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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Feb 21.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11

첫 번째 미술관


돈키호테에 대해 쓰려면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정도는 가 줘야.


이처럼 돈키호테를 쓸 준비가 점점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뭔가 계속 찜찜하다 했더니, 역시 그것이었다. 나는 결코 관광을 하려고 마드리드에 온 게 아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왔다. 바로 돈키호테를 쫓고 그에 대해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얼마간 기본적인 인문 예술적 교양을 코딱지만큼이라도 쌓아야 할 것 아닌가. 사실 나라는 소설가는 상식과 지식이 꽤나 부족해서 <지대넓얕>을 읽거나 <알쓸신잡> 프로를 보며 혀를 내둘러야 하는 범인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창조하던 시절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종교 음식 풍속 등 그 시대의 공기를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마드리드 3대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느꼈다. 관광 차원에서의 방문이 아님을 굳이 강조해본다.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중 으뜸은 아무래도 '프라도 미술관'일 것이다. 나머지 두 개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이다. 나는 세 군데를 모두 볼 수 있는 아트 패스를 구매하기로 하고 먼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찾았다. 프라도는 마드리드 3대 미술관을 넘어 세계 3대 미술관(루브르, 바티칸, 프라도)에 자리할 만큼 명성이 자자하고 소피아 미술관에는 무려 게르니카가 있다. 고로 미술 바보인 나는 상대적으로 관람의 압박이 덜하다고 느껴지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부터 찾기로 했다.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방코 데 에스파나' 역으로 나오자 씨벨레쓰(발음 주의) 광장과 중앙에 자리한 씨벨레쓰(계속 주의)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뻗어주고 있었다. 그 뒤로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적절한 비율로 섞인 스페인 국기가 웅장한 흰색 건물을 배경으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광장과 건물들 사이로 뻗은 대로 역시 쾌적함을 더해주었다. 대로변에는 어김없이 벤치와 가로수가 같이하고 있어 미술관 가는 길이 꽤나 맑고 화창하게 느껴졌다. 미술관에 들어갈 게 아니라 이대로 피크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찬란한 햇살이 넘치는 씨벨레쓰(발음 주의) 광장과 분수



하지만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다다르자 그런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깔끔하고 세련된 미술관 외관에 반한 채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갔다. 11시가 좀 안 되어 도착했지만 이미 표를 사기 위한 줄이 나라비 서 있었고 관람객은 대부분 관광객,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30여 분 정도 줄을 서고 나서 아트 패스를 구입했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는 약간의 긴장감과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 순서인 3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한글 카탈로그가 있어 그것을 지도라도 되는 듯 꼭 붙든 채 관람을 시작했다.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중 그나마 만만하게 본 곳이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이었지만 그것이 오산임은 3층의 첫 복도를 지나면서 바로 확인되었다. 시대 순으로 관람하게 된 동선이기에 3층은 종교를 주제로 한 중세 시대 성화들로 시작됐는데, 그림들마다의 정교한 묘사와 성경 속 스토리텔링을 집요하게 녹여낸 것이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하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종교적 고뇌 역시 화폭 안에 진하게 담겨 있었기에 어느 순간 미술관이 아니라 성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영적으로 고양되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성전은 꽤 크고 길었기에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불경한 일인 양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영혼의 숭고함까지 느껴가며 3층의 중세 종교화들을 섭렵한 후 2층으로 내려와 인상파 작품으로 접어들자 모네, 드가, 세잔, 고갱, 고호 등 그나마 아는 이름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파 작품 총집합만큼 풍성하진 않았지만 각 화가들의 특징이 잘 구현된 작품들이 두루두루 자리해 있어 그들의 화풍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은 앞의 다른 두 곳과 다르게 사진을 찍는 게 가능했고 3층의 압도적인 종교적 기운에서 좀 자유로워진 관계로,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즉석에서 구매하듯 휴대폰에 작품을 담을 수 있었다. 내 휴대폰 속에 인상파 컬렉션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카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 20세기 초 거장들의 현대 작품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마지막 1층으로 내려오니 에드워드 호퍼와 팝아트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까지 목격할 수 있었다. 참으로 눈이 번쩍번쩍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한 점을 꼽자면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 방>이다. 이 작품을 직접 목격한 것만으로도 티센 보르네미사에 온 보람과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 호텔 방에 홀로 앉아있는 여인이 있다. 방 한쪽엔 짐들이 가득하고... 그녀는 무언가 적힌 종이를 든 채 침묵에 젖어 있다. 그녀에게 이 호텔방은 호캉스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다. 그녀에게 호텔방은 일종의 정류장으로 보인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만이 안다. 하지만 어디로 갈지는 나도 그녀도 모른다.


Edward Hopper. Hotel Room. 1931.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나오니 유럽 미술의 역사를 짧고 굵게 배운 기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처럼 엄청나게 방대하지도 않으며 시대별로 척척 자리해주고 관람 동선도 그렇게 되어 있어 자연스레 흐름을 타며 감상할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그가 돈키호테를 창조하던 시기는 중세의 종교적 색채가 옅어지며 인간 개인의 삶이 부각되는 때였으며, 그 시기의 그림 또한 인간에 대한 주제와 설정이 풍성해지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역시 이 정도는 섭렵해 줘야 돈키호테에 대해 쓸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미술관에서 나온 뒤에는 안톤 마틴 시장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시간 반 정도 집중력 높게 관람을 하고 나니 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장 거리의 카페에서 하몽을 빵에 올려 씹어 먹고 싶었으나 일단은 꾹 참고 길을 찾기로 했다. 며칠 전 지금 가려는 안톤 마틴 시장에 한식 타파스 식당 ‘악마’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들 중 한인 식당이 있고 거기서 한식 베이스의 타파스를 판다는 게 신선했다. 결코 비빔밥이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가는 게 아니라, 한식 타파스라는 창의성 넘치는 요리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국 술 그러니까 소주도 있다니 한잔 곁들여 먹고 싶었고. 한편으로 돈키호테의 식당에 ‘악마’가 적절한지도 판단해보겠다는 명분도 있다. 결코 한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역시 명분이 중요하다. 비빔밥은 국적기에서의 실패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한식 타파스는 충분히 새롭지 않은가!


나는 구글 지도를 켜고 골목길을 살펴 가기 시작했다. 안톤 마틴 시장은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은근 골목길이 촘촘히 나 있어서 헛갈리기 쉬웠다. 그래도 일단 방향을 숙지한 뒤 휴대폰 구글 지도를 접고(휴대폰을 들고 골목을 다니는 건 언제든 위험할 수 있어요. 마드리드의 소매치기들은 수완이 좋습니다.) 시장 쪽 방향으로 길을 찾아 나섰는데... 이 골목은 길마다 사람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 '로뻬 데 베가'라는 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로뻬 데 베가? 그는 누구인가. 그는 세르반테스와 동시대를 산 극작가로, 스페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당대 큰 인기를 구가한 작가다. 세르반테스 못지않은 대 작가이자 당시 그만큼의 명성이 없던 세르반테스가 무지하게 질투하고 또 인정도 한 라이벌이 아닌가?


그렇게 로뻬 데 베가 길을 걷게 되자 내 머릿속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세르반테스 길도 부근 어딘가에 있지 않겠냐는 실로 합리적 추론 때문이었다. 오!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로뻬 데 베가 길의 바로 다음 블록 길로 가자마자 그곳에 Calle de Cervantes(세르반테스 길)라는 표지판과 세르반테스의 몰골이 분명한 매부리코 아저씨의 상체가 길가 벽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그의 얼굴을 목격한 나는 방금 전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화가들의 자화상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충격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세르반테스의 길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우연히 이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 마치 어떤 행운이자 운명처럼 느껴져 심장은 탱탱볼이 된 듯했다.


로뻬 데 베가 길과 세르반테스 길이 나란히!



나는 세르반테스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집이 있었다. 크윽. 대체 나는 무슨 배짱으로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쫓기로 한 것일까?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이 돌아다니다 만난 서프라이즈는 놀라웠지만 나의 부실한 준비와 부족한 열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내게 행운의 땅인지 내 발걸음을 알아서 이곳으로 이끌어주었다. 마드리드 세르반테스 집은 오랜 세월 객지를 전전한 그가 말년에 살던 집으로 현재는 간단한 표식과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실루엣을 담은 작은 그림만이 붙어있었다. 대신 여러 관광객들이 오가며 그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마냥 바라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 세르반테스 하우스



수도사를 꿈꿨던 청년이 한순간의 실수로 도피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작가가 됐지만 시원찮았고(여기서 일단 감정이입) 레판토 해전에 참여해 한쪽 팔이 불구가 되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포로 생활도 5년이나 했다. 우여곡절 고국에 돌아와 세금징수원이 되어 전국을 떠돌았으나 과실로 인해 감옥에 가야 했고, 그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이후 혹독한 집필 끝에 완성된 돈키호테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나 저작권이 없어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고 위작들이 판치게 되었다(절로 눈물이...). 이에 다시 돈키호테 2권을 부랴부랴 써내야 했던 짠내 가득한 인생의 세르반테스는 2권을 완성하고 일 년 뒤 이곳에서 작고했다. 그가 말년에라도 이곳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냈길 바라며... 나는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세르반테스 길에 적힌 돈키호테 속 글귀



세르반테스 길과 그의 집에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한 뒤 왔던 길로 돌아가는 중 아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박물관 하나가 길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로뻬 데 베가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로뻬 데 베가가 살던 집으로 그가 죽고 나서 후손들에 의해 박물관으로 꾸며져 사용되어 온 것이란다. 아니 대관절 그런데 왜 이게 세르반테스 길에! 그것도 세르반테스 집보다 훨씬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게 자리한 것이냐? 세르반테스는 살아서도 로뻬 데 베가에게 밀렸는데, 죽어서까지 자기 이름의 길 위에 번듯한 로뻬 데 베가의 박물관을 들여놓고 있었다. 실로 아이러니했다. 생전에 로뻬 데 베가의 집이 더 부유했고 으리으리했으니 이 집은 그대로 후세까지 이어져 박물관이 된 것이고, 가난했던 세르반테스는 겨우 자신이 살던 집의 흔적만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 세르반테스는 길의 이름을 얻었고 로뻬 데 베가는 자신의 집 앞 길이 아닌 한 블록 앞의 길을 얻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나름대로 배분해준 것일까? 아니면 아이러니한 라이벌의 운명적 교차일까? 어쨌거나 스페인 최고의 문호 두 명의 집이 같은 길 위 50미터 안짝으로 놓여있고, 그 길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이니 문학도들은 마드리드에 오면 반드시 발 디뎌야 할 곳이 이곳이다.


세르반테스 길을 나서자 허기가 배를 찔러대 안톤 마틴 시장 방향이 어딘지 도통 가늠이 안됐다. 그렇다. 나는 길을 발견하고 길을 잃은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일단 큰길로 나서서 위치 파악을 하기로 하고 뻥 뚫린 곳을 향해 나섰는데, 오. 마이. 갓. 놀라운 광경이 다시 내 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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