 지시를 계속했던 것.

Q 역시 통화 상대자가 위에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손짓 발짓을 해 가며 뻘짓.

진짜 기사는 Q와 통화 끝에 오라는 곳으로 갔는데 갑자기 옥상 위의 다른 기사가 나타나 클라이언트를 두고 다투게 된 상황.

더 웃긴 것은 이 세 사람이 난리를 치는 동안 혼자서 전화기 붙들고 짠하게 모노드라마를 펼쳤을 옥상 위 기사의 '진짜' 클라이언트.

어찌 됐건 그 오밤중에 무사히 집에 도착.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이라는 사실은 이 파리지앵이 밀라노 우리 집에 와서 열쇠를 받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집에 브리타 정수기 쓰세요, 집이 5층이라 물 장 볼 때 조금 힘들 수 있거든요.”

평소 계단을 많이 쓰는 나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계단이 이렇게 생겼을 줄은 몰랐다.


옮기기 편하라고 작은 가방을 이민가방 안에 넣어 한 덩이 짐으로 만들어 놨었는데 도저히 끌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작은 가방을 출산시켜 짐을 둘로 나눠서야 낑낑거리며 겨우 등정에 성공.


창을 여니 이국적인 야경이 펼쳐진다. 죽지 않고 살아왔어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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