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입니다. 군대 가기 전, 신촌 대학가 주변의 한 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 번은 테이블 주문을 받는데, 남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습니다. 제가 일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미숙하고 바쁜 나머지, 주문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제가 주문을 잘못 넣었고, 그 테이블에 잘못된 안주가 나갔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대뜸 저를 째려보더니 욕을 했습니다. “OOO, 미쳤냐?”
옆에서 여자가 덩달아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 OO. 이래서, 못 배운 것들은 티가 난다니까. 음식 주문 하나 못 받잖아. 아, 짜증 나”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못 배웠는지, 잘 배웠는지 그들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당황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한참 내성적일 때였습니다. 빨개진 얼굴로 이내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마치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빠르게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사장 성격상 저를 혼내고, 또 잘못된 안주에 대한 것을 월급에서 차감할 거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혹은, 심할 경우 잘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시작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몇 번 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옆 테이블의 나이 드신 부부가 조용히 저를 불렀습니다.
“마침 잘 되었네요. 저희가 그 안주 시키고 싶었어요. 이 테이블에 놓아주세요.”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 테이블에는 아직 다 먹지 않은 같은 안주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하신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저희가 정말 또 먹고 싶어서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손님.”
그분들에게 안주를 드리면서 이내 감사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남녀의 테이블에 새 안주와 서비스 음료를 드렸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일을 이어갔습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그 노부부가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저에게 쪽지를 건넸습니다. 그 쪽지에는 세련된 필기체로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이 배운 사람입니다.”
너무 쪽지를 오래 봤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그분들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습니다. 쪽지는 그럼에도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20대 초반의 저에게 그 쪽지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저는 그 쪽지를 저의 하숙방에 꽤 오랫동안 붙여 두었습니다. 젊은 커플은 말로 저를 죽이려고 했지만, 노부부는 다시 말로 저를 살려 주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내가 하는 말에 달려있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누군가의 말은 사람을 살리고, 누군가의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언어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아니, 언어에 품격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들, 나에게 해주면 나를 살리는 말들. 사람을 죽이는 말을 쓰는 사람은 주로 그런 말을 쓸 것이며, 사람을 살리는 말을 쓰는 사람은 또 주로 그런 말을 쓸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런 책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노부부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혼자 상경해서 외롭게 지내던 시절, 저를 밝혀 주었던 따뜻한 말과 쪽지였습니다. 저도 그 노부부처럼 타인에게 좋은 것을 주는, 운을 모으고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어쩌면 젊은 시절 제가 그분들을 만난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