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있다고 믿어야 하는 이유.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운동을 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재능인가 아님 노력인가 의 문제일 것이다. 누구는 재능을 믿고, 누구는 노력을 믿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솔직해져 보자. 사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둘 다 중요하다는 것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손흥민… 타고난 선수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다. 이쯤 되면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한다는 생각은 그저 루저들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엄청난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노력까지 완벽히 해버리면 전형적인 노력형 선수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다. 종종 슈퍼 재능이 있음에도 그것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어쨌거나 그들은 노력하는 기질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노력형 선수들 중에는 신체적 재능이 없다기보다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재능이던 심리적 재능이든 간에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있던 재능도 줄어든다.
전형적인 노력형 선수들 (혹은 본인이 그렇다고 믿는) 은 자신의 재능 여부를 섣불리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또는 훈련을 통해 재능이 키워질 수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재능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은 채, 본인에게는 없는 선천적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보고 지레 자신을 ‘노력형 선수’로 규정짓는다. 어린 선수일수록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찍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기면 성인 선수가 되어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재능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애초에 재능 vs. 노력으로 나누는 것도 난센스 같다. 개인적으로 노력 또한 재능의 범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질적으로 어떤 이는 타고나기를 게으르고 누구는 병적일 정도로 근면하다. 고로 스포츠에서 어떤 선수는 순발력이나 지구력이 아주 타고난 수준은 아닐지라도 경쟁상황에서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졌다면 그 선수는 ‘끈기라는 재능’을 가진 것이다. 승부근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가늠하는 타고난 재능의 기준은 신체적 기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체적 재능이 조금 달려도 기질적으로 승부근성이 타고난 선수도 있고, 승부근성은 부족하나 신체적 기능은 끝내주는 선수가 있는 법이다. 승부근성이 부족한 선수도 지도방식이나 주변환경에 의해 승부욕을 높일 수 있듯이, 신체적 재능이 당장 부족하더라도 훈련방법에 따라 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일찍이 자신을 노력형 선수로 치부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회피일 수 있다. 가령 “나는 A라는 선수보다 민첩성이 부족하니까, 지구력 훈련을 더 많이 해야지.” 같은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부족한 민첩성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그 선수는 진 것이다. 백번 말해봐야 입 아프지만 훈련은 부족한 부분을 숙달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자신에게 쉬운 것이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을 해결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신체 및 심리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 그 선수가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족함 = 재능부족 의 식을 성립하는 순간, 선수나 지도자는 선수의 부족한 부분을 부족한 채로 남겨두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지도자의 의견은 선수가 자신의 노력형인지 재능형인지 판가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너는 재능이 남들보다 부족하니까, 훈련을 2배 3배 더 해야 해.”라고 말한다면 그 선수는 재능의 영역과 노력의 영역을 구분하게 되고 자신의 재능을 그저 잠재적 재능으로만 남겨놓게 된다.
하지만 “너는 재능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이든) 앞으로 훈련에 충실히 임하면 1등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그 선수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뚜렷한 믿음과 함께 훈련에도 성실할 것이다. 사실 훈련을 남들보다 2배 3배 더 하는 것은 선수 스스로 해 볼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재능과 노력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재능과 노력은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선수는 자신의 재능을 찾는 것에 목표를 두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재능을 찾는 일을 터부시 한채 단순히 훈련만 열심히 하는 것을 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바다 위를 목적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목적이 없는 배는 순풍이 없다 하지 않았나.
따라서 재능을 찾기 위해 선수는 자신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재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정체성 연구들을 찾아봐도 개인이 어떻게 자신을 규정하는지에 따라 수행능력이 달리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 여성들은 자신의 아시아계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았을 때 수학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아시아계 학생들이 수학을 더 잘한다는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동양인이 아닌 여성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같은 남성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고려할 때 엘리트 선수들도 자신의 가진 능력의 최대를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혹독한 훈련 없이는 제 아무리 타고난 신체적 재능을 앞세워도 설자리가 없는 곳이 엘리트 스포츠 세계이지만 혹독한 훈련만으로 최고가 되기는 어렵다. 양을 뛰어넘는 재능을 찾아야 한다. 코치는 선수의 발전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주고 선수는 자신의 재능을 미리 예단하지 말자. 선수가 재능이 없다고 믿으면 그 선수는 재능 없는 선수가 되고, 재능이 있다고 믿으면 재능을 가진 선수가 된다. 선수는 잠재성을 믿어주는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게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스스로 믿는 수밖에 없다. 선택의 문제다.
그저 노력형 선수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