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lide 47>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a16z의 Investment Partner Robin Guo의 <Slide 47> 에세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이 분 글 맛깔나게 잘 쓰네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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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릴 적엔 영웅의 이야기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프로도의 모험을 읽고, <스타워즈> 루크가 자신의 아버지가 다스 베이더임을 깨닫는 장면을 보며, <원피스> 루피가 위대한 항로에서 숨겨진 힘을 각성하는 여정을 따라갔죠.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곧 모험이었습니다. 놀이터는 알록달록한 성이었고, 가족 여행은 늘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으며, 질풍노도 같던 사춘기의 방황조차 성장의 아름다운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어른이 됩니다. 졸업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한 '진짜' 직업을 갖게 되죠. 매일 똑같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같은 메뉴로 끼니를 때우고, 늘 마시던 커피를 마십니다. 틀에 박힌 일상에 갇히는 겁니다. 회사에서는 승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대출금, 각종 공과금, 배우자와 아이들 걱정까지 짊어지게 됩니다.
대체 그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저는 제가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음을 깨달은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뉴저지 중심부의 제약회사에서 일한 지 딱 10주째 되던 수요일이었습니다. 어김없는 수요일. 카페테리아에서 그나마 제일 낫다는 이유로, 저는 그 주에 벌써 네 번째로 파머스 프리즈(Farmer's Fridge)라는 신세대 자판기에서 나온 작은 시저 랩을 먹고 있었습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합병 후 조직 시너지"라는 제목의 보고서 47번째 슬라이드가 떠 있었고, 저는 "부서 간 역량 활용"이라는 텍스트 상자의 서식을 조정하고 있었죠.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24년간 준비한 결과가 바로 이겁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감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연봉 10만 달러를 받으며 서서히 사무실 가구처럼 변해가는 중이었죠.
저는 컨설팅이야말로 모험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전 세계를 누비고, 포춘 500대 기업 최고 경영진에게 조언을 건네며, 똑똑한 인재들과 함께 일하는 것.
이 모든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슬라이드 작업, 회의, 그리고 효율화 작업 역시 현실이었습니다. 문득 '내가 진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게 그냥 현대인의 삶이고,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요? 어릴 적 꿈꿨던 우주 탐험이나 광활한 평원을 달리는 기마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의 치열한 전투 같은 환상은 그저 어린 날의 망상일 뿐이었을까요?
순진하다고 하든,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든, 제가 퇴사를 하고 캘리포니아로 떠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의 골드러시에 뛰어들기 위해, 말 그대로 환상을 다루는 게임 업계에서 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모험의 부름에 응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비하지 못했던 것은 고난, 즉 모든 모험에 필수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할 각오는 늘 되어 있었지만, 시장 상황 악화, 다음 행보에 대한 불확실성, 삶의 의미 부재, 우울감, 무능력하다는 자기 비하,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영웅의 여정에는 반드시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프로도가 마운트 둠(Mount Doom) 앞에 섰을 때, 루크가 다스 베이더와 마주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좇은 지 3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친구, 가족, 직장, 안정, 집 등 알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온 것이 엄청난 실수였는지 회의감이 밀려오는 그 순간 말입니다.
그러던 최근, 저희 창업자 중 한 명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피드런은 꼭 캠프 같았어요. 석 달 동안 정신없이 모험하고 이제 다들 집에 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지난 1년간 제가 깨달은 것은, 캘리포니아에서의 제 여정이 결국 다른 이들의 여정을 돕는 것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체계, 프로그램, 자본,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모험심을 꺾어버리는 건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화요일 새벽 2시, 홀로 남아 자금은 바닥나고 있는데, 아무도 당신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 미친 아이디어를 시작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고독입니다. 고립감과 자기 의심이죠.
하지만 똑같은 화요일을 다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있다면 어떨까요? 상황은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이미 그 길을 걸어봤고, 누군가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누군가는 당신이 왜 시작했는지 다시 일깨워 줍니다.
새벽 2시까지 에어비앤비에서 인간 행동을 두고 논쟁하든, 취리히 창업자가 뉴욕 창업자와 똑같은 고객 문제로 씨름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든, 누군가 첫 100만 달러 매출을 올렸을 때 모두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듯 환호하는 순간이든, 중요한 것은 함께 겪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스피드런을 만든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험, 즉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의 베이스캠프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석 달마다 100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열 살짜리 아이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며, 단지 시기가 빨랐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회사에 앉아 47번째 슬라이드의 텍스트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똑같은 치킨 시저 랩을 먹고 있는 모든 분에게 전합니다.
모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대가는 당신의 모든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수면, 돈, 그리고 확신을 잃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의 동료들이 알아보지 못할 사람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10년 후 화요일 오후 3시, 당신은 48번째 슬라이드를 보고 있고, 랩은 여전히 똑같은 맛이며, 열 살 때의 당신은 당신이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에게 말을 걸기를 포기하고 말 테니까요.
저의 영웅의 여정은, 마땅히 시작했어야 할 곳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돕는 것에서 말입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