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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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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상 Alex


28년 후, 오늘 개봉날에 맞춰 낮에 스크린X (SCREENX 2D) 첫회로 관람하고 왔다. 그만큼 기대작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원했던 영화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현재 예매율이나 관객 기대감이 매우 높은 상황인데, 냉정하게 흥행은 어려울 것 같다. 한마디로 정말 잘만든 영화는 맞지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2002년 #28일후 의 후속편이 #28년후 다. 중간에 #28주후 까지 하면 28일 후 3번째 영화지만, 28일 후의 감독이자 이번 28년 후를 연출한 #대니보일 감독이 자신이 연출하지 않은 28주 후를 속편으로 인정하지 않고 28년 후가 진정한 속편이라고 말하니 그런가보다 인정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28일 후의 분노 바이러스 시작만 공유하고 연결고리가 아예 없다. 이게 속편이던 3번째 영화던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만 빼면 완전히 별개의 영화다. 28일후를 보지 않고 봐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 없고 28일후 시리즈 광팬이 봐도 팬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장치조차 없어서 그냥 다른 영화다. 물론 대니 보일 감독이 이번 28년 후를 총 3부작으로 구성했고 이번 영화가 그 첫번째 영화라 하니 3부작 두번째와 세번째 영화에 연결고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28일 후'가 개봉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글로벌 초대박을 낸 이유가 있다. 이전의 좀비 영화와 달리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분노를 폭력성과 잔혹함으로 내뿜어내는 강력한 공격성이 좀비 하면 떠올렸던 느릿느릿 바보 같은 모습을 산산히 깨버리면서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당시 한창 잘나가던 감각적이고 뾰족하니 까칠한 대니 보일 감독의 젊은 혈기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서 영화가 역시나 미친듯이 에너지를 내뿜었고 그 에너지가 관객을 완전히 압도했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미장센과 다양한 현실적 메세지를 담은 깊은 주제, 거기에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이 안되는 스토리라인과 또렷하고 선명한 캐릭터들과 배우들의 호연까지 재미 뿐 아니라 작품성도 잡았다. 대니 보일 감독의 재기발랄한 천재성이 좀비영화를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지금도 내 인생영화 중 하나인 #트레인스포팅 과 내게 그의 존재를 알려준 #쉘로우그레이브 로 그 당시 이미 그의 광팬이었는데, 그 만족감과 기대감을 놀라움으로 바꿔줬다.


하지만 이번 '28년 후'는 대니 보일 감독도 이제는 나이가 먹었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팀버튼 감독이 날카로운 엣지가 나이 먹어가면서 점점 사라지는 걸 보아온 것처럼 대니 보일 감독도 어쩔 수가 없는 건가 싶게 만든게 이번 영화다. 한 소년의 성장기로 영화 전체를 꾸려낸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예전처럼 현실 영국의 모습, 세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영화 속에 녹여내면서 다양한 메세지와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어놓았고 아름다운 풍광과 대비되는 잔혹한 현실 역시 여전하지만, 대니 보일 영화에서 재미를 책임지고 있는 영화의 리듬감과 예측불가의 엇박자, 몰아치는 듯한 에너지와 긴박감이 거의 다 사라졌다. 영화의 캐릭터 구축과 세계관 설정에 무지 정성을 들인 것까지는 좋은데, 2000년대 초반과 달리 그 때는 좀비영화가 매니아용이었지만 지금은 대세 장르 중 하나라 이미 동일하거나 유사한 캐릭터나 세계관이 많이 나와서 익숙하다보니 좀처럼 영화에 속도감은 안붙고 지루하다. 캐릭터와 세계관은 완전히 다르지만 당장 #콰이어트플레이스2 가 겹친다.


또한 총 3부작의 첫번째 영화라는 면에서 그렇게 기획된 영화의 단점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뒤에 할 생각으로 만들었으니 전체 기승전결 중 '기'나 '기승'까지만 담을 수 밖에 없으니 뭔가 극적인 사건을 기대할 수가 없다. 물론 한 소년이 병에 걸린 엄마를 구하기 위해 좀비가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나왔다는 한줄 스토리도 나름 극적인 이야기고 영화 엔딩에 주책맞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드라마 장르가 아니라 SF좀비호러나 액션을 기대하기에 기본 설정과 이야기 자체가 약하다. 이후 2편과 3편은 소년이 청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강렬한 무언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3부작의 첫번째는 태생적으로 밋밋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마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지만, 1편을 재미있다 말하면서 정작 1편을 제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과 같다.


영화 장인이 만든 영화답게 분명 잘만든 영화다. 하지만 숨막히는 공포나 긴박감, 강렬한 감정적 쾌감을 기대한다면 완전 실망할거다. 잘만들었지만 재미는 별로인 영화로 이후 2편이 나오면 그 때 챙겨보고 2편 보러가는게 더 현명한 선택일 듯하다.


* 스크린X로 관람했는데 이건 개인적인 취향상 이유긴 하지만 몰입감이 증가하기 보단 시선이 분산되는 느낌이다. 스크린X로 볼 때마다 그렇다. 이번에는 스크린X 보다 더 싫어하는 스피어관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했지만.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좀비 대장(?) 알파는 무섭다는 느낌보다 거대하고 길고 굵은 거시기가 덜렁 거려서 시선을 강탈한다. 어마어마한 물건 때문에 알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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