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모든 힘을 쓰고 방전되어있거나, “내 일”을 위해 힘을 아꼈거나
Y군, 어디야? 혹시 근처면 커피나 한잔하자.
내일 출근인데 아쉽잖아. 나 강남!
신입 사원 시절 어느 여름, 일요일 저녁.
입사 동기인 절친 Y군에게 강남역에서 약속이 끝나고 연락했다.
Y군.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 대학을 나왔고, 좌중을 압도하며 웃고 떠들기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언제나 모임을 지키는 의리는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고 웃는 것을 지켜보며 같이 웃는 타입. 누군가가 놀리는 것에도 크게 화를 내지도 않고 분위기를 잘 맞추는. 그러면서도 꼼꼼하게 자기가 맡은 회사일에 대해서 성실하고 진중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결이 달랐던' 멋진 녀석. 난 녀석의 '진중함'이 좋았다.
이대로 일요일이 떠나가는 것도 아쉽고,
내일부터 또 회사에 끌려간다는 생각에 현실 회피를 위한 담화 상대가 절실했던 순간
직장인이 되며 한동안 주말에 모든걸 거는 습관을 갖게 됐던 적이 있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기다리고, 목요일쯤 되면 이미 금요일 밤부터 주말 스케줄이 가득 찼던 것이다.
스케줄이래봐야 뻔하다.
친구들과 분위기 좋은데서 왁자지껄 술마시기
백화점 가서 쇼핑하기, 혼자 조조영화 보기
서점가서 책 사서 카페 들고가서 읽기
이틀 중 하루는 데이트나 소개팅하기
일요일(주일) 아침엔 예배 드리고 점심에 셀 모임
그리고 온전히 혼자 남겨지는 일요일 저녁 몇 시간
아무리 놀아도 떠들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늘 가슴속 한켠에 자리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에 대한 험담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 외에는
친한 친구들과도 대화의 소재가 없어져 연신 정적이 오면 애꿎게 술만 마셔대곤 했다.
그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주말의 흥이 떨어지는게 싫을 뿐이었다.
그렇게 진지한걸 좋아하던 내가 직장인이 되니 주말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싫었고
소소한 가치와 감성을 중시하던 나는, 눌려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적당히 주말과 퇴근 이후에는 정신을 놓고 사는 것이 쿨하다고 판단했다.
출근한 8시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운데,
남아있는 삶의 일부 시간만이라도 나를 지켜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지켜내는 나'의 모습이 정말 나의 모습이었을까?
'일하는 직장인'의 삶, 그것을 부인하는게 과연 옳았을까.
진지함 자체가 굉장히 삶의 부담감으로 느껴졌던 시기.
누군가에게 나의 무거움이 전달되는 것이 부끄러웠다.
SNS에는 여전히 센치한 성향의 글이 올라갔지만 전보다 많이 무거웠다.
그렇게 오늘은 또 누구와 일요일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한탄해볼까 하는 마음에
Y군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는 전혀 예상치못한 답변을 건내주었다.
내일 출근해야되서 일찍 자려구.
월요일부터 힘들면 한 주가 힘들더라.
응?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이 녀석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사실, 당시엔 이 친구가 굉장히 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우린 젊은데, 조금이라도 짬과 에너지를 내서 내 삶을 즐겨야하는 것 아닌가?
내 인생도 아닌 회사의 일을 위해서 주말 내 시간을 할애해서 체력을 아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 5일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이미 회사에 ‘뺏기는데’
소중한 주말에도 회사 생각,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라니?
이해가 안됐지만, 워낙 매사에 진중한 친구라 성향의 차이임을 받아들이고
나는 다른 친구를 찾아 커피를 한잔 하며 내일의 체력을 오늘에 쏟아 부었다.
나의 일요일 저녁은 월요일은 위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이 있어도 전처럼 늦게까지 만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는 그런 만남을 가졌다.
해야할 일이 있어서 출근을 하고,
맡은 일을 불만 없이 알아서 고민하여 해결하고,
내 업무를 다 마치고 깔끔하게 퇴근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일요일 밤 늦게까지 놀고도 월요일에 일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지나고나니, 나는 '그정도로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월요일 스타트를 위해 일요일 오후엔 쉬어주는게 맞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점차 흐르며 내가 깨달은 바는 굉장히 단순했다.
결국 중요한건 일요일 저녁에 노는지 마는지가 아니었다.
솔직히, 출근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일이 싫든, 상사가 싫든, 조직문화가 싫든 어느 하나는 분명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월요일이 두려운 마음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나 Y군은, 같은 신입사원임에도 달랐다.
막내지만 맡은 일을 파악하려 주말에 시간을 내서 따로 공부하고
업무 시간 중에는 선배들에게 궁금했던 사항을 물어보고
파악하고 정리한 일을 하루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정해둔 업무 스케줄을 일주일 동안 완수하고, 만족하며 금요일을 맞이
그렇게 하루씩 한주씩 충실히 실행하며, 연차를 쌓다보니 내로라하는 프로젝트에서 탐내는 인재도 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조건으로 지금까지도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며 커리어를 쌓는 중
나비효과. 긍정의 나비효과 아닌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굉장히 괴로운 시기를 거쳐야 한다.
훨훨 날아다닐 것 같지만, 새로운 사회의 규율과 사람들의 벽에 부딪치게 되고,
전보다 훨씬 어두운 번데기 속에 들어가 이를 깨고 나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차이가 발생했다.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적응 자체를 두려워했고,
Y군은 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해야할 바를 잘 체득하고 계획한 것이다.
나는 4~5년이 흘러 그가 가졌던 마음 가짐을 가질 수 있었고,
다소 그보다는 늦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업무와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후회는 늘 없다.
다만, 그때 Y군의 태도를 보면서 '어떤 마음가짐'인지 한번이라도
내가 진지하게 그에게 물어봤다면, 내 적응의 시간은 더 짧지 않았을까하는 가정이 남는다.
언제나 신입사원의 마음일 수는 없다.
오히려 성급하고, 무리한 도전을 일삼는 것보단 유연한 중견사원이 나을때가 많다.
중요한건 '남은 인생을 쭉 가져갈' 나의 커리어를 생각하고,
이를 키울 수 있는 '지금의 소속에서의 내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업무를 경시하는데, 업무로 모인 집단인 회사에서 누가 나를 존중해줄 것인가?
쿨한 것은 업무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코스프레가 아닌,
전력을 쏟아 내 이름을 위해 일을 하고, 냉정한 평가를 받아내는 것이 쿨한 것이다.
그렇게 커리어를 쌓아서,
지금 직장에서 별이 될지, 커리어 패스를 다양하게 쌓으며 내 브랜드를 만들지,
인생 2막에서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자원을 만들지를 계획하게 되는 것이다.
Y군 안본지도 제법 오래 됐구나.
언제나 연락해도 어제 연락한 것처럼 적당히 친근한 녀석.
오늘은 퇴근하면서 안부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여전히 일은 성실히 잘 하고 있는지.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그때 네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던 건 기억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