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아c Oct 02. 2024

여의도에서 만난 사장님

15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신입 사원 시절, 회사에서 자주 가던 고급 식당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돈을 잘 벌던 시절이었죠. 그 고깃집은 꽤 비싼 곳이었지만, 법인카드 여력이 많던 저희는 그 식당을 한 달에 2~3번 갔습니다. 신기한 건, 다른 식당과는 다르게 그곳은 실장이 대로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그곳에 간 것은 2007년 8월의 어느 더운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10명이 예약되어 있으면, 그는 물티슈 10개를 들고 나와 미리 건네주었습니다. 같이 들어가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정말 덥죠. 여의도 역군들이 나라를 먹여 살립니다”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여명이나 상쾌한 같은 음료를 미리 돌리셨습니다. 식사를 하고 있으면 중간중간에 와서 직급에 따라 위에서부터 술을 따라주고 자신도 한두 잔 먹고 갔습니다. 저희 팀 부서원들도 잘 아시더라고요. 언제 진급하는지, 회사 일은 어떤지 등등을 물었습니다.


신입 사원도 꼼꼼히 챙기셨습니다. 신입 사원인 저에게도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나중에는 저의 조촐한 대리 승진도 챙기셨습니다. 언젠가는 부장이 되고 이사가 될 분이라고 덕담도 건네셨습니다. 식사 중 중간중간에 요리 서비스는 기본이었습니다. 틈틈이 젓가락으로 저희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가끔 오후 2~3시가 되면 그 실장은 우리 20층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처럼 보안이 철저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떡볶이, 순대, 탕수육 같은 것을 꺼내들면 본부장님 휘하 모두가 모여서 하하 호호 집어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면, 자신은 하나도 먹지 않은 채, 머리에 땀을 닦으며 웃는 얼굴로 쓰레기까지 다 치워 들고 다시 식당으로 걸어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분이 당연히 사장이나 혹은 사장 친인척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나중에 그는 그저 종업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꽤 놀랐습니다. 종업원으로서, 그렇게 일하시는 분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몇 년이 지나 그 실장이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은 그가 옮긴 곳을 따라갔습니다. 마치 그전에 그 식당을 보고 간 것이 아니라 그 실장을 보고 간 것처럼요. 본부장도 바뀌고 팀장도 바뀌고 계절이 몇 바퀴 도는 데도 우리는 그가 옮긴 곳을 갔습니다. 그때의 대리, 과장, 차장들이 본부장, 팀장이 되었기 때문이겠죠.


몇 년 뒤, 그는 한 번 더 식당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장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사장이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나 그는 이제 자신의 가게를 차린 것입니다. 과거의 고급 식당이나 옮겼던 고급 식당 규모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예전보다 숫자가 2배는 더 많아진 우리 팀의 사람들은 다시 그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여전히 그 낮은 자세로 나를 보면서 사장 명함을 건네주던 게 기억이 납니다. 부장 진급 언제 하냐는 질문과 함께요. 알고 보니 우리 회사에만 단골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투 빌딩에 몇 팀, 교보 빌딩에도 몇 팀. 그분들도 여전히 그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직도 명절이 되면 저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십니다.


아직도 날씨가 더워지면,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 가득히 만두를 싸고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던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자신은 전혀 먹지 않고, 우리가 남긴 쓰레기들을 조용히 담아서 사무실을 나서던 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만두를 돌렸던 것일까요?


요즘에는 통하지 않는 영업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마케터였던 저의 눈에 그리 세련된 마케팅 방법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를 기억합니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업원 때부터 사장처럼 일을 하는 주인의식,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에게 먼저 배려를 하는 자세, 무엇보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자세,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는 저에게 단순히 고깃집 사장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야기합니다. “나는 정말 운이 없네.” 그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운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진실로 쌓아 올린 것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면서 쌓아올린 운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전 03화 좋은 기회를 얻은 프런트 직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