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팩트가 아닌, 우리가 함께 믿는 상호 주관적 진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팩트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믿는 이야기이다.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 심지어 개인의 삶까지 모두 상호 주관적 진실 위에서 작동한다.
돈만큼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없다. 지폐는 단순히 종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 종이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으로 밥을 먹고, 집세를 내며, 미래를 준비한다. 믿음이 무너지면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나 IMF 시기의 원화 폭락은, 화폐라는 종이가 신뢰를 잃을 때 사회 전체가 어떤 혼란을 겪는지를 잘 보여준다. 돈은 결국 종이가 아니라 신뢰다.
국가와 법도 마찬가지다. 헌법은 종이에 적힌 문장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에 힘을 갖는다. 시민이 헌법과 제도를 더 이상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이나 소련의 해체는 법률과 제도가 강제로 사라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는 제도가 아니라 집단적 합의이다.
기업 브랜드도 상호 주관적 진실의 좋은 사례다. 애플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파는 회사이지만, 소비자가 애플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능 때문이 아니다. “애플은 혁신적이다”, “애플 제품은 세련됐다”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공유하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단순한 기술 회사가 아니라 문화적 아이콘으로 만든다. 브랜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공유하는 이미지와 서사이다.
정치 영역은 더욱 분명하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통계 수치나 정책의 디테일만이 아니다.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던지고, 그것이 유권자의 마음에 어떻게 자리 잡느냐가 결과를 바꾼다. 객관적 데이터보다 강력한 것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내러티브이다. 역사를 보면 선거, 혁명, 사회운동은 모두 데이터보다 서사에 의해 움직였다. 정치와 여론은 결국 믿음이 만들어내는 현실이다.
AI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방대한 데이터와 사실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시대보다 믿음의 힘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정교한 데이터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를 압도하는 순간도 많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AI 시대에도 진실은 여전히 믿음의 영역이다.
팩트는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은 믿음이다. 우리가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 믿음을 어떻게 확장하느냐가 사회와 산업, 그리고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결국 세상은 팩트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믿는 이야기 위에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진실을 선택해 믿고 그것을 어떤 미래로 이어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