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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Dec 05. 2023

"아이 때문에"라는 핑계가 싫다. 그래서 피가 마른다.

두 딸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며, 모든 순간 사투를 벌인다

우리 아빠는 기러기 아빠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주말에만 올라오셨고,

올라오시면 너무 피곤해서 하루는 집에서 쉬시고, 하루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려 가셨다


그런 아버지의 고생스러운 삶 덕분에 우리 가족은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아빠가 지방 발령으로 떠난다는 통보를 들은 수십년 전의 그 날 밤. 누나는 울고불고 아빠는 나한테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가족이 흩어진다는 버거운 그 현실.


우리는 아이 둘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다

다행히도 아이 둘 모두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재원중이라, 부부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다


첫째 때는 아내가 8시 출근, 내가 10시 출근으로 교차 출퇴근을 해서

아이를 조금 더 늦게 보내고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그래봐야 늘, 아빠만 일하는 집 애들보다 늦게 귀가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맞벌이하는 첫째의 친구들 가족과도

제법 친해져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이를 통해서 새롭게 만나는 인연은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10시 출근일 땐, 8시 출근인 아내가 달려나가도 천천히 내 옷 아이 옷 입히고

간단한 과일 같은 간식도 같이 챙겨먹고 비교적 우아하게(?) 출근할 수 있었다


어른 둘에 아이가 하나뿐이니,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 등의 변수가 생겨도 번갈아가며 급하게 반차를 낼 수도 있고,

회사에 급한 업무가 생겨도 마찬가지로 늦게까지 일처리를 하고 올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내 결정을 모질게 지키고 싶어

한달에 한 번 외에는 친구들과 약속도 안 잡을만큼,

온 정신을 가족에 몰두했고 나에겐 "모범 아빠“라는 칭찬이 어느샌가 주변에서 생겨났다.

기분 좋은 칭찬이다. 내 삶과 헌신에 대한 존중이고, 내가 바라던 삶에 대한 증거 아닌가.


일등 아빠라는 표현이 싫을 사람이 어디있겠나? 친구 아내들에게 비교의 대상이 되어 시샘을 받아 난처할 때도 있지만, ”내가 결정한 삶“에 대한 마땅한 감투라고 생각한다.


“해볼만 하다”싶은 그 즈음에 둘째가 태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가 둘이라는 건 발생하는 변수가 제곱 그 이상이라는 것

해묵은 표현 그대로 "뼈가 시리도록" 느끼고 있고, 정말 온몸이 안 아픈데가 없을만큼 힘들다


업무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이번엔 누가 아플까”라는 걱정부터 든다


아버님, A가 열이 많이 나요


가장 두려운 한마디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면,
아득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아내와 급하게 서로 연락한다


그나마 나올 수 있는 상황의 1인이

회사에 미안함을 표하고 아쉬운 눈총을 듣고, 하던허겁지겁 짐을 챙겨서 하던 일을 놓고

만사 재치고 어린이집으로 내달려야하는 '불안정한 하루'. 아이가 아픈건 '정해진 날'이 없다.


회사에서 당당하기 어렵고, 기세 등등하게 일할 수 없다.

언제 달려나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판을 벌리기 힘들다.

마음대로 업무를 펼쳐버리면, 내가 없을 때 누군가는 수습을 하겠지.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과연 주도적으로 내가 한 일이 될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다니지 말아야하나.

그럴순 없다. 다만, '중요한 업무'를 맡기기엔 나는 너무 불안정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허드렛일을 맡기는 것도 직급으로나 역량 발휘에나 맞지 않다.

결과적으로 "내가 태세를 결정해야"하는 그런 상황

나라고 왜 우아하게 커피한잔 하면서, 내가 원하는 일정에 맞춰 진득하게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한다.


몇 주 전에 있던 일이다

아내가 집합 교육이라 2주 간 집을 비우게 됐다

혼자로는 도저히 불가하여 엄마와 장모님이

이틀 정도씩 하원만 도와주시기로 한 첫날

그래도 오늘은 내가 시차를 오후에 내고 아이를 등하원시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부산하게 준비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버스에서 땀을 닦는데,
갑자기 울리는 한 통의 전화. 불안하다.


아버님 A가 수족구 같아요.
병원에 데려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그 길로 팀장님에게 전화하고,

후배에게 부탁해서 연차를 내고,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 방향인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를 어떻게든 버티고 그날 밤 아이 둘을 태워 엄마를 모시고 와서 다같이 잠들고, 아침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다.


첫째는 다섯살이라 엄마가 집에서봐도

그래도 좀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둘째도 수족구에 걸린 것 같아요.


첫째를 어린이집에 막 보내던 시즌, 여자 실장님이 말씀하셨다. “에휴 이제 모든 유행병은 다 걸리겠구나. 고생좀 하겠어.” 어쩜 이리 하나도 안틀리도 다 맞을까 정말.

결국 엄마가 두 손녀를 데리고,

평생 운전해본 적 없는 SUV를 몰고 병원 다녀오시느라 엄청 고생하셨다.


그렇게 엄마가 사흘, 장모님께서 이틀 그리고 또 그 다음주 이틀을

꼬박 고생해주셔서 2주를 겨우 버텨냈다.

두분 다 가깝지 않은 곳에 살기도 하시고,
나와 아내는 "최대한 양가 부모님께 손벌리지 말고 키우자"는 일념으로
둘째를 출산했을 때 외에는 아이를 부탁드린 적이 없다. 하원마저도.


녹초가 된다는 표현. 정말이다.

누구에 대한 불만도 없지만 그저 “힘들다”는 이유 하나로 부부간에 다툴 일이 많아지고, 아이가 하나만 있을 때는 잘 받아주던 짜증이나 투정도 둘이 되니 쉬 받아들여지기 힘들 때가 잦아졌다.


그렇게 힘들게 출근한 회사에서는

이래저래. “나를 채우는 말”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마음의 여유가 사실 없다.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맡은 바 업무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아
태연한 표정으로 어떻게든 발버둥을 친다. 매일 매 순간. 조용히.

무조건적인 배려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들도 나름 바쁨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럼에도 도와주고 이해해주려는 모습들을 보면 너무 고마우면서도, 참 민망하다. 내가 이렇게 손을 벌리는 존재구나.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이미 그들이 내 일을 많이 해주고 있을 수도 있고 결정권을 가진 분들은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할 중요한 일을 내게 맡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반박할 수는 없다. 다른 이가 보는 눈이 제일 정확하겠지.


오롯이 혼자 빛나는 등대가 되든, 한줄로 늘어선 카페의 조명이 되든. 인간은 어차피 외롭다. 다만 심신이 극한으로 지칠땐 그 외로움이 벅차게 다가온다.


커피 사마실 시간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멀티 태스킹을 엄청 돌리지만,

워킹데이 20일을 온전히 아무 일 없이 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애가 둘이니까.


그렇다고 남들한테 뒷통수를 긁적이며 부탁하고 맡기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건 너무 비굴한 민폐 아닌가. 아이가 있으니 배려해주고 있는 것들이 많을텐데,

적어도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내고 싶다는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정말 지각이 싫다. 남들이 지각하는 것도 싫은데, 내가 지각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싫다.


그런 내가 매일 아침마다

씻지 않으려는 옷입지 않으려는 등원하지 않으려는 아이 둘과 사투를 벌이고

습관처럼 시계를 보며 아이들을 안고 뛰고

선생님께 웃으며 인사드리고 한숨쉬며 돌아서서

다시 시계를 보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려간다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타고선

또 전철역에 내려 개찰구에서 “진입중”이라는 안내 모니터를 보곤 숨이 차게 달려간다

그렇게 겨우 잡아타면 안심인데 놓치게 될 경우(바로 오늘 아침처럼),

역에서부터 15분 걸리는 사무실까지 뛰어서 8분 내에 주파하면 9시 1분 전에 겨우 도착한다.


모양 빠지게 바쁜 숨을 쉴 새도 없이, 물 한잔 떠서 하루의 일을 쳐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또 다시 초조해지고,

남아있는 부서원들의 눈치를 보며 퇴근하고 콩나물 시루보다 빽빽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그리곤 자기전까지 다시 오전의 반복이다

내 두 딸들에게 웃음을 담아,

도레미파“솔” 정도 되는 톤의 음색으로 마지막 내 에너지를 다 쓴다


행복하다. 근데 가끔 아주 많이 힘들다. 나에게 쌓이는 사회로부터, 나로부터의 스트레스가 온전히 내게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곪아들어가는 이 고통은 무엇으로 이겨낼까.


그 누구도 나에게 아이 둘을 낳으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내가 아내와 살며 행복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딸들이 함께 행복하게 클 수 있도록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에 우리 둘다 일을 한다.


어린이집이 있어서, 첫째를 다섯살까지 일하며 키울 수 있었고

재원중인 첫째가 있어서, 둘째의 단지 내 어린이집 입소 순위가 당겨졌다


사기업에 있다가 공공으로 이직해온 덕분에, 당시엔 감히 꿈도 못 꾸던 육아 휴직과 유연 근무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모든 것이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노력이다.

마땅히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낸 혜택이고, 일터고, 우리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너무 지칠 때가 많다.

누구에게도 불평할 수도, 투덜대봐야 '집안 일'이 되어버리는 현실.

친구들에게 힘든걸 말할 시간도 없지만(못 만나니까), 말해봐야

육아와 가사에 잔뜩 매진하는 나를 보며 비교를 당하는 그들이 아내에게


거 봐 니가 좋게 보던 L군도 힘들다잖아


라는 험담 아닌 험담 거리만 제공하는게 되기 때문에

조금씩 쌓여가는 스트레스의 가랑비들을 오롯이 내가 떠 안아야 한다.


그렇게 하루씩 버텨내다가, 아는 동생의 티없이 맑은 한마디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고민을 하는 동안 답을 못내리는 내가 답답했고,  명치 끝이 아파와서 당황했다.


몇 년만에 만난 동생이 물어봤다.

딱히 힘든 걸 말하지 않았는데, 내 인스타그램으로 일상을 지켜보던 그는

형, 이렇게 힘들면 형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그래도 형의 인생이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라고 물었다.

그러게.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푸는게 없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하지만 받으면 어떻게 푸나.


오늘의 글에는 정답도, 나름의 결론도 없다.

그저 "내가 요즘 이러하다"라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고,

어딘가에서 나처럼 집안의 도움 없이 오직 부부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노력을 하는 메아리가 있다면,

그들에게 도달하는 것으로 충분히 글이 완성되리라 생각할 뿐.


아는 동생의 저 질문으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

언젠가 돌아보면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아이들을 사랑하고, 내 가족이 함께 하는 행복은 너무나 크지만

"워킹대디"로서 감당하는 세상의 무게.


작은 한숨을 깊이 쉬고,

나는 다시 퇴근 전까지 나를 닥달해본다.


기다려 우리 공주님들, 아빠가 얼른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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