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박사 지원 시 알아야 할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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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석사 공부를 위해 영국에 처음 와서 2019년 10월 무사히 졸업했다. 처음 석사를 결심했을 때쯤부터, 당연히 마음 한편에는 박사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석사 1학기를 마칠 때쯤에는 박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복잡하다고 했나. 2학기 중반쯤 되니 박사 공부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단하게 학자로서 원대한 꿈이 생겨서 그랬다기보다는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만 먹고 감자튀김은 버린 느낌이 들어서였다. 뭔가 제대로 된 세트가 나와줘야 할 것 같았다. 석학은 못돼도 박사는 되야겠다.
그래서 2학기 모든 시험을 마치고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이전에 박사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원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하지만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보통은 석사 전공과 비슷한 전공을 선택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공부를 하는 동안 관심사가 오조오억 번 바뀌었기 때문에 전공을 정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국에서 박사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파인드 PhD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https://www.findaphd.com/phds).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일본, 유럽 국가들 외 전 세계에 있는 대학의 연구팀에서 광고를 올리는 사이트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별로 분류되어있고, 학교, 교수 이름, 등등 원하는 키워드 검색을 통해서 자신의 연구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먼저 원하는 키워드를 뽑아서 관련된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보통 10군데 이메일을 보내면 2-3 곳에서 답장이 오는 식이었다. 박사 학생 자리가 있는지, 장학금은 있는지에 대한 이메일부터 관련 연구에 대한 이메일까지 다양하게 컨택을 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교수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원하는 공부에 대한 방향이 짙어지고, 무엇보다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기 때문에 나는 이때 영어가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장학금 (scholarship)을 지원하지 못하는 교수들에게 연락을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은 스폰서가 있는지 물어본다. 전공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공부하고 있는 social sicience 사회과학분야는 교수들에게 펀딩을 잘 내주지 않기 때문에 general science 일반과학 분야에 비해서는 장학금을 받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어려울 뿐.
여하튼 영국 교수들이 학비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이유는 대부분 학생이 중간에 drop out 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들로서도 학교 입장에서도, 학생이 졸업을 하지 못한다거나 포기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장학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영국이나 유럽학생들의 기준에서는 학비와 함께 어느 정도의 생활비 충당이 가능하지만, 국제학생들은 대부분 학비만 면제가 된다거나 일정 부분 지원만 가능하다.
영국 박사 시작 시기는 매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예 9월-10) 3개월마다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러프버러 대학교 같은 경우는 학기 시작 시기가 10월 이므로, 10월, 1월, 그리고 4월 이렇게 나뉜다. 사실 학비를 본인이 충당하는 경우는 위와 같은 시기가 아니더라도 교수와의 합의 agreement를 통해서 시작 시기는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다.
박사를 시작하게 되면, 학교나 교수의 스타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졸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것이다. 총 3~4년 동안 보통 3개에서 4개의 스터디를 종합해서 전화번호부 두께 (약 10만 자; 400 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써서 학교 내의 심사를 통해 졸업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학교나 교수가 요구하는 저널에 3개에서 4개의 연구를 등재해서 통과가 되면 졸업이 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연구자료들들을 도서관이나 기관에서만 열람할 수 있었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방식이다. 반대로 두 번째 방법은 자료 열람이 현대화되기 시작하고 전 세계 어디서나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현대 학계의 흐름에 어울리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두 방법 중 어떤 방식이 더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두꺼운 논문을 완성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박사의 3-4년간의 생각을 좀 더 깊고 정교하게 가다듬은 버전의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두 번째 방식은 연구자로서 포트폴리오를 더 다양하게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두 번째 방법이 취업에는 좀 더 유리해 보인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미 학회지에 등재된 논문이 있는 연구자가 현실적으로 채용에 더 유리한 고지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연구를 한다면 두 가지 방법을 다 할 수 도 있다. 아직 나는 어떤 방식으로 논문을 써 나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방향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아마 졸업을 할 때쯤이면 두 가지 방법에 따른 장단점을 좀 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미국과 한국 박사과정과 다른 점이라면 코스웍(수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박사과정 기간을 1년 정도 세이브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논문이 제 때 통과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수업이 없는 반면, 연구주제 설정에서부터 연구방법에 대한 결정까지 박사 학생 스스로의 생각과 결정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슈퍼바이저의 역량과 서포트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있지만, 영국에서 박사의 의미는 스스로 오래 생각하고 나만의 의식세계과 철학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4년,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낸 후 이 글을 다시 볼 때, 어떠한 기분이 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