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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Mar 10. 2020

영국에서 첫 시험의 기억

50점이라도 좋아

Image by Nikolay Georgiev from Pixabay 


석사 입학 후 첫 번째 보는 시험은 문제의 면역학 모듈 시험. 전체 모듈 중 점수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듈은 아니었지만,  이미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이 돌았다. ' , 내가   있을까?' 싶었다. 면역에 관한 거라고는 감기 안 걸리겠다고 귤이나 까먹은 게 전부인데, 말 그대로 눈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첫 시험부터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설령 영어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생리학적 기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업 내용을 통째로 외워 버릴 심산으로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세포학 분자학, 심지어 초등학생을 위한 면역학 관련 동영상까지 유튜브로 찾아보며 공부했고, 시험 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모여 그룹스터디를 했다. 그래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외운 덕에, 친구들끼리 공부 할때는 꽤 선방했던 것 같다. 내 영국친구도 내가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나에게 되려 묻기도 했으니.


다행히 첫 번째 시험은 서술형 시험이 아닌 객관식 유형의 시험이었다. 더군다나 첫 번째 시험은 20% 의 배점이었기 때문에 교수조차도 혹시 점수가 낮게 나오더라도 배점이 큰 시험으로 만회를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친절히 전체 이메일까지 보내주었다. 고오맙습니다.


2학기에 있을 배점이 80%나 차지하는 시험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난이도가 아무래도 더 높을 거란 생각에 작은 배점의 시험이지만 최대한 점수를 높이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시험이었기에 아직 전체적인 난이도가 가늠이 되지도 않았지만, 사실 속마음으로는 밤새워가며 열심히 하면 영국 애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도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하여 (두둥) 시험날 아침,  시험장으로 들어가기 10분 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예상되는 문제들을 주고받았을 때에도 생각보다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꽤 자신감이 차있는 상태로 60점 정도는 가능하겠거니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참고로 영국의 채점 기준은 50점 부터 통과 기준 점수이며, 70점대는 아주 고득점에 해당한다.


시험은 총 40문제 가량의 객관식이었고 시간은 약 40분이 주어졌다. 첫 문제부터 JOLLA 고맙게 모르는 문제가 나와서 2-3분가량 지체한 기억이 난다 (말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밑으로 차근차근 내려가며 문제를 풀었는데 대부분 공부했던 내용이 나와줬던 것 같다. 하지만 애매하게 아는 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고 했나. 거의 절반가량의 문제들을 확신이 없는 느낌으로 풀었다 (둘 중에 하나 같긴 한데 내선택이 오답 같은 그런 느낌).


다행히도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답에 체크를 했고 그렇게 첫 시험을 마쳤다. 음.. 처음 예상했던 60점은 고사하고, 50점이라도 감사히 받겠다고 생각했다. 시험 결과는 보통 시험날짜 기준으로 2주에서 3주 후에 이메일로 결과를 통보해 준다.




3주 후, 점수가 나왔다. 점수는 40점. 40점이라니! 내가 ㄱㅈ라니!  허허 헛웃음만 새어 나왔고, 갑자기 남은 시험들과 과제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이게 되는 건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대굴통에 최대한 꽉꽉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50점이라는 점수의 벽은 너무 높았다. 다른 모듈은 둘째치고 지금 이 면역학을 패스하려면 다음 시험에서 최소한 54 이상은 맞아야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친구들은 대부분 60점 정도를 받았던 것 같다. 친구들은 두 번째 시험에서 잘하면 될거라고 날 위로해 주었지만 별 도움은 안됐다.  다음에  잘할 거잖아..


그렇게 현실을 자각하고, 혹시 내 공부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내 문제는 바로 수업내용을 그저 외우는 데만 노력을 기울였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면역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미처 커버하지 못했던 내용의 문제에서는 영어로 쓰여진 문제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서투른 독해능력이나 이해력이 시험 중에 좋아질  만무했다. 더불어 문제를 읽는 내내 이게 맞는 것을 골라야 하는 것인지 틀린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고, 그 결과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많은 문제들을 시원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험의 아픔을 겪고, 두 번째 시험에서는 수업내용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나만의 문장으로 재해석 paraphrasing 한 문장을 통해 내용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나만의 문장들을 요약하고  요약함으로써 좀 더 정확하게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있었고, 내가 만들어낸 익숙한 문장으로 기억하려고 하니  쉽게 이해되었다. 수업내용을 그대로 외우다 보면, 다른 수업내용과 혼재되어 기억이 왜곡이 되는 거다. 분명 알고는 있는데 정답은 아닌 상황이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번째 학기에 있었던 면역학 시험에서는 고군분투 끝에 57점을 받아서 아주 간신히 50점을 넘었다. 석사과정 첫출발부터 졸업에 대한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그 날이 생각난다.


젠장, 50점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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