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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Sep 04. 2019

헤밍웨이가 사랑한 절벽 위의 마을, 론다 Ronda

태양의 나라, 스페인 남부로 떠나는 가족여행 #7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던 곳이자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한 곳.  

비극적인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그가 내전의 질곡 한가운데 있었던 론다를, 작품의 무대였던 이 아름다운 마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TV 시리즈 '꽃보다 할배'로 유명해져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찾는 마을, 론다 Ronda는 세비야에서 말라가로 가는 국도의 2/3 지점쯤 되는 곳의 협곡 위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런던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저녁 8시 반으로 잡은 것도 순전히 론다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는 길

아침식사를 에그 스크램블과 바나나, 우유로 가볍게 끝낸 나는 일단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를 빼와야 했다.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부활절 축제가 여전히 진행 중인 세비야 구시가지는 비록 아침이라 해도 차량이 제한적으로만 다닐 수 있는 데다, 사방이 일방통행이며 소형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기 때문에 결코 만만찮은 미션이었다.


구글 맵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차량 통제 현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툭하면 외곽으로 돌라고 하니, 체크인할 때 쥔장이 형광펜으로 루트를 강조해 준 시내지도를 들고 나섰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좁디좁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올려 골목길로 나온 지 5분 만에 난 그 지도를 뒤로 던져버렸다. 복잡한 골목길과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로 머릿속이 순간 내 머리 색깔보다 더 하얗게 변했기 때문이다. 구글 맵이 다시 지정해준 경로로는 20분 이상 더 걸릴 판이고, 바리케이드 때문에 숙소에 도착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구글에 대한 굳건한 신뢰마저 깨질 판이다.


'안 되겠다, 비상등 켜고 역주행하자!'
일방통행 골목에 차가 거의 없어 내린 결론이었다. 안보이던 차가 갑자기 앞에서 툭 튀어나오고, 보행자들이 나를 향해 뭐라고 욕을 해 대기도 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살아야 했다. 그렇게 2분 걸릴 거리를 15분 간 진땀을 빼며 헤맨 끝에 숙소의 현관에 도착했고, 빛의 속도로 가족들과 짐을 차에 던져 넣고 출발했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기 위해 20여 분간 더 방황을 해야 했고,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 세비야 외곽의 고속국도로 나온 뒤에야 한숨을 돌렸다.

론다 입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는 길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처음 바탕화면과 같이 파란 하늘과 초록빛 들판, 그 위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과 장대하지만 황량한 구릉 또는 산이 반복되는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유럽 대륙 최고의 명당은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지만, 스페인 역시 광활한 국토가 너무 부럽다.


두 시간 가까이 140km를 달려서 론다 입구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정오를 살짝 지나고 있었다. 혹시 몰라 나중에 나가기 편하도록 도시 입구에 있는 주차장 빈자리에 재빨리 차를 대고, 점심 먹을 곳부터 물색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포착했는데, 햇빛 좋고 그늘이 시원하여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도로 위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그 주차장은 내가 주차한 지 5분 후부터 만석이 되면서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고, 식당은 겉모습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음식을 내어 놓았다.

보기에는 간단한 길거리 음식 같지만 신선한 생선 튀김과 훌륭한 소스의 비프요리

론다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고 그 사이 협곡 위를 유명한 누에보 다리(Puente Nuevo)가 이어주고 있다. 다리 이름 자체가 '신교(새 다리)'인데, 론다에 있는 3개의 다리 중 가장 나중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 쪽에서 다리로 향하는 길에는 전망대(Mirador de Ronda)가 먼저 나온다. 전망대에 서니 절벽 위 마을과 더불어 저 멀리 산맥까지 내려다 보이는 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너무 상쾌하고 후련하다. 그곳 한편에는 헤밍웨이의 부조 흉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누에보 다리 쪽으로 나 있는 길이 헤밍웨이가 걸었던 산책로인데, 헤밍웨이가 수없이 걸었을 그 길의 끝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론다의 전경. 구글 위성사진 캡처.

전망대 한가운데에서 하프와 기타로 거리 공연 중인 중년의 커플이 눈길을 끌었다. 두 악기가 어우러진 가운데 아름다운 하프 소리에 마음이 가서 순간 10유로라는 CD를 한 장 사고 싶었지만, 어차피 여행 후에 다시 듣지 않을 거라는 이성적 판단이 감성을 눌러버렸다.

전망대 절벽 위의 연주 커플. 슬프고 아름다웠다.
전망대에서 본 론다

전망대 뒤쪽에는 투우 경기장이 있다. 투우는 세비야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론다야말로 근대 투우의 발상지라고 한다. 18세기 최초의 투우사였던 페드로 로메로의 저택이 투우장 근처에 있다고.

절벽 위의 230년 된 투우장이라니! 투우 경기가 있었다면 표를 사서 들어가 보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거기서부터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보면서 10여분을 더 걸었을까, 우리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누에보 다리에 다다랐다.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이 나오는 곳을 품을 들여 직접 방문하는 이유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직접 감상하면 전혀 다른 감동을 받는 것과 같지 않을까.

론다 투우장 앞의 투우사 동상. 페드로 로메로는 아닌 듯

누에보 다리 위에 서니,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깊이가 120m에 이르는 협곡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1751년에 착공하여 완공까지 42년이 걸렸다고 한다. 론다가 절벽과 협곡에 위치한 요새인 탓에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었다고 하는데, 이 아름다운 다리도 중앙의 아치 모양의 방은 전쟁 때 감옥이자 고문실이었다고.

특히, 비극의 역사인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와 파시스트 양쪽에서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6.25 동란 때 밤낮으로 주인이 바뀔 만큼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는 우리나라 휴전선 근처의 고지들이 떠올랐다.
론다는 절경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픔을 많이 간직한 곳이었다.

론다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에서 바라본 론다의 신시가지

절벽 아래쪽으로 좀 더 내려가고 싶어, 다리를 건너 들어가 오른쪽 끝까지 걸어갔더니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아내와 딸은 이미 '날 버리고 가'라는 눈빛이고, 아들 역시 '꼭 가야 하나?'라는 표정이었다. 출발을 하자마자 다시 돌아서 올라와야 할 걱정부터 시작하던 아내는 3분 만에 발길을 돌렸고, 나는 혼자라도 내려갔다 올 심산이었다.


이게 힘들다 한들 예전 지리산 종주할 때 뱀사골에서 물을 뜨러 능선 아래까지 내려갔다 온 것보다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도 엄마 따라 다시 올라가려는데, 아내가 '아빠를 따라 내려갔다 오면 마인크래프트 1시간 더!!'로 또다시 딜을 하시었다.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아들이 빨리 올라가자고 보채지만 않았다면 난 중간에 멈췄던 지점을 지나서 아래까지 더 내려가 봤을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보니, 아예 협곡 아래 과달레빈 강(Río Guadalevín)까지 내려가서 협곡을 올려다보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절벽 바로 앞에는 론다의 절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국영호텔 파라도르가 있는데, 거기서 하룻밤이라도 묵었다면 나 역시 아래 강까지 내려가 봤을 것 같다. 파라도르에서 보는 론다의 야경이야말로 기가 막히다는데, 다음에 다시 올 이유로 또 남기기로 했다.

협곡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론다의 누에보 다리

이제 슬슬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아들이 큰 일을 보셔야겠단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다니면 심심찮게 아들의 화장실 비용이 나간다. 일단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뭘 시켜먹어야 하기 때문이다.(유럽에서 공짜 화장실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큰 일인데..)


론다에는 어이없게 누에보 다리 앞에 맥도널드가 있다. 아마도 내가 이번 여행에서 본 첫 번째이자 마지막 맥도널드일 것이다. 유럽에서 보기 어려운 맥도널드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신나서 달려들어간 우리는 거기서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잠시 맥도널드에 앉아 있으면서 본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지난 일주일 동안 본 것보다 많았다는 점. 단체 관광객 분들도 약속이나 한 듯 맥도널드로 들어오셨다.


론다와 작별하고 말라가 공항으로 길을 잡았다. 공항 근처 복잡한 인터체인지에서 15분가량 길을 헤매느라 렌터카 사무실에 6시경에 도착했는데, 수속을 마치고 간단하게나마 저녁을 먹느라 Last Call을 할 때가 되어서야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절대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다며(스페인으로 출발, 그리고 새벽 런던 공항에서 벌어진 일 참고) 정신을 바짝 차렸지만, 말라가 공항은 황당하게 게이트 바로 앞에서 출국 심사를 한다. 거의 게이트마다 출국 심사대가 있다는 뜻인데, 나도 이런 공항은 처음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여서 우리 가족이 비행기 문을 닫으면서 탔다.(놓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렇게,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우리는 런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5박 6일 남부 스페인 여행이 막을 내렸다.

6일간 발이 되어준 렌터카. 정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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