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급지 경찰서, 이름 없는 현장이 나를 경찰로 만든다
"여기서 근무하면 심심하지 않아요?"
경찰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뉴스에 나올 법한 큰 사건도 없고, 지도에서 일부러 찾아봐야 겨우 보이는 작은 동네.
사람들은 이런 곳을 보통 ‘한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한적한 동네에서 역설적이게도 경찰이 왜 필요한지를 가장 처절하게 배우고 있다.
기대와 현실의 간극
초임 발령 통지서를 받고 처음 이 동네에 발을 들였을 때,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다. 영화 속 긴박한 추격전이나 선배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던 굵직한 사건들은 이곳에 없을 것 같았다.
'경찰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과연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이곳은 흔히 말하는 ‘3 급지’다. 사건도 적고 인원도 적다. 하루 종일 순찰차를 몰아도 무전기 하나 울리지 않는 조용한 날이 태반이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은 내게 "편해서 좋겠다"는 말을 종종 던진다. 하지만 막상 제복을 입고 이 동네를 걷기 시작하자, 그 말이 얼마나 단편적인 편견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가볍지 않은 하루
이 동네의 하루는 고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마당에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하고, 눈 쌓인 고갯길에서 헛바퀴를 도는 차량을 밀어 올린다.
굳이 112를 누를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들어줬으면 하는 사소하고도 절박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사건이 없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불행이 터지기 전, 그들의 하루에 조금 더 깊숙이, 조금 더 먼저 개입하는 일이었다.
"별일은 아닌데요"라는 말의 무게
어느 날은 순찰 중에 마주친 한 주민이 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순경님, 별일은 아닌데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엔 꽤 무거운 삶의 비명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경찰은 꼭 피 흘리는 사건 현장에만 등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동네에서 경찰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어야 했다.
나의 판단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제복의 무게를 실감케 했다.
규정과 사람 사이에서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규정을 지키는 경찰인가, 아니면 사람을 보는 경찰인가.'
3 급지라는 이름표 안에는 '조용하다'는 뜻이 먼저 담기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사실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사람들의 외로운 시간이 숨어 있다.
화려하지 않은 현장, 기록으로 남지 않는 선택들,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해야 하는 일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동네에서 경찰이라는 직업이 지닌 가장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고 느꼈다.
내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동네가 나를 필요로 해서라기보다, 이 동네의 이름 없는 골목들이 서툰 새내기였던 나를 진짜 '경찰'로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