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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상 Alex Aug 31. 2020

정작 공정성을 주장해야 할 사람들은 말할 여유가 없다.

공정성, 공정, 공정함


요즘 '공정성'이 현재 사회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공정성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지탱할 수 있는 중요한 화두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언제가부터인지 공정성의 정의가 혼탁해지고 있다. 공정성을 내세워 개인의 이득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더 커지고 있다. 공정성은 그 자체로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이야기하는 단어인데 말이다. 이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하다. 특히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공정성을 활용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 이미 갖고 있으니 빼앗기는 것이 공정성하지 않다는 말도 그렇고, 노력이 곧 성과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노력했으니 당연히 자기가 가져야 한다는 말도 그렇고, 둘 다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갖기 전, 노력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도 고려되어 있지 않다. 자꾸 '과정의 공정성'에 다들 매몰되는 분위기인데, 과정의 공정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전제의 공정성'도 함께 이야기해야 하고 이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의 공정성'이다.


예전에 이런 경험이 있었다. 회사에서 해외전시회 참관 기회를 걸고 마케팅과 브랜드 기획 아이디어 공모전을 주관한 적이 있다. 수십명이 지원했는데, 심사위원들 모두 이견 없이 한명을 1위로 선정했다. 문제는 선정후에 벌어졌다. 윗분들부터 관련부서까지 몇번을 끌려다녔는지 모른다. 불려간 이유는 꼭 그 사람을 1위로 선정해야하는가 였는데, 그 사람이 공채 정규직이나 일반 경력직이 아니라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즉, 회사내 인사테이블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공모전 참가 조건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었고, 아이디어 기획안 자체로만 평가를 해서 공정하게 1위를 한 상황이었음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게 하면 공채 정규직이나 일반 경력직 사기가 떨어질 수 있고, 인사테이블이 다른데 쓸데없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 기를 살려 일을 제대로 안할 수도 있다는 등등 나로서는 도저히 공감 못할 십수가지 이유를 들어서 다른 사람을 1위로 재선정하라고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난 결국 버티고 설득해서 기어이 원래 결과대로 그 사람을 1위로 발표했고, 해외전시회 참관하도록 만들었다. 결과 발표후, 공채 정규직과 일반 경력직들 중 일부가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면서 항의를 하기도 했고, 내가 1위한 사람과 뭐시기 뭐시기한 관계라면서 별의별 황당한 뒷담화로 소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남의 이야기를 왠만해선 신경 안쓰고 내 갈 길 가는 스타일이라 무시해버리고, 저러니 스펙만 좋지 일 못하고 입만 살아서 공모전 기획안도 쓰레기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고생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짜증 많이 났고 열도 많이 받았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스타트업 심사할 때였는데, 심사 결과가 나오고 스타트업들이 항의와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 이유가 가관이었다. (수주에서 수개월 함께 모여있는 상황이 많았는데) 저 스타트업은 우리를 포함해서 다른 스타트업보다 많이 놀았고 노력하지도 않았다거나, 불과 며칠만에 사업아이템이 정돈되어 발표했다거나, 열심히 노력한 다른 스타트업들이 오히려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거나, (이미 자기들끼리 순위를 정해놓고)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과 순위가 너무 다르다는 등등의 이유였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는 이상한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고, 공정성은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희안한 공정성에 사로잡혀있는 사회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이유는 몇년전부터 종종 대두되고 있는 '공정성'은 정말 너무 억울해서 목에 피터지게 공정함을 주장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작 침묵하고, 최소한 굶지 않고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공정성을 주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져서 정작 공정성이 필요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절박해서 공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조차 할 여유가 없다. 그게 가슴 아픈 현실이다. 공정성이 '있는 자'들을 위한 단어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 모두에게 열려있으면서 사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키워드가 바로 '공정성'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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