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삶, 커리어, 행복, 성공
난 지각인생이다. 남들보다 다 늦다.
그 시작은 대학을 삼수해서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 바람에 군대도 늦었고, 취업도 늦었다. 회사 들어가고 20대후반에서 30대까지 조바심에 욕심도 많았다. 늦은만큼 빨리 시간을 땡겨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여기에 20살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는 했지만, IMF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집안도 어떻게해서든 다시 일으켜세워야한다는 책임감도 컸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승진도 빨랐고 직책도 빨랐다. 돈과 권한까지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챙겨주는 한에서 모든 혜택도 부족함 없이 받았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더 얻은 만큼 더 잃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오히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인생을 즐길 수도 있었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집안 빚도 다 갚고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깨끗한 집, 집다운 집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마흔살부터 '진짜 내 꺼'를 만들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내 소유물 혹은 자산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정작 내 손에 내 꺼라 할만한 유형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지각인생이니 급할 게 없었다. 남들 눈치 보면서 살고 나이 신경 쓰면서 살아왔다면,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런 선택을 해오지도 않았을거다. 재미있는 건 완전 우연의 일치였는데, 그 시점에 삼성, 현대, 두산으로 이어진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접었다. 그만 둔다고 할 때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 마흔에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사회생활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물리적 나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원래 나이보다 10년 젊게 살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시작할 때만해도 언제 내 꺼를 만들 수 있을까 엄두도 안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까지 또 이런 저런 예상 못했던 외부 일들로 진도가 나갔다가 다시 뒤로 빠졌다가 반복하고, 과연 공상에 가까운 내 바램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수시로 의심도 하고 좌절도 했다. 내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긴 하지만 그런 성격이라고 걱정과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니 말이다. 말하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늦기는 했어도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는 경험만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아직은 멀었지만 이제 내가 애착을 가질만한 내 꺼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조바심과 욕심이 눈을 가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인내하면서, 결국 모든 것은 느리더라도 우직하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싸움에 있다는 믿음을 이번에도 체험하고 있다.
스물살 이후부터 내가 가진 건 시간과 몸뚱이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각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틀에 맞춰서 다 빠르게 다 똑같이 사는 인생 별로 매력을 못느끼겠다. 그 바람에 못보고 못해본 것들도 많고 그렇게 사는게 정답인양 갇혀서 살면서 머릿속에 공상만 하고 사는 것도 별로다.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사는데 집중하고 한눈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선택지로 돌아가 '만약'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없어보인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나처럼 지각인생도 하나쯤은 주위에 있어야 세상이 더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 앞으로도 지각인생으로 살거다, 10년 젊게 살자에서 15년 젊게 살자로 조만간 바꿔야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