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놀란, 영화평, 아이맥스
오펜하이머 (Oppenheimer) 아이맥스2D 관람, 놀란 감독이 놀란했다는게 딱인 표현인 듯하다.
인생굴곡이 심하기는 하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입에 풀칠 하기 어려울 정도까지의 고생도 아니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자유분방하게 나름 즐겁게(?) 산, 철없는 천재 이야기라 어찌보면 인생사 자체는 극적인 요소가 약한 내용을 긴장감 만들어내면서 영화에 리듬을 부여하는 테크니션으로서 최고의 장인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재미있게 만들어냈다. 모두 하나의 시간축에 놓고 순차적으로 진행했으면 3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런닝타임이 한없이 지루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겠지만, 이전작 #덩케르크 처럼 3개의 사건과 시간축을 놓고 동시에 진행하면서 각종 기교를 동원해서 의도적으로 영화에 힘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기대하는 핵폭발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관객에 따라 엄청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스토리가 극적이지 않고 반전도 강하지 않고 남은 시간 거의 대사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남들이 평소 관심을 갖지 않거나 어려워서 거리감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평범한 일반인들이 쉽고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놀란 감독의 역량은 정말 탁월하다. 어려운 강연을 정말 재미있게 이해 쏙쏙되게 만들어주는 인기있는 멋진 교수님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번 더 혹은 여러번 보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애매하다.
놀란 감독 영화가 매우 트렌디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선호하는 그런 매력을 놀란과 놀란 영화가 갖고 있다. 평소 꼰대 알레르기가 심하면서도 교주 같은 매력이 있는 추앙 대상이 나타나면 그가 욕을 해도 까칠해도 무슨 말을 해도 열광하는 심리에 적확한게 그다. 놀란 가라사대면 내용이 어렵거나 별로라도 영화를 탓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탓하고, 토론할 만한 주제가 아님에도 그가 영화를 통해 던지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SNS에 남긴다.
놀란 감독의 영화관 선호는 관객들을 극장에 가둬놓고 자신이 의도한 모든 것을 온전히 전달하면서 뒤흔들기 위함에 가깝다. 놀란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놀란은 신이고 관객은 일개 인간으로 놓고 관객을 쥐락펴락 하면서 영화의 일부로 만드는 걸 즐긴다. 영화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는게 아니라 통제하려고 하는 영화 분위기가 난 별로다. 거기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깊이는 생각보다 얕다. 그래서 놀란 감독이 무명이던 시절 만든 #메멘토 를 남산영화감독시사실까지 쫓아가면서 봤을 정도로 대한민국 1호 놀란 감독의 찐팬이라 자부 하지만, 그를 거장이라 생각하지 않고 테크니션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내년도 아카데미상에 주조연 배우상과 기술상은 기대된다.
놀란 감독의 모든 것은 이미 데뷔작 메멘토에 담겨있고 이후 작품들은 그 변주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 그의 테크닉과 스토리텔링의 정점은 #인셉션 으로 그 이후에는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신 놀이에 탐닉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놀란 감독의 SM취향에 변태처럼 당해도 그게 재미있게 영화를 만들어내니 지금도 놀란 감독이 신작을 내면 보러가는거다. #오펜하이머 도 마찬가지였다.
뭐 한번쯤 보는 건 나쁘지 않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제작비를 모두 캐스팅하는데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기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만한 최고의 연기파 주연배우들을 죄다 주,조연으로 배치해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다. 스펙타클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인물 중심의 연출이다보니 아이맥스 화면비를 충분히 활용해서 아이맥스 고유의 쾌감은 있어도 굳이 아이맥스나 큰 스크린에서 볼 필요는 없다. 사운드? 사운드 설계가 영화 긴장감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보니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보는게 큰 스크린 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일반 관객들이 상상하는 화려한 사운드 효과는 아니라서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지만 역시나 무조건 사운드 특화관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영화관에서 보던 집에서 보던 솔직히 어마어마한 경험적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참, 15세 관람가인데 무방비 상태로 튀어나오는 몇몇 장면들이 있어서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역사교육 목적으로 가족끼리 보러갔다면 당혹스러운 민망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S 분명 오펜하이머 전기 영화를 봤는데, 왜 기억은 JFK만 나지?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건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