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시 취한 편의는 내것이 아니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만삭의 임산부가 힘겹게 무리속에 서 있었다
바로 앞 임산부석은 40대 여성분이
멍하니 앉아있었고, 일어설 기미는 없어보였다
지하철은 피곤한 직장인들의 건조한 통화 소리와
잼버리에서 탈출한 영국인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절묘하게 대치되는 풍경이었다
다들 손에 쥔 핸드폰 외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누구도
하나
둘
셋
하고 속으로 숫자를 세고 일어섰다
* 난 적막을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저기요 여기 앉으세요”
산모분은 서있기도 너무 힘드셨는지
가볍게 목례를 하셨고,
나는 이어폰을 낀 사람들에게
잠시만 길을 내달라고 목소리와 수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 때,
“어머 여기 앉으세요”하고는
임산부석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일어나서는
짐짓 놀란듯 산모분의 팔을 감싸쥐셨고
산모분은 그 자리로 앉으셨다
짧은 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래도 제일 긍정적인 그림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는
마지막 위기를 여성분은 잘 넘기셨고,
미안함을 보이는 용기는 좋았다
* 다만 임산부석은 무조건 비워둬야 함
전철의 공기가 잠시나마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들, 그리고 이해가는 것들
이해가 되지 않는 점
왜 아무도 자리 양보를 안하는지
임산부석은 왜 비워두지 않는지
그럼에도 이해가는 점
서 있는 사람들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권한이 없음. 잘못 걸리면 진상이라고 인터넷에 신상 팔리기 쉽고, 왜 혼자 착한척 남의 자리로 인심이냐는 욕 먹기 좋음. 그런 사회임..
어려서는 공중도덕이라는 말을 듣고 컸고,
약자에 대한 당연한 배려가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약자보호에 대한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면서
개인의 편의, 개인의 차이에 대해 포커스를 두는 왜곡된 목소리는 분명 잘못 된거다
다행이다
내가 오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어서
그래서 잠시 가진 내 몫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