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지켰지만, 마음은 지키지 못한 퇴근길
파출소 문이 거칠게 열리며 흙먼지 묻은 작업복 차림의 아버님이 들이닥치셨다.
조금 전, 무면허로 단속되어 파출소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던 외국인 노동자가 아버님을 보자마자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고, 순경님! 지금이 어떤 시긴데 이 사람을 여기 데려다 놓으면 어떡해! 올해 농사 다 망치게 생겼는데, 당신이 와서 일해줄 거야?"
아버님의 목소리가 파출소 천장을 때렸다. 주변에 민원인들도 몇 있었지만, 아버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욕설과 원망을 쏟아내셨다.
진부면의 타는 듯한 가뭄 속에서 겨우 일손을 구해 농사를 짓던 아버님께, 나의 단속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생계의 중단'이었을 것이다.
사실 단속 현장에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변엔 보는 눈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면허 없이 운전대를 잡은 불법체류자를 "사정이 딱하니 가보시라"며 보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법은 차갑고 명확했다. 하지만 파출소까지 달려와 울분을 토하는 아버님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네가 뭔데 내 농사를 망쳐! 어린놈이 융통성도 없이..."쏟아지는 욕설을 묵묵히 받아냈다.
그 욕은 나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야속한 세상과 엄격한 법을 향한 절규라는 걸 알았으니까. 나라고 왜 사정을 봐주고 싶지 않았을까.
저 아버님의 탄식을 못 본 척하고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라며 웃으며 보내주는 '친절한 순경'이 되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내가 그 순간 '좋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면,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무면허 사고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법을 지키며 사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결국 나는 욕을 먹는 쪽을 택했다. 아버님께는 평생 잊지 못할 '융통성 없는 순경'으로 남겠지만, 도로 위 모두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나의 온도는 때로 이렇게 차갑고 단단해야만 했다.
파출소를 나서는 아버님의 굽은 등 뒤로 여전히 원망 섞인 혼잣말이 들려왔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서류를 정리한다. 오늘 내가 먹은 욕은 내가 원칙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서글픈 훈장이자, 경찰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칭찬받는 순경보다, 욕을 먹더라도 제 자리를 지키는 순경.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지만, 내 마음의 온도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