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에 대한 안목의 성장이 저의 가장 큰 자산 같아요
"모르면 그냥 카피해, 똑같이 하면 반은 해" 이전 직장의 상사가 하던 말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창작의 시작은 카피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러나 주의! 말 그대로 카피는 창작의 시작일 뿐 결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카피를 창작으로 바꾸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안목이라는 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와디즈라는 회사에 다닌지도 어엿 3년 차,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고 또 그 과정에서 얻은 게 뭘까" 생각해봤다. 그동안 이뤄낸 포트폴리오들을 정리할 수는 있어도 가치를 떠올리기란 너무 어려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문득 떠오른 답인 "뷰티에 대한 안목의 성장"에 대해 기록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간,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며 빠른 물결과도 같은 크라우드펀딩 기업에 있으며, 수많은 메이커분들과 1000개 이상의 브랜드 그리고 제품들이 탄생하기까지의 다양한 히스토리를 들었다. 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꼭 미팅을 하는데, 이때 메이커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 빠짐없이 기록하는 편이다. 그 이야기 속에 항상 한 끗 차이의 정답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 내는 것이 내 능력이 되며 그 과정과 결과는 나의 안목으로서 자리 잡는다. 아주 종종 본인의 제품 또는 브랜드 히스토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메이커들도 만나곤 하는데, 이럴 때는 소설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음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당연하게도, 하나가 잘 되면 그 뒤론 줄줄이 유사한 프로젝트 스토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이따금씩 동일한 카피와 썸네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한 끗차이는 크게 발휘된다. 그대로 카피한 제품과 스토리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았고, 같지만 한 끗 차이를 통해 다른 컨셉과 스토리를 내세운 프로젝트들은 각자 평균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그렇기에 내가 항상 프로젝트 디렉터로서 고민했던(꼭 명심했던) 부분은 비슷한 제품일지 언정 똑같지 않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뷰티는 한 끗 차이가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다. 혁신적인 화장품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흔히 레이저각인기와 같은 테크는 혁신적이라고도 표현한다)
한 끗 차이를 통해 완전히 다른 느낌을 낸다.
일례로, 내가 프로젝트의 타이틀을 만들 때, 나는 타 프로젝트의 제목을 보지 않고 스토리 안에서 힌트를 찾는다. 그리고 프로젝트만 표현할 수 있는 문장들을 살리려 노력한다. 이러한 컨설팅 및 카피라이팅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간 뷰티 펀딩 시장 안에서의 여러 안목과 감각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내 창작의 시작 또한 카피였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제품들과 많고 많은 스토리들을 들여다보며 "아 도입과 중반부를 연결 짓는 시점에, USP정리 페이지가 들어가야 흐름이 깔끔하겠다" "후킹 포인트는 이쯤에 두는 것이 좋겠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카피가 들어가는 것이 좋겠네"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스토리를 뜯어보며 정말 많이 스터디했다.
그러나 위에도 말했듯이 진짜 나의 것을 하려면 카피라는 시작에서 그치면 안 되었기에, (따라 하는 건 다 하지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아무나 못한다.) 카피 스터디를 할 때도 모든 텍스트를 읽고 내용 깊게 들어가며 분석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나만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연습이 내가 스토리를 통해 타이틀을 뽑아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일해왔는가
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론칭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전달될 스토리를 컨설팅(= 방법 제시)하고 또 매출을 내기 위한 마케팅에 관여한다. 작년 한 해 뷰티팀이라는 뷰티 전문 PD들이 속한 팀에 있으면서 가장 신경 썼던 건 SNS 마케팅 방식이다. 온라인에서의 마케팅은, 매출을 내기 위해 필요한 광고 중 하나이기에, 우리 팀은 메이커의 적은 광고비로 큰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갈망했다.
"어떻게 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집착스럽게 효율이 좋은 (=즉, 클릭 및 전환 단가 효율이 좋은) 광고 소재와 사용된 방법들을 분석했다. 서로 결과를 도출하고 아카이빙하며, 무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팩트 있는 우리만의 인사이트를 축적했다. 뷰티는 SNS 광고 효율 잡기가 가장 어려운 카테고리 중 하나였지만 서서히 정답을 찾아내었다.
결과적으로는 한 해 뷰티 단일 제품으로 1억, 2억, 5억... 30억의 매출을 내는 브랜드들을 창출할 수 있었고 뷰티팀 안의 어벤저스 PD들이 모여 뷰티 카테고리를 성장시켰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접하고 만들며 자연스럽게 길러온 감각과 함께, 부단히 노력하고 스터디한 결과가 ‘안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난 참 좋다
내가 쌓아온 커리어들이 휘발되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어려운 영역을 인정받는 사람이 된 듯 한 기분이 든다.
"뷰티는 너무 어려워" 상대적으로 여러 카테고리 프로젝트를 운영해 본 PD분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이 뷰티 전문 PD라는 타이틀은 내 자부심이 되어가고 있다. 여러 뷰티 제품들을 디렉팅 하며 꽤나 좋은 성과들로 만들어 낸 경험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뿌듯하기도 하고 또 이전 뷰티 블로거로 활동했던 나의 관심사가 이어져서 좋기도 하다. 심지어는, 그냥 “누가 봐도 뷰티 PD 같다”라는 말도 기분이 꽤나 괜찮다. 화장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화장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잘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나의 전공은 식품영양 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물화학 등을 꽤나 심도 있게 공부했었기에 그때 배운 화학 성분들이 뷰티를 하는데 익숙하게 다가왔다. 대학시절 화장품학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도 있었고 이너뷰티에 대한 논문을 쓴적도 있었는데(물론 논문이라고 하긴 좀 그렇다) 어린시절부터의 관심이 이어져, 뷰티와 이너뷰티 그 어딘가에 항상 발을 걸치며 살게 된 듯 하다. 재미있기도 하고 가장 잘 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효용을 가진 제품들은 여러모로 과학적이라 배우는 맛이 있다.
아마 현재로선, 내가 여러 안목을 갖추고 있어도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무조건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길러진 감각을 통하여 조금은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브랜딩이란 건 참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라는 걸 이미 너무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맘처럼 되지 않는 메이커님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덩달아 속상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다른 영역 즉 브랜딩에서의 안목을 길러 보고 싶은 마음도 서서히 커진다. 보다 더 브랜드에게 도움 되는 심도 있는 디렉팅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성공적인 브랜드의 출시를 위해선 1차원적인 유통에서 벗어나 그 이후의 제조/수출/유통/마케팅 등 직접 부딪히며 습득해야 하는데, 나에겐 아직 완벽히 굴러보지 못한 영역이기에 막연하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현재의 나에게 조금씩 성장해온 “뷰티에 대한 안목”은 가장 큰 가치이자 자산이 되었다. 제품만 보아도 얼추 잡힌다.
앞으로는, 전체 시장을 내다볼 줄 아는 뾰족한 안목가가 되어 잘 pick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하여 사람을 바라볼 때 날카로운 안목들 역시 작용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뷰티 전문가 #크라우드펀딩