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날 나를 기다려준 여자친구

by 부아c

나는 운전면허 기능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 첫 번째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두 번째는 큰 충격이었다. 가난한 대학 시절이었다. 면허 시험비를 또 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시험장을 걸어나오는 내 마음속에도 비가 내렸다.


정문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여자친구였다.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놀랐다. 만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의외였다.


"왜 연락도 안 하고 왔어?" 나는 별일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시험 잘 쳤는지 걱정돼서 왔어." 그녀가 대답했다.

"아... 이번에도 떨어졌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구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함께 버스역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있잖아. 나도 운전면허 기능시험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 그때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기분이 너무 엉망이고 속상했거든. 혹시나 오빠가 그런 기분이 될까 봐... 그래서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슬픔과 아픔을, 그 사람이 느끼지 않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관계를 망치기 제일 좋은 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