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이기 전에 피해자였던 한 남자의 절규
그날 내 허리춤에는 차가운 쇠붙이가 매달려 있었다. 언제든 현장의 소란을 단칼에 끊어낼 수 있는 단단하고 명확한 도구, 수갑.
하지만 나는 그 차가운 금속의 냉기를 느끼는 대신, 주머니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아주 느리고 무거운 도구를 만지작거려야 했다.
식당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영업 방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 한 남자가 식탁을 치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 돈 내놓으라고!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주변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과 식당 주인의 날 선 신고 음성 사이에서 그는 이미 ‘무례한 범죄자’로 박제되어 있었다.
함께 출동한 팀장님은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영업 방해의 요건이 충분하니 강제로 퇴거시키려 했다. 효율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집행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누군가를 해치려는 악의보다는, 세상을 향해 억울함을 토해내는 절규에 가까웠다.
"팀장님, 잠시만요. 제가 저분의 사정을 조금만 들어봐 드려도 될까요?"
나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팀장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그리고 수갑 대신 내 귀를 내어주었다. 쏟아져 나온 이야기는 참혹했다.
4년 전, 믿었던 식당 주인에게 빌려준 2천만 원. 땀 흘려 모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속앓이 하며 보낸 1,400여 일의 세월이 거기 있었다.
돈을 갚기는커녕 자신을 신고해 버린 주인에 대한 배신감이 그를 괴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법의 잣대로 보면 그는 분명 영업을 방해하는 피의자였다.
하지만 삶의 맥락 안에서 그는 누구보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억울함에 깊이 고개를 끄덕였고, 지금 이 소란이 결국 본인에게 얼마나 불리한 화살로 돌아갈지 천천히 설득했다.
그때였다.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던 남자가 갑자기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툭 던진 한마디.
"순경님... 내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주는 경찰관은 처음이네요." 그 말 한마디에 현장의 팽팽했던 공기가 단번에 풀렸다.
남자는 거칠던 숨을 고르더니 스스로 가게 문을 나섰다.
10분, 20분... ‘효율’의 관점에서는 시간 낭비였을지 모르나, ‘예방’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은 귀한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신 순찰 중인 나를 붙잡고 그날의 하소연을 조용히 털어놓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만약 그때 내가 수갑을 먼저 꺼냈다면, 그는 법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은 ‘진짜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찰로서 나의 진짜 역할은 단순히 수갑을 채우는 '집행'이 아니라, 다음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사람의 무너진 마음을 지탱해 주는 '예방'에 있다고 믿는다.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면 1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꺼이 멈춰 선다.
나는 오늘 화요일, 여전히 수갑보다는 기다림을 먼저 만지작거린다.
그들이 다시 세상과 악수할 수 있도록, 나는 '치료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꺼이 그 길을 함께 걷는 '안전한 동행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