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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직장 생활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by 부아c

20대 중반, 혹은 후반 즈음에 처음 직장에 들어가면 너무 좋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도 들죠. 이 나이에는 5가지 측면에서 직장 생활의 가성비가 매우 좋습니다.


첫 번째는 돈입니다. 어릴 때부터 대학교 졸업때까지는 적자 인생을 삽니다. 일부 아르바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돈을 벌어본 경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적으면 3천만 원 정도부터 많으면 (대기업 기준) 6천만 원 이상의 돈을 벌기도 합니다. 마이너스 인생을 살던 내가 큰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신분입니다. '가오'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야'라고 주변에 말할 수 있는 신분이 생깁니다. 회사 목걸이를 찬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명함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나에게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죠. 사실, 이때가 결혼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백수라면 결혼하기 어렵죠. 회사를 다니고, 특히 좋은 회사를 다니면 그에 걸맞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서로 조건을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배움입니다. 처음에 회사를 들어갈 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회사의 방식으로 바꿔 배워야 하고, 회사 용어나 문화도 배워야 합니다. 저도 회사 16년 다니면서 필요한 모든 정보의 90%는 처음 1년에 모두 배운 것 같습니다. 배움의 가성비는 회사 초반 1년이 가장 높습니다.


네 번째는 인맥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면 수십, 수백 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죠. 이 사람들과 일을 함께 하면서 인맥이 늘어납니다. 내 책상에 명함이 쌓일수록 내가 무엇이 된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는 기회입니다. 처음 회사를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해해 줍니다. 마치 프로야구 선수가 입단을 하면 2군, 3군을 돌리면서 1군에 올 수 있는 몇 년의 시기를 준비하면서 기다리게 하는 거죠.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관대합니다. 회사의 시선이 관대할 때 우리는 삶을 더 즐길 수 있습니다. 회사가 나를 기다려주는 거죠.


자, 그런데, 이런 5가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기 시작합니다.


1년 차 신입에서 10년 차 과장이 되면 어떻게 바뀔까요?


첫 번째는 돈입니다. 처음 대기업에 들어가서 6천만 원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같은 회사에서 9천만 원을 넘기 힘들 것입니다. 매년 5% 상승을 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물가 상승률 정도입니다. 만약, 정말 운이 좋아서 좋은 대기업, 좋은 부서에 가서 1억을 넘게 받는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처음 0에서 6천만 원을 간 그 가성비를 따라잡을 수는 없겠죠. 시간이 지날수록 금전적인 보상에 대한 상승 체감은 줄어듭니다.


두 번째는 신분입니다. 이건 변하는 것이 없죠. 그런데, 사람은 익숙해지는지라 신입 때 느꼈던 가슴 벅참 등은 이제는 없습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만 쌓였겠죠.


세 번째는 배움입니다. 사실 몇 년 지나면 배우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를 지킬 만큼만 배우고 일하게 됩니다. 회사도 딱 그 정도를 요구할 것입니다. 대부분은 회사가 요구하는 정도만 하죠. 내가 가끔 정체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배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인맥입니다. 10년 차 정도 되면 알죠. 내가 알던 인맥들이, 특히 윗분들이 다 짤려나가는구나, 그 인맥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인맥이 별 소용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입니다.


다섯 번째는 기회입니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고, 나는 과장이니 바로 실적을 내야 합니다. 이때에는 매일 실적에 쫓기게 됩니다.


자 이제, 나이가 더 들어서 20년 차 팀장이 되었다고 해 봅시다. 어떻게 바뀔까요? (여기까지 못 갈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이었죠. 팀장 연봉, 글쎄요 대기업 기준으로 해도, 1억 5천을 못 넘길 것입니다. 중소기업이면 1억은 안 되겠죠. 그나마 팀장이 못 된 만년 차장, 부장도 더 많을 것입니다. 20대 초중반이 느꼈던 그 보상, 그 보상처럼 충분하다고 느끼게 될까요? 4인 가족인 자신과 미혼은 신입 사원 중 누가 더 여유가 있을까요? (제가 14년차 억대 연봉일 때, 신입 직원 연봉이 5,400만원이더군요)


두 번째는 신분입니다. 그나마 신분이 가성비가 제일 좋아요. 어떤 회사 팀장이라고 하면 여전히 가오가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분은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는 계륵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배움입니다. 20년 차가 되면서 배움은 더 적습니다. 관리직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밑에 애들 눈치 보느라 바쁘죠. 성과 취합해서 보고하느라 바쁩니다.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자리 보존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네 번째는 인맥입니다. 회사에서는요. 결국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납니다. 처음에 회사 다닐 때의 다양한 관계, 사람들도, 이제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 몇 명,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몇 명. 인맥은 오히려 좁아질 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회사는 이제 당신을 이해하지 않죠. 언제라도 쫓아낼 사람이 됩니다. 돈을 많이 받고, 능력이 떨어지고, 점점 이해하지 않아야 할 나이가 되는 거죠. 사실 이것은 회사라는 집단에서 정해져 있는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가성비가 유지되거나 좋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100명 중에 한 명은 이사가 되고 상무가 되고 할 테니까요. 하지만 100명 중에 99명은 가성비가 점점 없는 삶을 살게 되죠. 내가 나이가 들면서 직장 가성비가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직장 외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10년 차에 그런 생각이 들었고 16년 다니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가성비가 있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회사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후배 중에 바로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말립니다. 젊을 수록 직장 생활의 가성비가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나의 모든 것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5년, 10년, 15년 정도가 되면 이제 가성비가 있는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조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면 직장을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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