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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Jun 12. 2021

그 계절, 사랑의 온도

Prologue

숨 가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늦은 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향하는 느릿한 에스컬레이터에 살짝 기대이내 상념에 빠져듭니다.


꼭 오늘 같은 밤이면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냉장고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맥주 한 캔, 그리고 제 책상 깊숙한 곳을 오래간 지키며 이따금씩 날 것의 이야기들로 띄엄띄엄 채워졌던 나의 일기장.


지금은 영 다른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지만 내심 글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시작은 창대 하였으나 끝이 미미하여,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남겨 두었던 꽤나 많은 글들이 저의 일기장 위에 미완의 습작으로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모아 제 인생 첫 번째 악장으로 매조지해보고자 합니다. 끝없는 쉼표 사이에 온점 하나를 올려 보고 싶습니다. 끝내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세상 밖으로 내비치기 위하여 써내려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글자 씩, 그리고 또 한 문장 씩 켜켜이 써내려 갈 때마다 온전히 내 자신과 추억에 집중하는 아득한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로써 나라는 사람이 다시 만들어져 가는 기분들. 기억의 조각들을 추억으로 응집시켜 글로 생각을 재정비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그저 좋을 뿐이었습니다.


 말은 되뇌일수록 향이 진해지고, 생각은 써내려 갈수록 깊이를 더한다고 믿습니다. 활자 위에서는 좀 더 느리게 살고 싶습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신중해지고 싶습니다. 한 걸음 내딛고서는 털썩 주저앉아 밤하늘 별을 볼 때까지 기다려 보기도 하고, 지난날 마셨던 샘물이 생각나 왔던 길을 굽이굽이 되돌아 가보고도 싶습니다.


나를 위해서 써 내려가는 이 이야기들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화살표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구름처럼 평이하게 흘러가는 운율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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