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성 Mar 29. 2020

64점짜리 논문

석사 논문 결과, 그리고 졸업

영국 석사는 총 일 년 과정으로 홀리데이 몇 주와 크리스마스 휴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9개월 정도의 짧은 커리큘럼이다. 따라서 주어진 과제와 시험 그리고 논문을 쓰다 보면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지나간다. 본 글에서는 내가 받은 논문 결과와 영국 대학에서의 성적 시스템, 그리고 더불어 논문을 쓸 때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글에 소개된 팁은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임을 밝혀 둔다.


내 논문 최종 점수는 64점, 등급으로 따지면 2:1 (투원)이고 한국식으로 따지면 4.0 만점에 3.3-3.6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영국의 성적 등급은 First = 70-100, 2:1 = 60-70, 2:2 = 50-60, Third = 40-50 점으로 환산되며 학부는 Third (40-50) 등급 밑으로는 낙제에 해당하고 대학원은 50점 (2:2)을 넘지 못하면 낙제 (fail)에 해당한다.



즉 대학원 수준에서는 40점대가 나온다면 fail에 해당되므로 재시험을 봐야 한다. 단 논문은 재시험이 없고 배점도 가장 높으니 한 번에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 나는 1학기에 점수들이 개차반이 났기 때문에 논문에서 만큼은 65점 이상은 꼭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지도교수가 연중 휴가를 떠났을 때도 이메일을 보내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물어보며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I am so sorry 그러니까 왜 그때 휴가를 가요..)




나의 석사 논문 결과




내가 한 연구는 비트 뿌리 주스 섭취가 성인 남자의 달리기의 초반 스프린팅 파워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점프 능력은 남녀 모두 주스를 섭취하기 전과 후의 퍼포먼스의 의미 있는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트랙 싸이클링과 같은 게임 초반의 자리선정이 중요한 경기나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움직임이 잦은 팀 스포츠 운동 (축구, 농구) 선수들에게 비트 주스 섭취가 퍼포먼스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결과에 따른 나의 석사 논문 제목"CHRONIC DIETARY NITRATE SUPPLEMENTATION IMPROVES initial-PHASE SPRINT PERFORMANCE IN MALES"라고 정했다. 직역하면 만성적 질소 영양제 (예: 비트 뿌리 주스)가 남성의 초기 스프린팅 성능을 향상시킨다."이다. 논문 제목을 지을 때 중요한 점은 주제 속에 결과가 언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논문을 서칭 하려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제목에서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어야 필요한 자료를 찾는 데 있어서 더 수월하다.


만약 결과가 언급되지 않은 논문 제목을 썼다고 예를 들면 "만성적 비트 뿌리 주스 섭취에 따른 스프린팅 성능 효과"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위 논문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서 스프린팅 능력에 효과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라는 물음이 생기고 논문의 전체 맥락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결과가 언급된 제목을 따라서 논문을 읽어 내려가면 연구자가 말하고자 하는 연구의 방향성이 명확한 상태에서 논문을 이해하기 때문에 좀 더 잘 읽힌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더더욱).


저널 형식의 논문의 기본적인 구조는 서론 (Intro), 연구방법 (Method), 연구결과 (Result) 그리고 논의 (Discussion) 이렇게 크게 4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석사논문에서 각 파트별로의 점수는 서론, 연구방법 그리고 연구결과가 각각 20% 그리고 논의 부분이 30%의 배점을 차지한다. 나머지 10%는 담당 지도교수의 재량 (학생의 연구 참여도 및 성실성 정도를 보는 듯)으로 채워진다.


중요한 것은 지도교수는 학생의 요구에 따라 서론, 연구방법, 연구결과 이 세 가지의 구성 중 두 가지 (예: 1) 서론 & 연구방법 or 2) 서론 & 연구결과 or 3) 연구방법 & 연구결과) 파트에 관해서만 공식적으로 첨삭을 도와줄 수 있다. 위와 같이 논의 같은 경우는 전체 논문 점수의 가장 큰 배점이기에 지도교수가 따로 아이디어를 주거나 첨삭을 도와줄 수 없도록 되어있다.


서론은 첫 번째로 현재 연구에 대한 동향을 간략히 서술한 후, 메커니즘을 서술한다. 메커니즘이란 예를 들어 비트 주스를 사람이 먹었을 때 몸속에서 생리적으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비트 성분의 효소는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련 연구들을 소개한 다음 그 연구들 중 비슷한 결과와 반대대는 결과들을 몇 가지 설명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비트 뿌리 주스 관련 몇몇 연구들을 살펴봤는데 이러이러한 효과가 있다더라~" 근데 어떤 연구팀에서는 효과가 없었다더라~"와 같은 논조의 글을 써야 한다. 이어서 위에 소개한 다른 연구들의 제한점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포인트는 현재 관련 연구들의 동향을 살피는 정도의 느낌으로 써야지, 이에 대한 해결책이나 자신의 의견을 필요 이상으로 덧 붙이는 것은 논의 부분에 써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용적인 의견을 서론 말미에 언급을 해주어야 한다. 이는 논문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구를 진행한 이유와 더불어 왜 이 연구가 현장에 필요한지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연구 방법에서는 전체 실험 과정을 빠짐없이 설명한다. 논문은 전체 5000자 분량 (사회과학 분야는 10000자 이상)의 제한된 글자 수에 맞춰서 써야 하기 때문에  글자 수를 연구방법 파트에 너무 많이 써버리면 나중에 결과 서술이나 논의 파트에서 글이 모자라는 경우가 생긴다 (생각보다 연구방법 파트에 쓸게 많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다이어그램을 사용해 실험과정을 묘사해준다면 전체 글자 수를 절약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영국 교수들은 특히 제한된 글자를 넘기는 것에 민감하다. 오히려 글자 수를 채우지 못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실험과정을 묘사한 다이어그램




다음으로 연구 결과 서술 시에 염두해야 할 점은 반드시 논의 서술의 논조와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과 서술 파트에서 다른 연구 결과와 비교를 한다거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감점 요인이다. 더불어 연구자의 의견을 덧붙여서도 안된다. 결과 서술은 말 그대로 실험에 따른 결과만 서술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마지막으로 논의 부분에서는 서론에서 언급한 다양한 연구 결과들과 현재 진행한 연구결과가 어떤 점이 비슷한 효과가 있었고 또 어떤 점은 달랐는지 순서대로 비교해가며 서술해야 한다. 나의 연구 결과가 다른 연구들과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면 왜 결과가 비슷했는지 반대로 다른 연구들과 차이가 있었다면 왜 결과가 차이가 있었는지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피력해 주어야 한다.


본인의 연구와 다른 연구를 모두 비교해나가며 내 생각을 서술해 주었다면, 다음은 본인 연구의 제한점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언급해준다. 서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연구가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 (application) 이 될 것인가 대해 서술해주며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 논의의 마지막 부분에는 연구의 결과를 한 두 문장 정도로 축약해서 설명해주면 된다.




너무 고마운 논문 지도교수 (좌) 와 나를 가장 잘 도와준 영국 친구 제임스 (우)




결과적으로 영국의 석사 커리큘럼은 1년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내에 졸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주제 선정부터 논문 쓰기까지 대략 3~4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사실상 논문의 핵심인 논의 부분 (Discussion)을 쓰기에 주어지는 시간은 약 한 달 남짓. 한국에서 석사 논문을 쓸 때 주제 선정부터 완성까지 약 1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논문을 완성한 것에 비하면, 영국 석사는 뭔가 긴 논문을 쓰는 느낌이라기보다는 1년 과정 중에 가장 어려운 과제를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완성된 논문의 모습




하지만 절대적으로 논문 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과제와 시험을 통해 논문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기술들을 익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논문이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국에서 석사를 무사히 졸업한 학생으로서 느낀 바로는 첫 학기의 과제부터 시험 그리고 논문까지 하나의 큰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나의 최종 논문 점수와 더불어 전체 석사 종합 점수는 58.3점으로 안타깝게 메리트 (Merit) 등급에 미치지 못하고 졸업 (Pass) 하게 되었다 (졸업해서 다행이지..  학기 ..). 이렇게 나의 멘붕의 연속이었던 영국에서의 석사 생활은 논문 제출과 함께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개인적으로 살면서 가장 어렵고도 새로운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누가 이거 다시 하라 그러면 난 못한다.




Tip: 보통 박사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소한 Merit 등급 (60) 받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지도교수에 따라 졸업 논문 점수가 높으면 나머지 모듈에서 점수가 모자라는 것을 상회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박사 진학은 지도교수의 재량에 따라 조정되기 때문에, 석사에서의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적이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