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나라, 스페인 남부로 떠나는 가족여행 #6
스페인의 대도시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스페인 광장이다.(로마의 스페인 광장과는 다르다. 거기는 스페인 대사관이 옆에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광장은 야간 분수 쇼로 유명하지만,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그 장엄한 규모와 아름다움이 다른 도시의 광장을 압도한다고 하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힌다.
광장을 반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거대한 회랑 건물과 광장 가운데 분수를 감싸고도는 운하, 방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정원 그리고 건축 예술의 수준을 뽐내는 듯한 정교한 세라믹 장식과 모자이크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자면 웅장함과 세밀함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고 조화로운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광장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Ibero-American Exposition)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세비야의 유명했던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Aníbal González Álvarez-Ossorio)가 박람회 당시 수석 건축가로 지명되어 완성했다고 한다. 건축 양식이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신르네상스 등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니발 곤잘레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니, 1900년대 초반에 세비야의 다양한 건물을 비슷한 풍으로 디자인했다. 혹자는 세비야 같은 고도(古都)에 100년도 안된 건축물이 얼마나 역사적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 수백 년 된 유산만 가치가 있겠는가?
세비야에 도착한 날, 부활절 행렬과 더위에 지친 가족을 이끌고 세비야 대학 근처에 있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4월임에도 남쪽의 태양빛은 따가웠고, 스페인 광장에 맞닿아 있는 마리아 루이사 정원의 나무 그늘에 들어선 후에야 그나마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햇빛의 방향에 따라 아름다움이 다르므로 시간대별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는데, 저녁 7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도 강렬한 태양볕 때문에 광장과 건축물을 천천히 둘러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 집 여성들은 시원한 회랑 안의 계단에서 쉬셨고, 난 물을 보고 자석처럼 끌려가는 아들을 따라 분수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운하에서 보트를 타거나, 하얀 말이 끄는 마차도 눈길을 끌었으나 타는 듯한 햇빛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햇빛을 보면 환장하지만 우리는 피부 걱정부터 하잖느냐 말이다.
건물 내 회랑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볼 수 있다. 양쪽 끝의 탑은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을 본떴다고 하며, 북쪽 탑에서 출발해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회랑을 따라 반대쪽까지 걷다 보면 마치 내가 귀족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건물을 따라 스페인 모든 지역의 문장과 지도, 역사적 에피소드가 새겨져 있는 세라믹 타일 모자이크를 보면서 각각의 역사를 설명해 줄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쉬움은 다음에 아내와 둘이 한번 더 와야 할 이유로 남기기로 했다.
스페인 광장은 건물의 벽뿐 아니라, 운하 위의 다리와 난간, 광장의 바닥과 벤치 등 곳곳이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한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데, 매우 섬세하고 꼼꼼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정성에 탄복하게 된다.
해가 너무 길어 첫날은 야경을 포기했지만, 다음날 부활절 축제를 다니다가 해진 후 광장을 다시 찾았다.
밤에 보는 스페인 광장은 전혀 다른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 화려함에 흠뻑 빠졌었다. 운하의 보트 대여소는 이미 폐장을 했지만, 가족 단위의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광장의 벤치며 계단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연인들은 곳곳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에게 여름날의 광장이라면 캔맥주 하나쯤 따놓고 왁자지껄하게 노는 젊은 친구들 무리가 몇 개쯤 있을 텐데,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는 대성당 주변과는 다르게 밤의 스페인 광장은 오히려 한가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광장을 벗어나 숙소로 돌아오는 세비야의 첫날밤.
여전히 도시는 부활절 축제 행렬이 뒤덮고 있었고, 우리는 여러 행렬 사이에 끼어 한참을 길에서 걸어야 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찜해놨던 타파스 바에는 이미 자리가 없어서 그 옆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지친 다리를 주물렀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시간이 밤 9시였는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거리가 북적북적해져서 밤 11시경에도 테이블은 계속 만석이었다. 정신없는 축제기간이고 관광지를 감안해도 음식은 형편없었는데, 웬만하면 음식이 맛없기 어려운 스페인에서 의외의 경험이었다. 축제만 아니어도 다른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길 텐데, 때가 때이니만큼 야외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맥주 한잔을 한 것에 만족하였다.
정식 명칭이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인 세비야 대성당은 규모로 보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며,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다. 대성당이 있던 자리는 원래 이슬람 왕조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성당의 구조를 보면 유럽의 다른 대규모 성당과 다르게 매우 넓은 데다, 안쪽에는 오렌지 나무 뜰도 있는데, 그 이유가 이런 역사에 기인한다.
스페인의 국토회복 전쟁,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인해 1200년대 중반에 세비야는 가톨릭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고,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역사상 가장 큰 가톨릭 성당을 짓기 위해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지었다고 한다. 종래의 이슬람 사원 기단부를 허물지 않고 지어 올렸으므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슬람 양식과도 섞여 있으며, 건축 기간이 길어진 만큼 고딕 양식으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여러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과 중세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하나, 세비야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아무래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비야 둘째 날, 아내는 성당에 반드시 들어가야겠다 하시고 아이들은 성당만은 절대 싫다 하니, 이토록 고객님들의 취향이 극과 극을 달리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나 하는 고민으로 머리가 좀 아픈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전날 축제 행렬 여파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해가 중천인 오전 10시 반 경에 대성당 앞을 확인해 보니 대기줄이 약 70미터가량이었다. 30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검색 신공으로 근처 살바도르 성당에 가서 통합권을 끊으면 대성당에서 티켓 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다는 팁을 알아냈다. 그러나, 조그마한 살바도르 성당에는 이상할 정도로 줄이 없었다. 11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문을 열지 않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진 아내가 관계자에게 '여기서 티켓 사는 거 맞아요?'라고 물었으나 '난 몰라요!'라는 대답만 들었다.
이윽고 살바도르 성당의 문이 열렸으나, 티켓 부스도 없고 사람들은 그냥 쑥쑥 들어간다. 그 성당 안에는 축제 행렬에 나오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4개 놓여있어서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당황한 아내가 관계자에게 재차 물어보았더니 무료라고 한다. 아까 물었을 때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이럴 때 보면 스페인 사람들이 참 야속하다.
실망한 우리는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둘러보고 대성당의 대기줄로 복귀했는데, 이미 줄은 처음 길이의 두 배로 늘어난 상황. 이미 더위에 지쳐버린 아이들은 그늘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우리 부부는 '이 더위에 고깔 두건을 뒤집어쓰고 뙤약볕을 걷는 사람도 있다'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1시간 만에 입장에 성공하여 들어갔는데, 아들은 정확히 입장 5분 만에 내게 밖으로 언제 나갈 건지 문의를 시작하였다.
대성당 내부의 중앙 홀에는 유독 사람들이 모여있는 스폿이 있는데, 역시 콜럼버스의 묘였다. 묘는 스페인의 옛 왕국들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고 안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앞의 두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에 우호적이어서 당당히 얼굴을 들고 있고, 그에 반대했던 두 왕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묘는 땅 속에 묻지 않고 왜 들고 있을까?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땅 위에서 들고 있는 형태의 묘를 만들었다고.
성당 내부는 엄청난 규모의 주 제단 외에도 많은 제단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주 제단만 해도 1톤이 넘는 금이 들어갔다는데, 다 어디서 왔겠는가? 스페인은 대항해시대에 잉카와 마야로 대표되는 중남미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금은보화를 약탈했다.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는 대성당의 내부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 성당은 미술관으로 불릴 만큼 특이하게도 그림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림은 고야(Goya)의 그림이다. 얼마 전부터 그림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내의 설명을 들으면서 성물실과 보물실 등을 둘러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진주 아기 예수가 박혀있는 왕관이 아름다웠다.
성당 내부를 다 돌아보고 나서는 종탑으로 불리는 히랄다 탑 La Giralda에 올라가 볼 수 있다. 성당 내부에서 올라갈 수 있는 이 탑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 계단이 없을뿐더러 올라가는 경사길이 매우 넓다. 알고 보니, 예전에 아랍인들이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을 타고 종탑에 오르다니,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히랄다 탑의 꼭대기에는 가톨릭 세력의 최후의 승리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히랄디요의 청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의 복제품이 성당 입구 남쪽문 앞에 서 있다.
종탑을 올라가는 데는 아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입장 5분 만에 나가자고 졸라대던 아이는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도 종탑까지 가자고 하니 보통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내가 점심시간에 마인크래프트 시간 30분을 추가하는 것으로 협상을 해주었다.
더운 날 종탑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으나, 탑 위에서는 대성당뿐 아니라 맞은편에 있는 이슬람의 성채 알카사르(Real Alcázar de Sevilla), 그리고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날이 맑아서 저 멀리 투우 경기장까지 내려다 보였다.
탑에서 내려온 이후, 지친 가족들은 모두들 성당 앞 오렌지 나무 뜰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원래는 대성당 방문 후에 알카사르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가족 모두 더위에 지쳐 더 이상의 역사, 문화 탐방을 거부했다.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여행의 묘미는 무계획에 있기에 나도 일단 주변에서 허기를 해결할 곳부터 찾았다. 지난밤 저녁식사가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신경을 더 썼고, 5분 거리에 작지만 괜찮아 보이는 타파스 바에 들어가 모두들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었다. 그 와중에도 골목길에는 부활절 축제 행렬이 끝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더운 오후에는 숙소에서 쉬고 해가 진 후에 나오기로 만장일치 합의하였고, 오후 일정을 포기한 나는 시원하게 맥주를 두 잔 마셨다.
해진 후의 세비야 대성당 주변은 여전히 세마나 산타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종교를 초월한 감동, 세비야의 부활절 축제 세마나 산타 편 참조) 우리도 부활절 축제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야 저녁식사를 하고, 자정이 넘어서야 숙소에 복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