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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Feb 19.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10

서점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쉽고 안일한 방법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점점 강박이 되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바로 메일함 열었다. 오! 스페인 작가 한 명으로부터 답메일이 왔다. 접속, 연결, 소통! 글로발 연대! 드디어 스페인 친구가 생기는 것인가?라는 김칫국 한 사발을 마시며 답메일을 클릭했다.


안토니오는 연락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일이 있어 홈타운에 있고 마드리드에는 10월에나 온다며 대신 스페인 한국문화원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레지던스에서도 가깝다는 그곳에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오고 행사도 열린다는 것이었다. 또한 극장 여러 곳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 자신이 각색을 맡은 셰익스피어 원작 연극도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10월에 마드리드에 돌아오면 연락을 하겠다며 메일을 마무리했다.


1) 고맙다. 2) 스페인 한국문화원에 가보겠다. 3) 미안하다. 연극은 볼 것 같지 않다. 4) 10월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중 3)을 빼고 정리해 답메일을 보냈다. 안토니오는 토지문화관에서 한국에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고마운 답장을 주었고 그가 마드리드에 돌아오면 만나보고 싶어 졌다. 페르난도로부터도 메일을 받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에게만 답이 와도 만족하기로 했으니 답장 집착은 이제 접어도 될 듯하다.


지난주 스페인 광장에서 마치 마법에 휩싸인 듯 녹색 천막에 둘러쳐진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동상의 모양만 간신히 목격하고는 좌절에 빠져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늘은 어찌하여 딱 이 시기에 내 영감의 아이콘이 자리한 현장을 공사판으로 만드신 것인가! 오호, 통재라! 풀도 죽고 김이 새고 마치 그걸 못 보면 돈키호테에 대해 제대로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은 피해의식조차 돋아났다. 그러던 어제 지하철 '오페라' 역을 지나는데 벽에 붙은 [뮤지컬 돈키호테] 공연 홍보판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책들이 탑처럼 쌓인 공간을 뒤로하고 돈키호테가 서 있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깃털로 그를 노리듯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지하철 역 한편을 화려하게 채운 뮤지컬 돈키호테 홍보판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빠진 늙은 이달고(시골 귀족)가 뒤늦게 뒷북치듯 기사도 정신을 되살리겠다고 방랑 기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이야기가 아닌가. 주인공도 책벌레고 이야기 자체도 액자 소설로 책에 대한 풍자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 포스터는 책탑을 배경으로 양복을 입은 돈키호테가 느긋하게 서 있는 것이다. 이 포스터를 본 순간 머릿속에 불이 들어왔다. 그렇다. 돈키호테를 보려면 책을 보면 된다. 서점으로 가자. 서점에 가서 만나면 된다. 책의 형상을 한 돈키호테를, 책 속 돈키호테를 목격하자. 무거워 들고 오지 못한 한국판 대신 현지어가 빼곡한 원서를 집어 들면 그 질감만으로 마치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얻듯 막강 파워를 얻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랑 비아를 걷게 되었다. 그랑 비아는 마드리드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큰길’이다. 스페인 역시 광화문 대로에 교보문고가 있듯 큰 서점은 큰길에 있었다. 대형서점은 그랑 비아 큰길의 유명 백화점과 명품 샵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리해 있었다. 그것 아는가? 교보문고 주소가 ‘서울시 중구 광화문 1가’로 끝난다는 걸. 우리나라도 스페인도 대표 서점이 중심가 대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책 안 읽는 시대에 그러한 상징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반가웠다.


서점 최고의 인테리어는 역시 책으로 가득한 책장.



서점으로 들어가자 언제 마주해도 친숙한 책 벽이 나를 맞아주었다. 카페 최고의 인테리어는 손님이지만 서점 최고의 인테리어는 역시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다. 교보문고에 비하면 한참 작은 규모이지만 안쪽으로 작은 원형 공간과 의자들이 자리한 '작가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도 보였다. 한쪽에서는 책을 구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작가와의 담소가 이뤄지는 서점의 저녁 풍경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돈키호테를 찾으러 왔으니 본격적으로 서가를 살폈다. 이사벨 아옌데, 바르가스 요사,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 스페인어권 대작가들의 이름이 보였다. 세르반테스는 너무 오래된 인물인가? 그렇다고 서가에 없을 리가... 하며 살펴봤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서점 중앙에 놓인 내 키 크기의 작은 책장을 발견했다. 멀리서도 또렷이 책 표지에 적힌 세르반테스의 이름이 보였고, 서둘러 다가갔다. 책을 꺼내보니 세르반테스에 대한 전기인 듯했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는? 그 책을 꽂는데 아뿔싸 바로 옆에 돈키호테가 떡하니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도 돈키호테, 그 아래도 돈키호테, 맞은편 서가도 돈키호테... 중앙에 자리한 작은 책장 전체가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에 대한 책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싹 다 돈키호테 컬렉션!


나는 돈키호테 책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각각의 기발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책 표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그것은 책의 얼굴이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소개해야 하며 책을 가지고 싶게 만드는 이유도 되어야 한다. 책들의 얼굴 같은 표지마다 다채롭게 돈키호테의 모습이 구현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고 멋있었다. 풍차와 그에 맞서는 돈키호테를 피카소 풍으로 묘사한 표지,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의 모습의 부조를 사진으로 찍은 표지, 유명한 구스타브 모로의 돈키호테 삽화 중 돈키호테의 죽음 부분을 담은 표지, 그래픽 아트처럼 깔끔한 선과 화려한 색채로 풍차 대신 풍력발전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라만차 평원을 묘사한 표지 등... 마치 '돈키호테 표지 경연대회'라도 펼쳐진 듯했다. 나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며 책 속 저마다의 돈키호테 아트를 담아나갔다.


책을 펼쳤다. 역시 원서의 글씨는 읽기 쉽지 않았지만 그 단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분 중 김용의 <영웅문>을 원서로 읽고 싶어 중문과에 진학한 후 중국어 번역자가 된 분이 있다. 돈키호테를 원서로 읽기 위해 지금이라도 스페인어를 배워야 하나? 원전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잠시 그런 호기가 생겼다. 책이 주는 편안함, 책이 주는 특별함, 바로 책의 마법이다. 오랜 시간 책밥을 먹고 살아온 나로서는 마치 크리스천이 성경책을 만지며 기도하듯, 원전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파우스터>를 쓰는 일 년 간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마다 파우스트를 만지작대고 다시 읽고 심지어 베고 자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독일도 못 가보고 파우스트를 원전으로 한 작품을 쓴 내가 아닌가. 반면 '돈키호테 프로젝트'는 다르다. 쓰기도 전에 돈키호테의 나라에 와서 돈키호테 원전을 만지작거리며 늙은 기사의 흔적과 행적을 쫓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이 특별한 행운이 내 차기작의 거름이 되길 바라고 나 자신이 그 토양이 되길 바라며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귀국 길에는 돈키호테 원서를 한 권 꼭 사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책을 살지는 좀 더 고민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표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채롭고 인상적인 돈키호테 표지들



서점을 나와 뭔가 자신감이 충만해진 나는 그랑 비아 거리를 계속 걸어 나갔다. 그리고 책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던 걸까? 소심하고 내성적인 소년은 맞벌이 부모가 없는 텅 빈 집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 공상하는 것을 즐겼지. 책을 좋아하니까 부모님은 책을 더 사주셨고 놀이공원보다는 서점을 데려가셨지. 지금의 교육환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책을 많이 읽은 탓에 학업 성적이 좋게 나온 것이 그 시절엔 당연했었지. 어린 시절 책과 친해진 것이 내게는 가장 큰 행운이었고 결국 업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 첫 번째 직장 영화사를 나온 뒤 백수로 지내다 우연히 취직하게 된 두 번째 직장이 출판사였다. 어째 출판사 생활은 하나도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았었지. 당시 나는 주말에 대형서점을 돌며 우리 출판사 책을 확인하는 걸 즐겼고 서점 직원은 영업부장에게 당신 출판사 편집자가 주말마다 매대에 출몰한다고 언질을 해 사장님에게 칭찬을 들은 적도 있었다. 나로선 당연히 즐거운 취미일 뿐이었는데, 주말에도 매대를 돌며 활동적으로 일하는 편집자로 오해받고 칭찬을 들었던 기억... 그건 다 좋아서, 내가 끌려서 한 일일 뿐이었다. 나무를 재가공해 만드는 책, 책이야말로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출판사 생활 4년 간 나는 책을 배웠고 이야기를 꿈꾸었으며 쓰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시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도 계속 책을 읽고 썼으며 마침내 내가 직접 쓴 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신비한 과정과 감동적인 선순환을 어찌 다 말하랴. 젊은 시절 세르반테스는 길거리에 떨어진 종이 쪼가리에 쓴 글귀도 주워 읽을 정도로 활자 중독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도피자로, 군인으로, 세금징수원으로, 죄수로 살아오면서도 책을 멀리 하지 않았고 마침내 인생 말년에 돈키호테라는 마스터피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에게도 내게도 책은 나침반이자 돛대이자 닻이었다.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다시 넓은 광장과 장대한 건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아까 돈키호테 표지에서 본 라만차의 평원과 풍차 같아 보였다. 나는 환상이 펼쳐진 거리를 향해 말발굽 소리를 내며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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