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포일러)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리뷰, 뮤지컬, 공연,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사랑에 올인한 한 여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2월 16일 구정 당일,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보러 갔다. 부모님과 동생까지 가족 완전체가 함께 공연을 보러 간 것도 수년만인 것 같다. 연휴 직전에 가족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나와 아버지 일 때문에 여행은 어렵고 당일코스로 대형 뮤지컬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 연휴를 맞아 스페셜 할인이 나와서 주저 없이 곧바로 예매를 했다.
꼼꼼히 따지고 찾아서 예매한게 아니라 대형 뮤지컬을 보겠다는 생각 하나만 있어서 어떤 뮤지컬인지, 평이 어떤지는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출연하는 배우들을 보니 그들의 선택을 믿어도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일부는 틀리고(?) 대부분은 맞았다.
2월 16일 저녁 공연은 정선아와 이지훈이 공연했다. 예전부터 뮤지컬을 많이 보면서 정선아야 뭐 워낙 믿음이 가는 배우였으니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정선아를 비롯, 다른 조연들 면면만으로도 일단 신뢰했다. 이지훈은 글쎄... 그가 젊었을 때 가수와 예능, 연기자 이미지가 강해서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고 잘 나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나온 뮤지컬은 본 적도 없고 선입견 때문에 굳이 찾아서 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예전의 가벼운 이미지를 벗고 뮤지컬배우로서의 존재감이 상당하더라. 그래서 정선아와 이지훈, 그 외 조연들까지 연기력과 가창력은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과 더불어 소름 끼치는 열창까지 만족스러웠다. 특히, 이탈리아 유명가수로 라스트 장면에 나와서 안나 카레니나를 각성하게 만드는 소프라노 가수가 그야말로 씬스틸러였다. 안나 카레니나가 그녀의 노래에 마음을 빼았기는지 공감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전체적으로 대형 뮤지컬의 격에 맞는 수준을 보여줬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러시아 뮤지컬의 첫 한국공연이라는 것이었다. 뮤지컬넘버와 춤 등 확실히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라이센스 공연이었다. 무게감 있고 심각하지만 클래시컬한 분위기에 뮤지컬 넘버도 그런 톤을 좋아해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사전 정보나 음악까지도 하나도 모르고 듣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푹 빠져서 봤다. 뮤지컬 넘버도 귀에 쫙쫙 감겼다. 대신 뮤지컬을 흥겨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취향상 별로 마음에 안들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LED와 프로젝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무대장치와 디자인, 러시아 귀족들을 표현한 의상들까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화려한 볼거리'를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모든 면에서 시선과 귀를 확실히 잡아두겠다는 블록버스터 느낌이랄까? 몇몇 장면은 화려함이 극진행 보다 튈 정도로 오버스럽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화려함이 잘 접하지 못하는 러시아 분위기와 합쳐서 색다르고 멋지게 다가온다. 개인 취향상 상상력의 여지를 활용하는 무대와 소품을 선호해서 그 화려함이 조금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모든걸 그 자리에서 다 설명하고 보여주려고만 한 것 같다.
앞서 '일부' 기대한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스토리였다. 안나 카레니나는 워낙 유명한 원작소설이다. 분명히 소설도 읽었고 영화로도 여러번 봤는데 스토리가 생각이 안났다. 그래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그냥 백지상태로 봤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당황했다. 내용으로만 치면 '극한 막장 불륜 스토리'가 중심이다. 그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데,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뮤지컬 속성상 상세한 설명이나 묘사가 어려우니 뮤지컬 시작부터 구구절절 설명없이 그냥 불륜으로 시작해버린다. 감정몰입도 전에 '이게 뭔가?' 싶을 정도여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 물론 극이 진행되면서 차차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기는 하지만, 스토리 진행과 배우들의 연기, 노래 만으로 100% 커버하기에는 빠진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불나방 같은 안나 카레니나를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말이다.
대형 뮤지컬, 블록버스터로서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티켓값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만큼 현재 보여줄 수 있는 뮤지컬 블록버스터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작품성을 말하는게 아니라 상업성에서 말이다. 그래서 즐겁고 멋지고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