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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Mar 30. 2020

내가 영국에서 스포츠 영양학을 선택한 이유

석사 전공선택 비하인드 스토리 

Image by Steve Buissinne from Pixabay 


유학을 처음으로 결심한 후 첫 번째로 학교 선택과 전공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스포츠 심리학 석사를 졸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스포츠 심리학 전공 쪽으로 관심이 기울었다. 그렇게 스포츠 관련 학교들을 물색하던 중에 유학원을 통해 영국에 러프버러 대학이 스포츠 관련 전공에 관련해서는 세계1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1등이 좋긴 좋아) 후보에 있던 몇몇 대학들을 삭제하고 오로지 러프버러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2017년 말, 당시 나의 아이엘츠 (영국/캐나다/호주 유학 진학에 필요한 영어능력시험) 점수는 평균 5.0 수준이었기에 영국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원 진학 기준 점수는 6.5 점 임에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지망하는 스포츠 심리학과는 기준점수가 무려 7.0이었다 (6.5와 7.0은 다른 이야기).  


하지만 점수 때문에 포기할 생각이었으면 애초부터 유학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고로 나의 영어실력 부족은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매년 10월 석사 입학 전에는 점수를 맞춰야만 했다. 10월 석사를 시작할 수 있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은 2017년 겨울부터 계속되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3월부터 실시하는 어학코스 (pre-sessional)에 등록해서라도 일단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일단 가야 의미가 있다).




러프버러 대학 내 어학코스를 등록할 수 있는 아이엘츠 영어 요구 조건은 스포츠 심리학과는 6.0, 그 외 전공은 5.5이었다. 단 몇 개월 만에 내 수준의 영어 (5.0)에서는 1점을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였고, 5.5 점이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두 달 정도 비빈 후 0.5점을 올려 가까스로 5.5점을 만들었다. 


그래서 본래 희망했던 심리학은 사실상 포기해야 했고, 일단 가능한 전공인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으로 러프버러 대학 어학코스에 등록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뭔지 1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처음에 유학을 준비했을 당시 나에게 있어 유학의 의미는 전공에 대한 열망보다는 해외에서 영어로 공부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꼭 희망하는 전공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일단 유학을 가는 것은 성공을 했으니 전공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왕 공부하는 거 애초에 관심 있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 혹시 모를 박사 진학 시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말이다. 어학코스를 밟는 도중, 입학 전에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아닌 스포츠 영양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내가 스포츠 영양학으로 전과한 이유는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내 관심분야가 아니었고, 러프버러 대학 스포츠 심리학과 지원은 내 점수로는 지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나는 박사 진학보다는 석사 졸업 후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중을 더 많이 두고 있었다. 내가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후보로 떠오른 전공이 바로 운동영양학, 생리학이었다. 


선수생활을 그만둘 때 즈음해서 스포츠 뉴트리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었고 전문 스포츠를 했던 사람으로서 스포츠 사이언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나중에 혹여나 지도자의 길로 가더라도 엉터리 전문지식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선수의 몸상태나 컨디셔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이상 경험 지식만으로는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포츠 현장에서 엘리트 종목 코치와 스포츠 사이언티스트 간에 서로 협업이 되지 않는 이유는, 속으로는 자기들의 지식이 서로 은근히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치와 스포츠과학 전문가는 현대 스포츠 현장에서 불가분 한 관계이지만, 그 안에서 잡음이 생긱는 경우가 실제로 생긴다. 


코치 입장에서는 스포츠 과학자들의 조언이나 훈련 프로그램이 너무 이론적인 효과만 강조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모두는 아님). 반면, 스포츠 과학이론을 배운 전문가들 입장은 아직도 몇몇 대한민국의 스포츠 코치들의 훈련 방식이 주먹구구식의 프로그램을 고수함으로써 부상 유발과 선수들을 위한 효율적인 체력증진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프로 스포츠 코치라고 해도 말이다. 


산악 훈련을 예로 들어보자. 선수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축구선수/농구선수인데 왜 맨날 이유도 모르고 산을 뛰어올라야 하나?" 문제는 선수들이 이유를 모르는 데 있다. 만약 코치가 선수들에게 심박계를 채워주며 심폐훈련에 대한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설명해 줄 수 있고, 산악 훈련을 함으로써 해당 종목에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면 그저 산을 뛰어오르는 구시대적 훈련이 과학적인 훈련으로 대체될 수 있다. 따라서 선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훈련이야 말로 비과학적 훈련이지, 무조건 옛날 방식의 훈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스포츠 영양학을 배운 궁극적인 이유는 현장 지식과 더불어 전문 과학 지식을 두루 알고 있는 체육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계에 머물 수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스포츠 과학자들을 만나더라도 쪽 팔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 지도자들의 가치가 현장을 잘 모르는 스포츠 이론가들에게 의해 일방적으로 평가절하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엘리트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현장에서는 때로 비 과학적 방식들이 통하는 구석이 있고, 실제로 과학적 근거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양 쪽 다리 길이가 눈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나는 한 스케이트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컨디셔닝 훈련을 받지 않은 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석사 졸업 후, 나는 박사 진학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실제로 지금 그 과정에 있기 때문에 현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다시 보류되었다. 하지만 내가 23년간 현장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현장 지도자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운동 과학자들의 역할 가운데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두 직업 군 모두 절대 비교가 불가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중요한 것은 서로의 전문지식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 선수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 현장 지도자나 스포츠 과학자 모두 운동선수의 기량 향상을 돕는 직업군임을 인지해야 한다. 


서로의 방법이 맞다며 선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야 말로 구식이고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선수 또한 어느 한쪽의 의견을 신봉하는 바보가 되지는 말자. 지도자와 과학자 그리고 선수는 모두 동업 (同業)에 종사하는 동료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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