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화받지 마"라는 명령을 어겼다.

‘정신 이상자’라고 저장된 차가운 이름표를 떼어낸 30분의 기록

by 김순경

“그 여자 전화, 절대 받지 마. 대화 안 통하는 사람이니까.”


파출소에 출근하자마자 사수가 신신당부하며 공용 휴대폰을 가리켰다. 액정에는 이미 ‘정신 이상자’라는 서늘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평창군청부터 면사무소까지, 그녀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미 ‘폭탄’으로 통했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를 걸어대고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피하는 존재.


나 역시 그 '데이터'를 신뢰했다. 경찰관인 나에게도 그녀의 전화는 보호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피해야 할 '소음'이었다.

'정신 이상자'라는 다섯 글자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면죄부처럼 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마지막 비명처럼 길게 울리는 벨소리에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네, OO파출소입니다.”


긴장한 내 목소리와 달리,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날 선 고함이 아니었다. 아주 가늘고 위태롭게 떨리는 한 여성의 목소리.

나는 행정적인 답변 대신, 그냥 툭 던지듯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요즘은 어떤 노래 들으세요?"


그 한마디가 댐을 무너뜨린 걸까. 그녀는 평창의 시린 밤공기를 녹이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녀는 god를 좋아했고, 특히 ‘촛불하나’를 아낀다고 했다.


“순경님, ‘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라는 가사 있잖아요. 그게 꼭 저한테 하는 말 같아서요.”


그녀가 온 군청을 들쑤시며 공무원들을 괴롭혔던 건 악의가 아니었다.

그 노래 가사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남자 순경인 내가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거친 파도는 잦아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뒤로 두 달간, 매일 30분씩 통화를 했다. 동료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누군가의 무너진 세계를 지탱해 주는 가장 조용한 '방범 순찰'이었다.


거짓말처럼 벨소리가 멈춘 건 두 달 뒤였다. 더 이상 군청에서도, 파출소에서도 그녀의 전화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녀를 ‘차단’할 때,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끝까지 ‘경청’해주면 끝날 일이었을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차단했던 건 전화를 거는 손가락이 아니라, ‘편견’이라는 성벽 뒤에 갇혀 떨고 있던 한 사람의 영혼이었다는 것을.


제복을 입은 내가 마주한 건 골목길의 범죄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외로움에 촛불 하나 켜줄 여유조차 없었던, 내 안의 부끄러운 오만함이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