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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May 04. 2022

필패하는 베테랑.

오래도록 선수 커리어를 유지하는 법.

오래가는 건전지 에너자이저.


80/90년대 생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광고 문구다.마치 오래가는 건전지처럼 엘리트 선수들도 오랫동안 톱클래스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베테랑 선수들이 있다. 반면, 대부분은 한 시절 유망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거나 혹은 비교적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정점을 찍은 선수들조차도 그들이 가진 기량만큼 마음껏 펼쳐보지 못한 채 은퇴한다.  


그 이유가 뭘까? 개인적 환경적 요인들을 따져볼라 치면,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부상, 훈련 환경, 부족한 지원 그리고 선수의 자발적인 선택 등),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수가 훈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다. 바꾸어 말하면, 선수가 자신의 훈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그 선수의 커리어에 영향을 준다.


요즘 엘리트 선수들은 으레 ‘지옥훈련’이라는 말을 들으면 1980-90년대 시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옥훈련은 검증되지 않은, 단순히 몸을 한계 넘어까지 혹사시키고 난 뒤, 시합을 앞두고는 점진적으로 훈련량을 줄여가는 구식 훈련 정도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내 선수는 그 혹독한 훈련량에 무너지면 지는 것이고 소화하면 이기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에 갇힌다 (내 얘기다).


안타깝게도 (?)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은 높은 강도 훈련으로 인해 지나친 압력을 받으면, 그 압력을 견디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서 방어하지만 곧 적응하기 때문이다. 훈련 초기에는 체내에서 (대체로 간과 근육)에서 주 에너지 (탄수화물)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심박수도 불규칙해지는 것은 물론, 낮은 젖산 분해 임계치로 인해 훈련의 한계가 일찍 찾아온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강도의 훈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몸은 이내 적응하고, 다음번에는 조금 더 높은 강도의 훈련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오버트레이닝은 늘 독이 되는 법! 적당히 조절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높은 강도의 훈련을 지속하다가 시합 전에 서서히 볼륨을 줄이면서 운동능력을 유지하면서 몸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높은 운동능력을 가진채 심장과 근육상태를 쌩쌩한 상태 (시합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생리적 기저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훈련강도에 따른 신체의 반응, 내성, 임계치의 향상 같은 말은 생소하다. 그저 일단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선수는  믿음에 따라 훈련할 뿐이고, 반면 신체적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는 믿음을 가진 선수들은   믿음에 따라 훈련한다.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는 훈련량, 강도 이런 말보단 단순히 "운동을 많이 하는 것 혹은 적게 하는 것, 또는 몸상태에 맞게 하는 것"이라는 말들을 쓴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들은 해상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지도자나 선수들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닌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너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시합 때 지치는 스타일이니까 오버트레이닝을 피해야 해” 라던지. “너는 남들보다 훈련량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되는 스타일이라서,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돼” 같은 표준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렇게 선수를 판단하는 불분명한 정의들, 자칫하면 선수의 가능성을 ‘스타일’이라는 단어 안에서 제한하는 것을 싫어한다. 훈련 볼륨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몸 상태에 따라 훈련량을 조절한다 던 지, 훈련 방법을 조금 바꿈으로써 즉각적으로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 용이하지만, 문제는 훈련 볼륨이 적은 선수들이다. 훈련량이 적은 경우에는 답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는 가장 취약한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경험치가 오를 대로 오른 베테랑들이다.


훈련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에도 (요령 있게 자신이 할 것만 했다고 믿는 경우) 클래스와 노련함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베테랑이지만, 그렇게 적은 훈련량이 한 시즌 두 시즌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밑천이 드러난다. 장전된 총알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그간 훈련을 대했던 태도나 훈련량을 복기하지 않으면 금세 후배 선수들이나 훈련에 충실했던 동년배들보다 선수로써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


선수의 가능성을 ‘스타일’이라는 단어 안에서 제한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시 생리적 기저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지구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에서 높은 훈련강도 (각 스포츠에 따라 요구하는 훈련 강도와 볼륨, 방법은 다르다)에 적응되면 체내에서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지방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즉 훈련이 충분히 되지 않은 선수들이 같은 강도에서 탄수화물을 주 에너지원으로 쓰고 있을 때 훈련이 된 선수들은 아직 지방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훈련이 되지 않은 선수들은 에너지가 일찍 고갈되고 먼저 지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생리적 특성을 고려해서 과학적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착실히 수행하면, 시즌이 반복될수록 몸의 효율 (선수들은 체력이라고 한다)이 좋아져, 당장 경미한 부상이나 여타 다른 이유로 인해 훈련을 며칠 최대 2주를 쉬어도 운동능력이 저하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초적인 신체능력을 받침으로 하고 있으니, 훈련을 목숨을 걸고 소화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베테랑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 운동을 죽어라 할 때나 좀 쉬나 비슷하잖아?” “몸만 괜히 혹사시키면 부상이나 당하지 좀 줄여도 되겠는걸?” 과 같은 믿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나이쯤 되면 코치선생님이나 주변으로부터 크게 간섭이 없다. 그리곤 이내 고등학생 때처럼 게거품 물며 고생하면서 훈련하지 않아도, 효율적으로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왠지 더 노련해지고, 나만의 방법을 깨달은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믿음을 일단 갖게 되면, 쉽게 예전과 같이 훈련에 임하지 못한다. "여기서 너무 무리하면 내일 좀 힘들겠는데?" "그래 나는 이제 어린 선수들 만치 무리하면 안 돼." "조절해야 해!"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효율적이라고 믿는 자신만의 훈련법에 대한 맹신 덕분에, 베테랑들의 기량은 매 시즌 조금씩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줄어든다. 이때 나이라는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젊을 때 보다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오히려 이러한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쩌면 그 핸디캡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어린선수들 보다 훈련을 좀 덜해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나이라는 아주 훌륭한 방패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곤 효율적으로 훈련 (선택적 훈련)하는 방법이 커리어를 오랫동안 유지할 동아줄 이라 믿고 은퇴를 향해 서서히 달려간다.


하지만 훈련의 본질적인 의미는 효율적인 훈련을 적당히 찾아서 하는  있는 것이 , 좋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함으로써 효율적인 몸을 만드는  있다. 효율적인 훈련보다 효율적인 신체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오랫동안 선수 커리어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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