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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신 부사장님의 후회를 들으며

by 부아c

10년 전에 관리자 부장님을 모시고, 은퇴한 부사장님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부장님은 그분이 막 은퇴해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에게 선물세트를 챙기라고 하고 운전을 시켰습니다. 근무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런 것들을 했었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입사 4년 밖에 되지 않았고, 저도 회사가 전부인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따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부장도 처세술이 참 대단했습니다. (결국은 부장으로 은퇴 당하긴 해서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한남동의 규모가 있는 집에 들어갔고, 정원에서 부사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제가 차를 함께 마셨습니다. 그 분은 은퇴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늙어 버렸다고 느껴졌습니다. 평안한 복장을 한 그를 사적으로 만나니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회사에서 내뿜던 위엄이란 거의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부장님과 부사장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부사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생 참 덧없지. 이제야 생각해 보니, 나한테 남는 게 하나도 없네. 자식들도 다 길 찾아가고, 가족과 공유하는 추억도 하나도 없고 몸도 성한 곳이 하나 없어."


그러고 저를 보고 한 마디 했습니다. "XX야 (이름도 틀렸음. 여기에 또 상처 받았음, 저는 그 분의 자녀 결혼식과 부모 장례식 합쳐서 3번을 갔었음, 심지어 한 번은 관도 들었음....) 너도 부장이고, 이사고, 부사장이고 꼭 할 필요는 없어. 가족이 최고야. 돈은 얼마를 벌든 크게 상관없어. 결국은 버는 만큼 쓰게 되니까."


아이고, 연봉 몇 억 받으며, 한남동에 집도 있고, 딸 둘도 모두 유학도 보내신 분이 무슨 멍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름날, 두 손에 땀만 나고, 운전 기사 같이 앉아 있다가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부사장님의 말에 어느 정도 진심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이 목적이 아니라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이 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돈도 결국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돈이 몬적이 되는 삶은 끝이 안 좋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회사에 돌아가서도 임원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다 같이 회사에서 월급 받는 같은 직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회사 일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 뒤로도, 임원에 대한 열망은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임원이 길이 아닐수도 있겠다, 적어도 유일한 길을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저는 회사에서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최소한만 하기로 결심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회사 외에도 글쓰기, 부업, 부동산/주식 투자 등을 돌렸습니다. 운이 좋아서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가졌습니다(저는 이게 더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지금 2년 전에는 휴직을 하고 캐나다에서 온전히 가족과의 추억을 쌓고 왔습니다. 지금은 퇴사를 하고 글쓰기, 강의 등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임원이 되는 것도 좋은 삶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치가 자신에게 더 중요한지, 내가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반드시 따져보아야 합니다. 또한, 회사에서의 직위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쌓고 있는 것이 회사 내에서의 입지인지, 아니면 회사를 벗어나서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는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회사가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내 삶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회사를 점점 지워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에는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아닌 나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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