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선택하든 뒤돌아 보지 말자.
운동이던 공부던 할 수 있는 적정한 시기가 있다. 선수가 세계를 평정할 만한 슈퍼 재능을 가졌다면, 방해될 만한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운동만 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손흥민, 이청용과 같은 선수들은 일찍이 부모님이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프로의 길을 선택했고 탁구 신동 신유빈 선수 또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실업팀에 곧바로 입단했다. 따라서 운동선수가 성인이 되기 전에 프로무대로 직행하게 되면 불가피하게도 마땅히 경험해야 할 기본적인 교육과, 사회적 관계의 부재 속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열린 여러 개의 문들을 미리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모든 매몰비용과 시간을 곱절로 보상받는다. 고로 운동만 하기로 결심했다면 운동선수로써의 성공이 더 중요해지고 절실해 져야만 한다.
선수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때 오직 지도자에게만 전적으로 선수에 대한 재능평가를 맡겨서도 안될 것이다. 학원스포츠에서 지도자들은 선수 육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지만 결국 재능이 있는 선수던 없는 선수던 간에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밥벌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결정만이 아닌 선수의 재능을 판단하는 것은 선수 포함, 부모와 지도자의 처절한 분석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물론 제일 중요한 변수는 선수가 할 마음이 있는지에 대한 유무에 달렸다. 선수의 재능, 경제적 환경이 완벽해도 본인이 안 하면 소용없다. 슈퍼 재능을 가진 선수들도 팀이나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또는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일찍 은퇴를 하는 선수들을 무수히 많이 보았다. 물론 학교 공부도 소홀히 했기에 마땅히 다른 일을 할 줄 안다거나, 다른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는 친구 또한 없다. 원래 하나의 목표에만 올인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이미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다.
만약 운동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면, 선수는 이제 미래의 큰 성취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저당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 왜이렇게 운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투정은 그만하고 왜 운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하루 빨리 선수로써 성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상적인 주변 친구들처럼 주말에 친구와 어울리며 놀거나, 연애를 하거나, 새로운 핸드폰이나 부모님께 사달라며 조르는 사소한 행동들마저 운동선수로써 고도로 숙련되는 시간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즉 기량을 늘리는 것과 관계없는 모든 것을 참고 통제해서 하나의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송곳 같은 기량을 매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운동만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선수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부족하다. 더 빨리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플랜 A만 가진 선수는 시간이라는 변수에 더 취약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해 너무 겁먹지는 말자. 플랜 A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하더라도, 진짜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았다면 괜찮다. 모든 것을 쏟는 것은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실성이 높다는 의미다. 높은 성실성은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을 판가름하는 절대 요소이며 성실함과 지속성은 재능과 적성을 뛰어넘는다.
"당신은 늦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럴 수 없다." (You may delay, but time will not)
반대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 길 위에 있다면, 힘들어도 공부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운동하랴 공부하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어도 몸이 두 개인 것 마냥 운동이던 공부던 정성을 들여야 한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학업 과제가 운동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방해가 되어도 결정했다면 공부는 해야 한다. 입시경쟁에 놓인 공부만 하는 학생들처럼 모든 과목에 대한 관리를 할 수 없더라도, 그중 하나만이라도 자신과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그것만큼은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쓸데없이 느껴졌던 모든 공부들이 나중에 운동을 그만두고 다음 삶을 선택할 때 통시적으로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렸을 때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책 읽는 것이 싫었나 모르겠다. 하다 못해 권장도서라고 하는 책들에 최소한 관심이라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삼국지라도 읽어 놓을 걸. 십 대 때 채우지 못했던 지식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려고 할 때 가지 못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듣는 음악은 어떤가.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신곡을 즐겨 듣거나, 몰랐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도 종종 있겠지만, 인간은 대부분 십 대와 이십 대에 걸쳐서 찾아들었던 음악들이 자신의 소울 뮤직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시장은 10대들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다. 신곡을 듣는 대부분의 세대는 10-20대의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뇌신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음악을 듣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심지어 여행을 가는 것도, 운동을 하는 데 있어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고 시간낭비 같고,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청소년 시기야 말로 자유롭게 아무런 제제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수들은 그것이 공부든, 독서던 닥치는 대로, 억지로 한 번쯤은 진탕 해봐야 한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너무 일찍 아는 것도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음악 듣는 것은 좋지만 여행은 귀찮아서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면 여행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상태에서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는 것을 더 많이 아는 것과 몰랐던 것을 아는 것은 지식의 확장 측면에서 보면 천지 차이에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아는 것이 점점 늘면, 익숙한 것만 찾게 된다.
선수생활을 너무 오래 한 탓일까. 이제는 어떤 결정을 두고 고민을 할 때,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멈춰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내 선택이 최선이 될지 차선책이 될지, 혹은 최악이 될지는 결과를 알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 하지만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최선의 결과도, 최악의 결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