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선순환 열차에서 환승을 외치다
네 번째 이야기
지하철 2호선, 외선순환 열차를 처음 보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열차를 타고 내리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서울 한복판을 돌게 되는 걸까? 하는 그런 생각.
처음엔 웃었다.
흡사 누군가의 아재 개그를 듣고는 피식하고 웃게 되는 정도의 농담 정도로 치부했다. 한 번쯤은 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빙돌아 원래 탔던 곳으로 내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생활이 꽤나 길어지고 있다. 이제는 외선순환인지 내선순환인지, 성수행인지 신도림행인지 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내가 타고 내릴 곳은 정해져 있으니까.
생각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 생각 없는 시간들이 필요할 만큼 나를 소모하면서 살아갈때였고, 나는 괜찮다고 되뇌지 않으면 한없이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채워짐 없이 살아간다는 건 꽤나 무서운 일이었다. 왜냐면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감정마저 소모가 되어버려 무의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를 보고도 별 감흥이 없어서, 그 다음번엔 어떤 영화를 볼 지 30분 내내 고르다 그냥 닫아버리는 상태. 하다못해 게임을 하더라도 조금만 어려워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키보드만 틱틱 누르면 알아서 나아가는 초급 단계만 머물다 금세 싫증이 나서 일주일째 노트북을 켜보지도 않는 그런 나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펜을 잡았다. 글 쓸때만큼은 나를 돌아보며 나를 채워나가려 했던 그 아득했던 기억이 좋았던만큼,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대단한 결과물은 아닐지 모른다. 활자로 남은 글들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 마음잡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짐처럼 되뇌는 주문들.
정체되지 말자, 새로운 것을 두려워말자, 일단 하자.
평소에 전시회는 영 가볼 기회가 없어 관심을 두어본 적이 없었다. 영화, 음악, 책은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림이나 사진에는 영 흥미가 없다가, 최근 우연한 기회로 집 근처 사진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내가 지루해하는 것을 지인이 알아차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씩이나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39점의 작품을 보는데 2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 공간에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정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한 작품 앞에서 몇십 분을 서있다 지탱하던 발이 뻐근해져서야 다른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온갖 글감들이 쏟아지는데 차마 다 기억하고 받아내지 못한 게 아쉬워 한번은 다시 가보지 않을까 싶다.
그냥 약속을 미루고 집에서 드라마나 볼까, 고민하다 몸을 일으켜 문밖을 나섰던 나를 칭찬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의로는 평생 열어보지 않았을 문이다. 이렇게 오늘도 내 화분에 생경함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넘칠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꽤나 메말라있던 화분 속 흙이 적당한 빛깔로 물들며 촉촉하게 머금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