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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Sep 29. 2021

학생 선수가 공부하는 이유.

입시전쟁의 피해자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학생 선수들이 일찍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2 손흥민이 된다면 좋겠지만 스포츠에서 최고에 오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반학생들도 반에서 꾸준히 5 안에 들지 않으면  서울 대학 진학은 꿈도  꾼다고 한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서울 대학에 간다는  나아가 스카이에 진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 소리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죽어라 공부만 해도 될까말까한 입시전쟁에 학생 운동선수들을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게임 속에 강압적으로 구겨 넣는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어차피 해도  된다는 허무주의다. 운동선수들이 학교 공부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똑똑한 학생들의 들러리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성적이 낮은 일반 학생들을 위해서도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하는거 아닌가?  아이들도 어차피 전교에서 노는 수재들의 들러리에 불과할  말이다.


어차피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갈 게 아니라면 애초에 안 하는 게 낫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할 시간에 차라리 훈련에만 전념해서 제2의 손흥민이 되고, 김연아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정말 위험하다. 이미 지난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 엘리트 선수들은 공부는 등한시 하고 그저 운동만 했다. 그 결과는 따로 설명 안해도 알 것이다. 그렇다고 운동해서 성공하는 것은 서울대 가는 것보다 쉬운 것 같나? 축구에서 손흥민이 되고 야구에서 박찬호가 위해서는 전국 5등이 아니라 1등만 주야장천 해도 될까말까다.


한편, 정책적으로 특정 시기의 운동선수들에게는 체육과 관련 있는 과목들을 집중하고 장래에 불필요한 과목들은 배우지 않거나 압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즉 특정 시기를 지나면 물리 수학과 같은 이공계열 과목이나 역사과목 같은 스포츠쪽 진로와 무관한 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근시안적인 접근은 생애발달적 관점에서 보면 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적시에 익혀야 할 사고능력이나 논리가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저 영어 할 수 있다고 똑똑한 게 아니다. 물론 공부를 안하는 것은 선수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특정 제한된 과목들 (스포츠관련)만 배우기를 권장하는 것은 선수가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선택의 잠재적 기회를 뺏는 것과 같다. 운동선수들도 변호사가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는 사회는 죽었다 깨어나도 꿈 꿀 수 없을 것이다.


운동을 그만두고 해외에서 유학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가 아니었다. 언어의 장벽은 속도가 더딜 뿐 점진적으로 허물 수 있다. 해결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에 운동만 하느라 놓쳤던 성장과정에서 기초적 공부들을 못한 것이 발목을 잡을 때가 더 많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오늘 배워서 내일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읽은 책을 오늘 다시 읽으면 그동안 삶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적성에 맞든 안 맞든 간에 다양한 지식을 경험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 유리하다. 어차피 하나에 올인할 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생선수에게 공부하라는 것을 당장 입시경쟁에 뛰어들어 수재들과 경쟁하여 높은 점수를 받으라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점수는 단기간에 올릴 수 있을지언정 공부하는 습관 자체는 무슨 연간 프로젝트처럼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의 선수의 편의를 위해 공부시간을 축소시켜 주고, 필수과목도 줄여주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선수도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애초에 갈라진 길에서 달리게 하는 것은 손흥민과 같은 슈퍼엘리트 선수들에게도, 보통의 선수들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반대로 선수가 공부에 영 재능이 없거나 죽어도 하기 싫거나, 혹은 손흥민과 같은 축구선수가 될 재능이 자명한 것이라면 다 포기하고 운동만 하면 된다. 아무도 안 말린다.


선수들이 공부를 마치 꿈을 위해 빨리 해치워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좀 걱정된다. 선수의 운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공부를 덜 하는 길의 끄트머리에는 이미 이전 세대 선수들이 걸었던 삶을 되풀이할 뿐이다. 덜하다 보면 안하게 된다. 못살고 가난했던 예전에는 배고파서 했던 운동이라지만 요즘은 자기가 선택해서 시작한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만큼 감내 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선수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억지로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본격 학력 파괴 시대라니. 이미 학력은 파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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