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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Aug 23. 2021

트랜스선수의 반란.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무너뜨리다.

국제 스포츠기구인 IOC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는 지속적으로 선수의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스포츠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일례로 e스포츠와 같은 신흥 종목들이 다가오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또한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등 그동안 올림픽 경기에서 볼 수없었던 종목들이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과 해당 스포츠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비롯하여 유관분야에 일자리 또한 증대시키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IOC도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역시 선수들의 인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트랜스여성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역도선수 로렐 허버드 (43)의 출전이 허가되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허버드는 과거 남성일 때 개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바 있지만, 국제대회 성적은 전무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성전환을 한 허버드는 2017년에 열린 세계 역도 선수권에서는 2위를 차지하기도 하였고, 비록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여성 경기에서 괄목할 만한 경기력을 과시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는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 여성끼리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생물학적 특성 (신체의 차이)이 경기력에 기여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보통의 남성 선수가 보통의 여성 선수들보다 우수한 경기력을 발휘한다. 단거리 육상 종목이나 수영 기록의 차이를 보라. 이러한 신체적 능력이 구분되는 이유는 바로 남녀의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차이 때문인데 테스토스테론은 생물학적 남성이 생물학적 여성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 호르몬의 차이 때문에 남성의 힘이 여성보다 세고, 지근 (Type 1)과 속근(Type 2)의 근육의 비율이 다르다. 여성은 Type 2 근육의 비율이 선천적으로 적게 분포되어있다. Type 2 근육은 보통 순간적인 파워와 순발력을 담당하는 근육이다. 그리고 높은 테스토스테론은 근육의 질량뿐만 아니라 골격의 길이, 산소 운반능력, 심폐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힘을 쓰는 데 있어서 남성은 생리적으로 여성보다 더 효율적인 신체를 타고나는 것이다.


IOC는 위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해서 트랜스여성이 남성부에 출전 허가를 받으려면 기준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 수치가 10 nmol/L 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IOC가 허용한 기준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 (호르몬 이상으로 난소의 남성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여 배란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증상의 질환)을 가진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혈중농도가 최대 4.8 nm/L의 수치를 보이는 것을 감안할 때, 트랜스여성선수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즉 생물학적 남성의 특징을 가진 트랜스여성 선수는 IOC가 제시한 기준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여성 선수들은 호르몬 요법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트랜스남성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이 테스토스테론을 인위적으로 주입한다 해도 호르몬 수치는 일반 남성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미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 안에서 트랜스젠더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그와 동시에 전통스포츠에서 지켜온 공정한 경쟁의 가치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개인의 성 정체성에 따라 출전의 기회를 갖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 허가로 인해 정작 기존 여성 선수의 메달색이 바뀌거나 입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생각해보라. 여성 선수가 생물학적 남성의 이점을 가진 트랜스여성과 올림픽 출전권 경쟁을 다툰다면 어떨까? 또 대학 진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기에서 경쟁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랜 시간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갈 때 가산점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여성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진 않을까? 즉 트랜스젠더의 출전 여부에 대해 고려하기 전에 기존의 여성 선수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손흥민과 메시가 함께 경쟁할 수 없고, 박태환과 펠프스가 경쟁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혹자는 남녀를 떠나 인간의 신체가 다 다르고 능력이 다른데 그것을 굳이 왜 남녀로 나눠야 하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미 스포츠는 출발선이 다른 영역 아닌가. 말이 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도 누구는 10개월에 걷기를 떼고, 누구는 첫돌이 지나도록 걸음을 떼지 못한다. 고로, 능력을 나누는 것은 개인의 차이에 근거하는 것이지 단순히 성별에 기초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증을 가질 수 도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다. 예를 들면 농구 경기에서 키가 큰 선수와 키가 작은 선수는 선천적으로 신체가 다름으로써 경기력이 다를 수 있는데 왜 같은 경기장에서 경쟁해야 할까? 이러한 신체적 차이가 같은 성별 내에서도 존재함에도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차이는 결정된 능력이 아니며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차이를 유전자 복권(genetic lottery)이라고 한다. 하지만 타고난 유전자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일일이 분리해서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타고난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해도 이는 훈련방법이나 연습의 정도, 그리고 포지션에 따라 키가 작은 선수가 키가 큰 선수를 능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신체적인 차이로 농구 경기력을 판가름하기에는 훈련법, 선수의 기질, 환경, 멘탈리티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별을 나누기 이전에 스포츠에서는 이미 신체적/환경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차이를 가진 선수들이 함께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성별을 넘어 키 차이, 인종의 차이, 그리고 신체의 크기에 따른 다양한 하위기준으로 모든 스포츠의 참여기준을 나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손흥민과 메시가 같은 그라운드에서 경쟁하는 것을 볼 수 없고, 박태환과 펠프스가 함께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스포츠에서 공정함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최소 단위로서 성별이라는 기준 (Gender binary)을 세운 것이다.  


실력이 모자란 남자선수들이  이득을 얻기 위한 성전환 시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사실, 스포츠에서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 선수의 경기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골프스타 박세리의 라이벌이었던 소렌스탐은 과거 남성과 실제로 경쟁하기도 하였고, 테니스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와 비너스 윌스엄스 자매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테니스에서의 여자대회는 시시하다며 남성과 경쟁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도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렌스탐은 PGA 투어 대회에서 2라운드 합계 5 오버파 145타로 출전 선수 113명 가운데 공동 96위에 그쳤다. 여자부에서는 세계를 호령하던 골프스타의 성적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결과였다. 윌리엄스 자매는 역시 “세계 랭킹 200위권 이하의 어떤 남자 선수든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한 뒤 당시 203위의 카스텐 브라쉬라는 독일의 남자 선수가 호주 오픈에서 윌리엄스 자매와 경기를 펼친 적이 있다. 결과는 세레나에게 6 대 1로, 비너스에게는 6 대 2로 이겼다. 현재까지 스포츠에서 성별 간 경쟁의 결과들을 봤을 때, 거꾸로 남성 선수가 원해서 여자 경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자선수들이 겪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신체적/생리적 이점을 가진 트랜스여성의 여자부 경기 출전은 재고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한번 정책적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다시 되돌리는 것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또 한 번의 다수의 합의와 실효성 검증이 필요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정책을 결정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성소수자의 스포츠 참여는 더욱 증대되고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엘리트 스포츠에서 성 정체성 존중이라는 도덕적인 가치 추구 이면에는 기존 여자선수들이 동시에 고스란히 겪어내야 할 역차별 또한 존재한다. 이와 같이 스포츠에서 트랜스여성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를 부추기고 증대하는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펼쳐진다면, 실력이 모자란 남자 선수들 (정체성은 여성인)이 그들의 정신적/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성전환 시도를 하지 않을까?


도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스포츠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여성 선수가 일반 여성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다고 봐야 할까? 스포츠의 본연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는 기존의 여성 선수들이 수년간 갈고닦아 온 경기력을 공정하게 펼칠 수 없기 때문에 평등의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하다는 비약적 결론을 내자는 말이 아니다. 훈련이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스포츠에서는 남녀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개인적으로 제언하자면, 모든 종목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경기력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양궁이나 사격 같은 멘털스포츠를 살펴보면, 남녀의 기량 차이는 미미하다. 오히려 성별차라기보다 개개인의 기량 차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멘털스포츠 혹은 개인의 신체적 요소가 성과에 적은 영향을 미치는 종목들은 성별을 나누지 않고 경쟁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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