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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산모님, 여기 앉으세요.”

내가 잠시 취한 편의는 내것이 아니다.

by 알렉스키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만삭의 임산부가 힘겹게 무리속에 서 있었다


바로 앞 임산부석은 40대 여성분이

멍하니 앉아있었고, 일어설 기미는 없어보였다


지하철은 피곤한 직장인들의 건조한 통화 소리와

잼버리에서 탈출한 영국인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절묘하게 대치되는 풍경이었다


다들 손에 쥔 핸드폰 외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누구도


하나

하고 속으로 숫자를 세고 일어섰다

* 난 적막을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도와주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씁슬함.


“저기요 여기 앉으세요”


산모분은 서있기도 너무 힘드셨는지

가볍게 목례를 하셨고,

나는 이어폰을 낀 사람들에게

잠시만 길을 내달라고 목소리와 수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 때,

“어머 여기 앉으세요”하고는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일어나서는

짐짓 놀란듯 산모분의 팔을 감싸쥐셨고

산모분은 그 자리로 앉으셨다


내 아내가 임신하기전까지는 사실 “그만큼” 와닿진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는 일들이다

짧은 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래도 제일 긍정적인 그림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는

마지막 위기를 여성분은 잘 넘기셨고,

미안함을 보이는 용기는 좋았다

* 다만 임산부석은 무조건 비워둬야 함


전철의 공기가 잠시나마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들, 그리고 이해가는 것들


이해가 되지 않는 점


왜 아무도 자리 양보를 안하는지

임산부석은 왜 비워두지 않는지


그럼에도 이해가는 점

서 있는 사람들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권한이 없음. 잘못 걸리면 진상이라고 인터넷에 신상 팔리기 쉽고, 왜 혼자 착한척 남의 자리로 인심이냐는 욕 먹기 좋음. 그런 사회임..


예의 그리고 매너 우리는 두가지를 혼동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서는 공중도덕이라는 말을 듣고 컸고,

약자에 대한 당연한 배려가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약자보호에 대한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면서


개인의 편의, 개인의 차이에 대해 포커스를 두는 왜곡된 목소리는 분명 잘못 된거다


다행이다

내가 오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어서

그래서 잠시 가진 내 몫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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