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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히 받아들이자. 우리는 꼰대가 되었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젊은 친구들에겐 이미 그렇게 보여요.

by 알렉스키드

"설마 내가 꼰대겠어."

단 한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꼰대가 충분히 될 수 있는 '사회적 지위 또는 나이'가 되셨어요.
스무살때 성인식보다 더 큰 축제를 열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꼰대로의 초대'를 받았으니까요.


꼰대(표준국어사전 발췌)
①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②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처음 접하기는 제법 까마득한 오래전인 것 같은데,

요즘의 대한민국처럼 모두가 알만큼의(희화화될만큼의) 이슈는 아니었다.


막연히 예전부터 존재했던 단어가

요즘의 “MZ"와 반대편에 있는 그 어떤 존재 정도로

새로운 생명력을 입은 그런 느낌이랄까


대학생 때까진 이 단어가 크게 와닿지 않았고.

그래. 사회 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는 조금씩 썼던 것 같다.

우리가 젊은 시절 바라본 꼰대, 이런 느낌 아닐까?

당연히 퇴근 시간 최소 두시간이 지나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본인이 담배피는 시간 아니면 후배들의 이석을 절대 불허하는 사람

새벽 두시까지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술을 엄청 먹여놓고 다음날 30분은 더 일찍 와있으라고 신입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던 사람(근데 모두들 지켰고, 칭찬을 받았다.)

주말에 뭐했냐고 매주 월요일 점심시간마다 물어놓고, 대답하고 있으면 누가봐도 안들으면서 밥만 먹는 질문자(별일 없었다고 하면 왜 그 나이에 아무것도 안하냐고 놀리는)

한마디 물어봐놓고 한마디 대답하면 열마디 자기 얘기(흥미없는)하는 그런 사람

배나오거나 되게 마른 몸으로, 후줄근하게 옷입고 부서 직원 외에는 아무 인맥이 없어보이던 사람

안궁금한 자기 얘기(까마득한 전 여친들, 젊은 시절의 성과, 본인 주니어 시절 선배들 흉 등등)


요즘 그들이 느끼는 꼰대는 뭘까

아니, 저기서 달라지거나 추가된게 있을까?


가만히 바라보면 사실,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꼰대에 대한 정의가
우리 젊은 시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슬프지만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유일하게 달라진 그 한가지

“나와 당신”이 그 시절 우리가 보던

꼰대의 나이가 됐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다.


우리, 조금 더 솔직해지자. 그리고 그 외로움에 익숙해지자.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지 못하면, '보기 안좋은 뒷방 어르신'되는 거다. 우리가 예전에 흉보듯.


서글픈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솔직히, 현실이 서글프다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게 서글픈게 아니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이는게 힘든거다.


그렇게 구분을 명확히 하고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젊은 척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결혼을 한지 얼마 안됐던 시기,

식사 이동을 할때 습관처럼 동기나 한깃수 후배들과 사담을 하며 걷고 있으니,

저 앞에서 팀장님과 함께 걸어가던 차장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웃으면서 한마디 하셨다.


야 L군아,
넌 이제 우리쪽으로 와야지 임마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그날 밤에 잠들기 전까지 내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이 시기는 나에게도 힘들던 시기다.

두번째 직장을 중고신입으로 오니, 동기들보다 5살 이상은 나이가 많았고

거기에 결혼까지 했으니 실질적으로는 더이상 어리지 않구나

결혼 전 줄줄이 외우던 힙한 공간들도 안가고, 술약속도 0에 수렴해가며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쌓여 미혼의 어린 직원들과 대화가 조금씩 막혀가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장님의 농담 한마디를 들으니,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함이 느껴졌다.

영원히 소년일 수는 없지만,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다고 해야할까.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이도 둘이 생겼고, 두 직급이나 진급을 했고, 나이도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제 나는 핫플도 모르고, 아이돌도 모르고, 예능과 드라마 아무것도 모른다.

솔직히 모른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아제개그'로 편하게 승화할 수 있을만큼,

이제는 '트렌드한 나'에 대한 자존심도 많이 내려놨다.


MZ들이 관심없는 부동산과 육아 관련된 사실에 관심이 있고,

패션을 좋아하지만 그들이 입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특히나 내 관심사를 편하게 얘기하면 "듣기 싫은 자랑"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편하게 말해봐야 돌아오는 반응이야 흘려듣기 또는 뒷담화 외에 더 있겠는가.


뜨거웠던 여름이 아니라고 가을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긴 인생의 가을을 조금씩 받아들이자. 가을을 더 오래 가져가면 된다. 충분히 존중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젊다는 착각이다.

우리 세대는 디지털에 능한 세대기 때문에,

SNS를 아직도 즐기고 기존의 기성세대보다 더 오랫동안 문화를 향유하며,

일정 부분 트렌드 향유와 선도의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우리가 젊다는 증거는 아니다.

분명히 침범(!)할 수 없는 그들의 영역이 엄연히 있고,

우리가 애매하게 살짝 발을 얹은 정도라고 보면 된다.


신입사원 때 직구로 영국 구두를 주문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직구로 구두를 살 줄 안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가 젊은 사람이 될수는 없듯.


외로움에 익숙해야한다.

20대와 30대에 '선택적으로' 외로운 순간을 자처하여, 거기서 오는 "힐링"을 마음껏 누렸다면

이제는 '외로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짜 외로움'을 알아야 한다.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새로운 인맥들에 대한 열의도 조금은 양보하고,

흔히 말하는 '체통'을 위해 조직에서 대화의 주류가 되고 싶은 욕심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는 '관계속에서 사라져가는 나'에 대한 존중을 고민해봐야하는 시기다.


확실히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아이 둘에게 생기는 무한한 변수 때문에 연차를 다 소진하게 되고,

그러면서 부서의 눈치를 보게되고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나의 경우, '내가 쉬면 배우자가 고생'이라는 마인드가 있어서,
소소한 일탈이나 자유에 대한 갈망도 부부 모두가 포기한 상황-
그러다보니 자꾸만 내가 닳고, 힘들어서 탈진 상태가 오곤하는데.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를 위해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일과 중에 확보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한창 힘들 때 주 1회 정도 혼자 점심을 먹고 책을 읽었는데,

그 자체로 소소한 보상과 위로가 되긴 했다.

자극은 부족하지만, 천천히 새살이 돋는 기분이랄까


어렵지만 오늘 하루만,

소속된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자.

업무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

조직 분위기를 위한 스몰 토크

대화를 주도해야한다는 사회자 근성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을 떨치고,

주니어 시절의 나처럼 '혼자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해보자.


사람들은 우리의 꼰대로 부름직한 나이와 위치를 보겠지만,

평가에 연연하지말고 '남들이 모르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에 우리는 집중하자.

그것을 어디에 말할 필요도 없고, 보여주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오롯이 스스로 아끼며 집중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생각하는 오늘 하루를 보내보자.
밤 벚꽃이 예쁜 이유는, 소음이 떠난 거리에 고요한 적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밤 벚꽃처럼, 조용히 아름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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