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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Jul 08. 2021

오늘의 신청곡

다섯 번째 이야기

당신 앞에 서면 왜 그렇게 허세를 부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도 잘 안다고 떵떵거리고는 뒤에서 몰래 찾아보며 겨우겨우 답하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것들도 잘한다고 자신만만해하면서 마른침을 꼴깍 넘기던 그 모습을

아마 당신은 알아차리면서도 모른 척 속아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일은 그 당시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었습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모아 마이크를 꼭 잡고 사랑한다는 가삿말이 나오면 부끄러운 마음에 노래방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 음 한 음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주었습니다. 그 박한 마음을 진심으로 반겨주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꼭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수 토이를 알게 되었지요. 익숙했던 노래들도 더러 있었지만 당신이 좋아한다고 말해준 노래는 참 낯선 노래였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귀에 익지 않아 끝까지 듣지를 못했습니다. 빨리 노래방에서 멋들어지게 불러주고 싶은데, 귓가에 익숙해지는데도 한 달이 걸렸으니

음이 입술에 붙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 노래를 당신에게 불러준 적이 없었네요. 이 노래를 부른 모습, 제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듣는 당신의 눈빛 전혀 기억이 남지 않는 것을 보니 착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참 바보 같지 않나요? 다시없을 사랑이라며 헤어지던 날 밤 그렇게 울고불고했던 나였는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주지 못했다니. 아니, 절대 잊지 못할 사랑이라며 머릿속에 온통 그 흔적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나였는데 이렇게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오늘도 이렇게 당신을 잊었나 봅니다. 잊었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퍼즐 조각 하나가 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맞춰진 느낌이지만, 실타래가 꼬여버린 것 같으면서도 다시 보니 매듭이 된 것 같은 감촉이지만.

저는 이제 이 노래를 곧 잘 부르게 되었습니다. 것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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