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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Mar 27. 2020

논문 주제 선정

영국 스포츠 사이언스 석사 연구 주제 선정 과정부터 연구 참여자 섭외 

Image by Jens P. Raak from Pixabay 


정신없이 얻어맞은 영국에서의 첫 학기를 마치면, 두 번째 학기부터는 꽤 굵직한 과제들과 시험, 그리고 논문 쓰기가 기다리고 있다. 첫 학기 과제들은 두 번째 학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양이 많다면, 2 학기 과제들은 양은 적지만 더 심도 있게 해당 전공을 파고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영국에서 스포츠 사이언스 전공, 특히 운동생리학, 영양학 등의 실험 연구 기반의, 연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 두면 좋을 영국 석사과정 중 연구주제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졸업한 전공 같은 경우 (운동영양학, 운동생리학) 에는 석사생 본인이 연구주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현재 박사생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일원으로 참여해서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석사생들과 공유하는 식이다. 박사와 함께 진행한 실험을 토대로 얻은 결과를 가지고 석사생들은 Dissertation (논문)을 쓰고, 박사생들은 박사학위논문 (Thesis)을 쓴다. 


주제를 선정하기에 앞서 논문 관련 오리엔테이션을 열어 학생들에게 현재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영양학, 생리학 연구 리스트를 주고 수십 개의 연구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4개의 연구를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선택해서 이메일을 통해 학교에 신청한다. 연구주제를 고민하고 선정하기에 앞서 약 2-3주 정도의 시간을 두고 각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사와 지도교수들과의 미팅을 통해 본인들이 현재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프로포잘을 한다. 이후 본인이 끌리는 연구주제를 신청한 후에 학교 측에서 내 앞으로 선정된 논문 주제를 통보한다. 여기서 팁은 위의 4개의 연구주제들 중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연구를 첫 번째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학교 측에서 주제 선정을 할 때 내가 첫 번째로 희망한 연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 만약 전체 학생 중 아무도 내가 흥미롭게 여긴 연구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다면 당연히 내가 첫 번째로 희망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연구가 먼저 선택된 경우에는 두 번째로 희망한 연구가 순차적으로 채택되는 식이다. 연구주제 선정과정에서 해당 연구의 지도교수나 박사생들은 연구에 대한 설명을 제외한 어떠한 경우라도 개인적인 친분이나 지도교수의 마음대로 학생이 연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일절 관여할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운이 좋게도 가장 우선적으로 희망한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입학 당시 비트 뿌리 주스 섭취와 퍼포먼스에 관련된 연구가 워낙 핫한 주제였어서 관심이 있었던지라, 몇 가지 관심 주제들 가운데 당연히 첫 번째 우선순위 연구로 정했다. 하지만 애초에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신청을 포기한 학생들이 많았던 걸까? 당시 연구 프로포잘 미팅에 적어도 20명 (보통 4-5명) 이 넘는 학생들이 왔기 때문에 주제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사실 나도 수십 명의 학생들 중 내가 이 연구를 하게 되리라고는 예상은 못했기에 사실상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연구주제가 결정되면 (무조건 최대 4개의 희망 연구 중 한 개는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다음부터는 이 연구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지도교수와 그 밑의 박사생의 스케줄에 따라서 움직이면 된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문 기계를 다루는 부분은 박사생이 석사생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번갈아 해 보는 식이다. 단 혈액을 직접 채취하는 일이나, 근육세포를 채취하는 작업 같은 경우는 해당 최소 박사생부터 지도교수처럼 경험이 많은 사람이 담당한다.


내가 참여한 연구는 만성적 비트 뿌리 주스 영양제 섭취가 점프 능력과 단거리 달리기 능력을 향상하는지 알아보는 연구였다. 이 연구는 참가자 1인당 약 4~5주간에 걸친 실험이었다. 본 연구는 약 30명 가까이 되는 건강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하였는데, 석사생들 또한 최소 2-3명의 참가자를 섭외해야 한다. 나는 영국 친구 한 명과 한인회를 통해 1명의 한국인 친구가 흔쾌히 실험에 참여해 주어서 순조롭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실험과정에서 연구 참여자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우선시 되기 때문에 참여자가 몸이 좋지 않다거나 중도에 이유 없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별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를 들어 4주간의 실험과정에서 4주 차에 참여자가 하차한다면, 그 참여자의 데이터는 결과에 쓸 수가 없다 (3주간의 데이터는 버려야 함 ㄲㅂ..). 다시 말해 연구자가 참여자에게 실험에 억지로 참여하기를 강요해서는 절대 x100 안 된다. 


생각해보면 연구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에티켓이지만 한국에서는 종종 연구자가 실험 참여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운동선수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대학원생들의 실험 연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주말에도 실험을 강행하기 일쑤이며, 실험 스케줄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구자의 스케줄에 따라 참여자의 스케줄을 맞춘 적도 있다 (물론 한국의 모든 연구실이 이렇게 한단 소리는 아니다). 다만 참여자가 가능한 날짜에 따라 연구자가 실험 스케줄을 맞추는 영국과 한국에서 참여자로써 느꼈던 한국의 연구환경이 조금 대비가 되어서 조금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던 연구주제 선정부터 실험을 모두 마치기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흐르면, 본격적인 논문 쓰기에 돌입한다!



참고로 논문 쓰기에 대한 팁은 지난번 영국 유학 일기 2 포스팅에 설명되어있다 (아래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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