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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상 Alex Mar 08. 2022

스타트업 창업가의 매력, 혁신가와 사기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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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YRE :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데 재미있는 영화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었다. 물론 내가 스타트업 바닥에 있어서 유독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농담 아니고 주위에서 지겹게 보는 스타트업 창업가와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판타지 중 하나가 그럴듯한 비전을 내세워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모험을 하고 그 과정 중 큰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도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전팔이가 매우 중요하고, 비전팔이는 사업아이템과 사업모델에서도 오지만 창업가 자체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판단하는데 있어서 창업가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가 핵심이고, 이 부분은 철저히 창업가를 믿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사람에 대해 객관성을 잃고 사람을 잘못 보는 오류도 많이 발생한다. 당연히 나 역시 그런 실수를 많이 했다. 투자자던 직원이던 비전에 동참하게 만드는 비전팔이가 중요하다보니 창업가가 혁신가일 수도 사기꾼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이 끝나고 혁신가가 사기꾼으로 판단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처음부터 혁신가와 사기꾼은 구분된다. 단지 창업가에게 빠져있을 때는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사랑에 빠져서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혀버리는 감정과 같다. 창업가 자체의 매력에 빠져버리면 그의 에너지에 전율하고 그에 대한 신뢰감이 무한대로 쌓이게 된다. 팥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어버린다.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멈춰지지 않는다. 지독한 사랑이나 사이비종교에 빠진 느낌이다. 세상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스타트업 바닥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빠지면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서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다.


"'(불가능한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일이 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더니) 우리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에 집중하는 회사예요.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해요, 좋은 태도를 가지도록 해요.'라며 빌리는(FYRE 창업가 대표) 흔들림이 없었어요. 완전히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죠. '안 돼'라는 답변은 전혀 듣지 않고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빌리는 거짓말쟁이예요."


사기꾼형 창업가나 영악한 창업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를 들은 직원의 말이다. 멋진 비전에 맞춰 실제 사업을 만들어가면서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 목표를 제시하고 문제가 아니라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안된다는 생각은 버리고 무조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한다. 정작 창업가 본인은 자기 일은 비전과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짜고 투자를 유치해오고 최고의 인재를 뽑는 일이라면서 실제 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들에는 소홀하거나 말도 안되는 목표치를 달성 했는지 성과를 쪼기만 한다. 창업가가 사업과 일에 대해 의외로 잘 모른다.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책임진다고 장담해놓고 실제 문제가 터지면 다른 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표정 하나 안바뀌고 잘한다는 점은 예외없는 공통점이자 전형적인 행동패턴이다.


이런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거짓말해도 사람들이 쉽게 의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문제를 터뜨리고 사고를 치고 주위에 피해를 끼쳐도 그런게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게 본질적인 문제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실수고, 문제나 사고가 터지면 그것은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는 시련일 뿐이며, 그러다보니 허세와 허풍을 스스로 진심으로 믿고 있으며, 사기와 거짓말은 큰 일을 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영웅이 영웅의 길을 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것들로 인식한다. 잘못했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감정이나 죄책감이 들 틈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난 지금도 스타트업을 판단함에 있어서 창업가 자체의 매력을 매우 중시한다. 혁신가던 사기꾼이던 창업가의 매력이 스타트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량 중 하나임은 분명하기 때문이고, 그 역량이 사업을 키우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동안 수천명의 창업가들과 부대끼면서 쌓은 좋고 나쁜 경험을 통해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나쁜 창업가'를 걸러내는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거짓말'과 '약속'이다. 평소 크던 작던 거짓말하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 대부분 끝이 별로였다. 요즘은 그런 일을 겪게 되면 아무리 여전히 그가 좋고 그동안 함께 한 게 아쉽고 에너지를 쏟아부은 시간이 안타까워도 미련 없이 뒤돌아선다.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미리 잘라내야 큰 사고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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