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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Jul 14. 2021

선수도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진짜 동료를 알아보는 법.

우리는 살면서 친구를 사귄다. 당신이 학생이든 운동선수 이든 말이다. 그리고 진짜 좋은 친구들과 오랫동안 그 인연을 이어 나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좋은 사람들만 곁에 남는다.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도 바뀌듯 친구를 사귀는 기준과 좋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뀐다. 어릴 때 나에게 좋은 친구란 그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좋았다. 너무 잘난 친구는 어딘가 불편했다. 오늘은 운동선수들이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미룬 채 친구를 사귀고 서로 어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운동선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선수 또한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관계를 쌓는다. 운동선수끼리 유유상종하는 이유는 집단적인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같이 고생하는 사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생긴다. 하지만 같이 고생하는 사이,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 해도 친구는 가려 사귀어야 한다. 당신의 부족한 점을 감추기 위해 본인보다 못나거나 배울 점이 별로 없는 동료와 몰려다니면 당신의 기량은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다.


당신은 아마 의리를 쉽사리 져버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할 수 도 있다. 어쩌면 겉모습이나 능력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아 양심적으로 께름칙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당신보다 못난 그 친구는 당신이 더 낮은 수준 (자신의 수준만큼)으로 낮아지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마 당신의 잘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그 친구는 당신을 떠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위치와 당신의 위치가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서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당신은 더 이상 친구로서의 의미가 없다.


운동선수끼리 유유상종하는 이유는 집단적인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히 집단적 동질감을 느낀다고 해서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같은 선수기 때문에,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같은 고향이라서. 이런 식의 집단적 사고는 개인의 가치를 훼손한다. 유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에 홀로 지내다 보면 외로움을 쉽게 느끼기 때문에 같은 '한국인' 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관계를 맺는다. 물론 같은 유학생들끼리도 삶의 가치관, 역경을 대하는 태도, 미래가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집단적 동질감뿐만 으로는 진짜 우정을 싹틔우기 어려운 것이다. 상황이 달랐다면 친구가 되지 않았을 사람인 것이다.


대신 개인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 인생의 가치관이 같고,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아가 당신이 힘들 때 위로해주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친구다.


다시 선수 이야기로 돌아가서, 만약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원대한 목표를 지지하지 않거나, 당신의 야심 찬 계획에 콧방귀를 뀌거나, 냉소로 일관한다면 그 친구는 그냥 같이 훈련하는 동료로서만 대해야 한다. 그게 선수로서의 목표던 삶의 목표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동료와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시시때때로 어울리며 허물없이 지낸다면 당신의 목표는 그 동료를 따라 작아질 것이다.


운동선수를 떠나 일반적인 인간의 관점에서도 허무주의와 냉소로 가득한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어떤 면에서는 당신보다 부족한 그 친구는 당신의 능력과 현재의 위치를 부러워함과 동시에 단기적으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당신과의 관계를 당분간은 즐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친구는 당신을 넘어설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곧 불편한 친구가 되어버린다.


아마 그 친구는 진심 어린 조언이라며 그럴듯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포장하려 할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며 자기가 다 해봐서 아는 것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똑같은 일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비슷해 보여도 그 일이 일어난 원인과 주변의 변수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집단적 동질감을 느낀다고 해서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미래를 자신의 렌즈를 통해 예단하는 것은 금물인 것이다. 이는 심리학에서의 확증편향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는 사실을 계속해서 믿을 수 있게끔 상황을 조작하고 선택적으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반대되는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기 위해 정보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편향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물론 항상 멋지고 탁월한 사람들 당신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신에게 패배한 선수,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들, 인생에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에 빠진 동료들과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인생에서 좌절하거나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그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사람인지는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패배를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해서 패배로부터 배우려는 사람과 패배감에 매몰된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패배감에 젖어있는 선수들은 이미 허무함과 냉소로 자신의 상황을 대변하고 오히려 지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더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을 떨칠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신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무조건 거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당신의 동기를 꺾는 사람, 당신의 목표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그런 류의 사람은 당신의 발전을 지지하지 않을뿐더러 시기하고 질투한다.


자신의 숭고한 목표와 계획을 아무에게나 말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신의 가치를 상대방과 공유하는 것은 그 상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당신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냉소로 대한다면 그 사람은 걸러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조차 당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진짜 좋은 친구이자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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